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상 ⓒ 제주의소리
“아줌마한테 매번 밑지고 판다”는 재래시장 야채가게의 김씨, “오늘도 비싸게 샀으니 다음번에는 싸게 달라”며 무언의 압력을 놓고 돌아서는 순이 엄마. 도저히 앙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은 늘 밑지고 파는 사람과 늘 비싸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그들이 부딪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마트에서는 물건 하나하나에 가격표가 붙여진 정찰제이다. 가격은 불변이니 이게 품질에 비해서 싼 것인지 도무지 가늠할 길이 없고 오로지 저 혼자서 판단해야 한다. 반면에 재래시장은 눈짐작, 손짐작이 가격이다. 그래서 흥정이 생겨나고, 차츰 고객층이 두터워지면 인정까지 덤으로 준다. 이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재래시장만의 정감이다.

시금치 한 상자를 산지에서 1만원을 주고 들여왔다면 마트에서는 정확히 무게를 달아 1천원어치의 열 다발을 묶을 것이나, 시장의 김씨는 손이 가는대로 대충 퍼 주다보면 때로는 아홉 다발이 되어 손해를 보는 날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열 한 다발이 되어 순이 엄마가 손해를 볼 수도 있어 다 맞는 말 같다.

김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저마다의 개성, 저마다의 치수가 다른 수 백 종에 달하는 옷가지를 장사하는 이씨는 일일이 가격표를 다 외울 수가 없어 난간한 끝에 자신만의 비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대구양말서울연락소' 9단계가 그의 비법이다. '대'는 숫자 1이고 '구'는 2이며, '양'은 3, ...... '락'은 8이고 '소'는 9가 되니 이게 가격환산법이다.

가령 점퍼 상표에 '대울'이라 적혀있다면 '대'는 숫자 1, '울'은 6이므로 그 원가는 1,600원이거나 16,000원이거나 160,000원이다. 현실적으로 그 원가는 16,000원이므로 아마 이씨는 고객에게 25,000원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20,000원쯤으로 거래가 성사되었다면 결국 4,000원의 마진이 남는다.

4,000원의 이윤, 대형점포에서는 점포 세, 인건비, 관리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독점이윤, 평균이윤, 한계생산균등과 같은 이윤경제법칙을 요리저리 따지겠지만 재래시장은 살갗 내와 땀내와 같은 사람 사는 정감의 법칙만 따진다. 대형시장의 출현으로 곧 쓰러져갈 것 같던 재래시장이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각박한 손익계산을 과감히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서귀포아케이드상가의 상인들은 '10% 할인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 개 더 얹어주는 덤과 더불어 지불할 물건값에 10%를 더 할인해 준다니 이래저래 흥이 난건 다름 아닌 고객들이다. 상가에 입주된 200여 상인 중에 절반이 이 할인운동에 동참하여 패찰을 붙였다.

그동안 상인들은 벌어들인 수익을 고객들에게 환원해 준다는 취지로 고객감사대축제를 해마다 열고 연말이면 사랑의 김치를 직접 담가 불우시설을 찾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밑지고 판다는 이씨와 김씨, 그들이 고객을 향해 마음을 열었으니 재래시장 가는 발걸음을 어서 재촉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 강문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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