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담당 김정숙

▲ 제주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담당 김정숙 ⓒ제주의소리
갈옷의 계절이다. 갈옷은 풋감즙으로 염색을 한 옷이다. 전국 어디서나 감염색을 하지만 이를 ‘갈옷’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제주뿐이다. 갈옷이 제주 문화상품인 이유다. 제주의 여인들에게 감물 들이는 작업은 시절 행사다. 겨울입구에 김장을 하고, 장을 담는 것처럼 백중 무렵엔 감을 들여야 한다. 풋감을 따서 짓이겨 즙을 내고 갈중이나 적삼에 감물을 먹인 다음 물 적시면서 다듬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노을빛으로 색이 짙어지면서 풀 먹인 것처럼 질감이 바작바작 해진다. 이렇게 집집마다 만들어진 갈옷은 생활복으로 입다가 작업복으로 변신해 일생을 마치게 된다.

섬유산업의 발달과 개성 있고 편리한 디자인을 갖춘 옷이 활개를 칠 때에도 갈옷은 그 편리함과 시원함을 무기로 살아남았다. 여름 태양아래 일하는 사람들에게 갈옷을 대체할 작업복은 아직도 답이 없다.

웰빙 트랜드에 탑승하여 천연소재가 각광받으면서 ‘갈옷’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황토염색, 쪽염색, 양파염색 등등 천연염색 기술이 화려하게 부활 하였다. 감염색도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물들이는 방법도 업그레이드되어 기계적 힘을 빌어 감즙을 내고 용도에 따라 감물의 농도를 조절한다. 어른뿐만 아니라 젖먹이까지 갈옷을 입고 그 제품들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 졌다.

늘 그렇듯이 거품은 거품이다. 제 스스로 사그라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저것 다 해봐도 갈옷, 감물염색을 따라올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옷이면 옷, 생활용품이면 생활용품... 천연염색의 다양성은 감염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천연염색을 조합하는 것이다. 감염색은 염료를 추출하기 위한 에너지와, 염료를 고착시키기 위한 매염제를 쓰지 않아도 된다. 풋감속의 탄닌이 섬유와 햇볕을 만나 익으면 그만이다.

제주여행을 마치고 가는 사람들은 감염색 제품을 하나씩 챙겨간다. 몇 안돼는 제주다운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향토문화 상품의 조건은 지역사람들 생활속에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화가 되면 될 수록 지역의 독특한 향토문화가 빛을 발한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세계가 인정한 자연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역사를 아우르는 설치물과 함께 음식과 옷처럼 생활속에 살아 있는 물질문화와 수눌음 같은 정신문화가 한데 어우러질 때 제주는 진정 아름다운 지역이 될 것이다.

타 지역에서 천연염색 패션쇼 같은 홍보행사를 한다는 초청장을 받으면 왜 갈옷이 안쓰러워 지는지 모르겠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갈옷에 샘 좀 써 두자.

천연염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제주시천연염색 연구회를 비롯 여기저기서 소소한 체험과 전시행사를 개최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신나는 일이다. 여름 휴가지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행사는 작정하고 떠벌리는 큰 행사가 아니라 더 맛이 있을 것 같다. / 제주농업기술센터 농촌자원담당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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