양방언의 ‘Prince of Jeju 2008’, 감동의 선율

▲ 양방언ⓒ제주의소리
컨벤션센터를 가득 메운 관객들은 모두 기립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감동의 도가니’라는 표현은 아마 이런 때 쓰는가보다. “아니 벌써, 공연이 끝났단 말인가”하는 아쉬운 표정들이 벅찬 감동과 함께 진하게 배어 있다. 시간을 보니 (13일 저녁) 7시부터 시작된 공연이 9시를 훌쩍 넘겼다. 어느새 2시간이 흐른 것.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날 수도 있구나”는 생각이 든다. 

“저녁식사를 하지 못하고 관람했는데 허기는커녕 오히려 포만감을 느낀다”며 공연장을 나서는 이들도 있다. “유료공연이라 해도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양방언(梁邦彦)! 그의 공연을, 도저히 희망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2008년 한 해를 보내며 제주에서 볼 수 있었으니 행운이다. 

양방언을 안지는 별로 오래되지 않는다. 2년 전인가? 지난 2007년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OST를 만든 사람이 세계적인 크로스오버뮤지션이며 그가 제주출신 재일교포 2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 동안 제주에서도 신라호텔인가 국립박물관에선가 양씨가 공연한다는 소식(정식 공연은 아니었지만)도 들었지만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기회가 온 것. 참 이 기회를 빌어 이 특별한 음악회를 마련해 준 제주KBS와 농협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IMF보다도 어렵다는 경제상황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음악회를 문화의 변방에서 그것도 ‘공짜로’ 볼 수 있게 배려해 주어 멋진 송년의 추억을 안겨주었으니 하는 말이다(기왕 얘기나온 김에 염치없지만 내년 이맘때쯤에도 다시 한번 열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 양방언ⓒ제주의소리
필자는 양방언의 공연을 보면서 “탐라의 왕자가 뮤지션으로 환생해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었다. 그가 아이리쉬하프를 연주할 때는 더욱 더...'제주의 Prince는 자신이 아니라 관객여러분'이라고 겸손히 얘기한 그였지만, 이는 아마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이 양씨이기도 하니 탐라왕국을 좌지우지했던 고량부 삼성의 왕자일 수도 있겠다. 이름(邦彦)만 놓고 보면 음악가로서가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큰 학자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한다.

60년생(1월1일生)이니 우리 나이로 49세로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둔 나이에 해당하는 그이지만 그의 얼굴은 2~3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해맑은. 음악을 생활로 하는 그이기에 그런가?(덕분에 제주시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보다 한 살이 적은 내가 훨씬 더 나이들어 보인다는 아내의 농섞인 핀잔을 받아야 했다) 

그에게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바로 그의 ‘前史(家族史)’ 때문이다. 제주가 고향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 제주하면 남한의 끝이며 신의주하면 북한의 끝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므로 그야말로 ‘南男北女’의 사이에서 출생한 셈이다. 이런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을 갖고 있었다. 부친이 어떤 분이었는지, 어떠한 가족환경이었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기회가 되면 그에게 직접 듣고 싶다). 99년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에야 그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고 처음 아버지의 땅을 밟는다. 

그해 제주 또한 처음 방문했단다. 중문 앞바다에서 그는 고대 탐라시대 궁궐에서 왕자가 나오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자연스레 악상 또한 그려졌다. 여기서 나온 작품이 바로 ‘Prince of Jeju' 다. 1999년은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서도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재일한국인 2세로서의 연주하는 타악기 앙상블의 뜨거운 폴리리듬에 감동하여, 그는 지금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통해 스스로 찾아가던 하나의 해답을 발견하게 되었다니 하는 말이다. 

음악에 별로 조예가 깊지 않은 필자이기에 이번 음악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게 실례가 될 듯하다. 그는 공연에 앞서 제주에서의 정식 첫 공연이어서 준비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 준비 정도와 깊이를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 함께 한 이들의 연주도 그렇고... 

양방언, 동양의 야니(Yanni), 일본 동경출신 재일 한국인 2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그에게 많은 수사가 붙는다. 제주에서 만큼은 아니 앞으로는 ‘Prince of Jeju, 양방언'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동서양의 악기(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장구, 태평소 등)도 사람을 잘 만나면 저렇게 아름다운 하모니로 어우러질 수 있구나 생각했다. 제주사회 또한 '평화의 섬' 다운 화합의 무대를 만들 ‘Prince of Jeju'를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양방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그의 홈페이지 http://www.yangbangean.co.kr 를 방문해 보시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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