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31)]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복잡한 사회일수록 창의적 사고력 필요"

조벽 교수는 미시건 공대 재직 당시 재미있는 티셔츠를 고안, 학생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컨닝 티셔츠’. 티셔츠에는 공학 공식이 빼곡하고, 게다가 입고 있는 상태에서 보기 편하라고 거꾸로 쓰여있기까지 하다. 더 기막힌 것은 시험기간에 입으라고 대놓고 권장했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요구하는 인재는 문제 풀 때 어떤 지식이 필요한가를 판단,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암기만 하는 것은 필요 없어요. 두뇌가 비상해서 책을 읽으면 읽는데로 통째로 외운다는 것은 대단한 암기력입니다. 하지만 그 대단하다는 암기력도 이 세상에서 가장 후진 컴퓨터 메모리와 비교해도 훨씬 못합니다. 세상에서 최하위의 컴퓨터보다도 못한 암기력을 측정해 대한민국 대표 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창피한 얘기입니다.”

▲ ⓒ제주의소리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주제로 조벽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27일 서귀포시 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서른두 번째 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강연은 서귀포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이 함께 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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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는 2010년대의 인재상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6-90년대와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6-70년대는 다자녀 중 아들 하나라도 대학보내기, 8-90년대는 모든 자녀 대학보내기, 2000년대는 조기유학 보내기가 시대별 성공전략이었다면 2010년대에는 무엇보다 창의력이 성공전략이다.

창의력은 그간 누누이 강조돼 왔지만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왜곡돼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튼튼한 기초지식’을 바탕해서만 세워질 수 있다. 특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식이 기본이 된다.

그런데 지식에 대해서도 옛 세대들과는 다르게, 새롭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 교수는 이를 위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수상당시의 평균 나이를 집계한 흥미로운 통계를 보여줬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40대 초반에 노벨상을 받았다. 20세기 초기 수상자들 중에는 젊은 수상자들이 많다. 30대에 받은 사람도 있고, 대학을 갓 졸업한 25세에 받은 사람도 있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자 수상자 평균 연령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 2007년도에는 70세, 71세 두 사람이 수상한다. 작년에는 수상자 평균 나이가 74.3세다. 물리학상 뿐 아니라 경제학상 수상자는 90세다. 이들은 ‘정보화시대’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조 교수는 이 통계를 통해 ‘평생교육 시대’가 도래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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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한평생 연구한 후, 죽기 전에야 인정을 받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기에 부모 세대와 같이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공부해서는 전문가 활동을 못한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평생 공부를 하려면 ‘즐거움’이 필수다. 그뿐 아니라 뭔가에 초점을 둔 ‘관심’도 필요하다. 조 교수는 “실력과 재능이 화살이라면 관심사는 표적이다. 표적 없는 화살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가 좋은 예다. 그는 중학생 때는 문제아였지만 재능이 뛰어나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다 1년도 안돼 중퇴를 하고 컴퓨터 회사를 차린다. 그게 마이크로 소프트사다. ‘세계 최고의 인재’와 ‘문제아’는 넘치는 열정과 재능을 어디에 쏟느냐의 차이다. 남들에게 생소한 컴퓨터에 진작 ‘관심’을 갖고 에너지를 쏟았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인재’가 됐다. 재능이 관심사를 만나 인재가 된 것이다.

▲ ⓒ제주의소리

조 교수는 이 예를 통해 “모든 관심사는 짓누르고 오로지 영어, 논술, 수학 실력만 키워봤자 50점짜리밖에 안된다. 나머지 50점은 관심사다.”라고 지적한다.

또 중요한 것이 ‘퍼지 사고력’이다. 이는 창의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일반적인 사고력이 정답이 있는 문제를 풀 때 유용한 반면 퍼지 사고력은 알쏭달쏭하고 정답이 분명치 않은 문제 상황에서 유용하다. 일반 사고력이 수렴형이며 사진선다형 문제에 적합하고 아주 정확한 답이 있을 때, 즉 학교 시험 문제를 풀 때 필요하다. 퍼지 사고력은 반대되는 사고력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지저분하고 알쏭달쏭”하다. 발산적 사고력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생각이 새로운 정보를 만나 더 크고 다양한 생각으로 발전하는 정해진 답이 없는 사고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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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천재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20세기 화가인 피카소, 과학자인 아인슈타인 또 조 교수는 한국의 이어령 선생도 들었다.

“문제는 우리가 창의적인 작품과 결과는 너무나 좋아할 수 있는데 막상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별로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어제는 이랬는데 오늘은 다른 사람, 내일은 어디로 튈이지 모른다. 의지할 수 없고, 안심할 수 없다. 조직은 이런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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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인재들을 포용할 수 없는 조직사회는 변화하지 못하고 결국 썩어버린다. 창의적 조직은 이들을 이해하고 보호하고 이들의 양면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줄 때 가능하다는 것이 조 교수의 생각이다. 조 교수는 특히 창의력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강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창의력은 요구가 아닌 허락이다. 이 말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좀 창의적인 돼바라’ 요구한다. 이는 창의력 말살이다. 창의력은 요구하는 것이 아닌 ‘허락’하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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