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하라 다쓰노리(原 辰德)

1958년생, 도까이(東海) 대학 졸업
요미우리 쟈자안트 선수(1980년∼1995년)
요미우리 자이안트 감독(2002년∼03년, 2006년∼현재)
제2회 WBC 일본 감독

WBC 일본 감독 하라(原)는 어떤 사람일까? 또 어떤 선수였으며, 지금 어떤 감독인가?

'야구의 귀공자' 이다.

'자이안트 거인' 의 4번타자를 했고, 선수로서는 초일류 선수이 아닌, 그냥 일류 선수였다. 기록도 언제나 있는 자이안트의 4번타자의 성적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출신 도까이(東海)대학 야구감독이었으니, 야구 집안출신이다.

고교때는 고시엔에 4번출전, 준우승의 성적을 올렸다. 고교때는 꽤나 인기가 있어 그를 볼려는 관중으로 지역예선 구장을 만원을 만들곤 했다. 고교졸업 때는 프로 아니면 대학에 갈 것인가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대학 졸업후 프로 드래후트 회의에서는 4개 구단이 1번 지명을 받았으니, 당시로서는 시선이 집중된 1류선수 였다.

프로선수로서는 신인왕, MVP, 타점왕을 1번씩 했다. 선수로서 타율은 .279 이니 일류선수로서 평범한 기록이다.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안트에서 15년간 오직 한구단에서 선수를 했다. 야구인의 영예인 프로야구 명구회(名球會)의 회원도 아니며, 야구전당에도 못들가 있다.

감독으로서는 두번째 자이안트의 감독에 취임해 있다.

첫번째는 2002년에 감독으로 취임 리그 우승과 일본 챔피언을 해 냈지만, 다음해 2003년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해임 되었다. 전년도에 챔피언까지 했던 감독을 다음해에 목을 날린다는 것은 이례인 것이다.

자인안트 구단의 천황 '와다나베 쯔네오(渡邊 恒雄)'는 자이안트 구단내의 인사이동이라고 말했다. 그때 감독 퇴임식은 자이안트 구장이 아닌, 한신(阪神) 구장에서 당시 한신 감독이었던 호시노 감독의 제안으로 이루어 졌다. 호시노 감독으로 부터 꽃다발을 받은 하라 감독의 눈물이 야구팬들로 부터 동정심을 만들기도 했다. 자기 구단이 아닌 다른 팀 구단에서의 퇴임식은 이례의 이례이다.

2년을 쉰후, 2006년에 다시 감독으로 복귀, 3년사이에 리그 우승을 2번이나 해냈다. 2008년 시즌은 수위 한신과 13게임차를 뒤엎고 우승을 해내, 그의 감독 실력을 발휘하곤 했다.

하라(原) 감독은 꾸준히 인기가 있다.

기록은 그다지 없지만, 기록및 기억에 남는 초일류 선수급의 인기이다. 또 자이안트를 좋아하는 팬들만 아니라, 자이안트를 싫어하는 사람들, 안티 거인(Anti 巨人) 들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야구의 귀공자 이다. 귀공자 얼굴이다. 인물이 좋다. 시원시원한 키에 시원시원한 얼굴이다. 아버지가 대학야구감독인 야구 집안 출신이다. 프로야구 자이안트의 귀공장이다. 자이안트의 수재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자이안트는 다른 구단에 없는 전통이 있다. 좋은 인재라고 평가가 되면 영재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선수로서는 물론이요, 은퇴후에도 코치로서 제왕학 교육을 시키며, 또 감독으로 제왕을 만드는 것이다. 자이안트가 인정하는 수재, 귀공자인 것이다.

그가 현역 자이안트 감독으로서 WBC 감독으로 발탁 되었다. 일본 야구의 성패가 그의 제완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가 WBC 감독이 되며서, WBC 인기가 더 올라가고 있으며, 또 자이안트를 싫어하는 팬들로 부터도 주목을 받아, 감독 본인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다.

그가 자이안트의 귀공자에서, 일본야구의 귀공자가 될런지는 한국에 달려있다. 우선 한국을 이기고 올라 간다면 일본 팬들도 인정을 할 것이다. 한국전에서 한국야구에게 형님자리를 물려주는 날에는 일본야구의 귀공자는 물론이요, 자이안트의 귀공자도 위험 할 것이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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