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 최고 투수, 최고 타자 휩쓴 '재일 동포'
일본야구 최고 투수, 최고 타자 휩쓴 '재일 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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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일본 야구 속 한국인

재일동포란 어떤 사람들일까?

법적으로는 일본에 사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한국 국적 뿐만 아니라 북한을 추종하는 조총련계 동포들도 우리 재일동포들이다.

그러면 왜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이란 사람들이 있어야만 되는 걸까?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난 직후, 일본에는 한반도에서 간 우리 민족 210만 이상의 동포가 있었다. 당시 한반도의 인구 약2천만명. 한반도의 인구 10분의 1정도가 일본에 살고 있었다.

그러면 왜 한반도의 10분의 1정도의 우리 동포들이 일본에 살아야만 했었을까?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였다. 전쟁을 하려면 전선에 병사도 있어야되고, 전쟁터로 공항도 동굴도 항만등도 만들어야 되고, 전쟁에 쓰는 물자를 만드는 공장도 있어야 한다. 전쟁을 하려면 길거리 개도 고양이도 사람으로 만들어서 쓰고 싶을 정도로 사람 손이 필요한 것이다. 징병으로 군인을 만들어서 전방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게도 했고, 후방에서 전쟁물자을 위해 일본에 데리고 간 것이다.

당시 전쟁은 또 공장은 지금처럼 기계화가 된 시절이 아니다. 다 사람 손으로 만들어야 될 때였다. 그래서 더 사람 손이 필요했다. 결과 한반도 인구 10분의 1이란 사람들을 일본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참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시아 민족 중에서 자기네는 1등 민족이요, 자기들 이외의 우리 한민족, 중국 국민등, 다른나라의 국민들은 3등 민족이란 묘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민족 차별이란 것이 일본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는 약60여만 동포들이 일본에 살고 있다. 또 일본 국민이 된, 즉 귀화한 사람들(한국계 일본인) 까지 합치면, 약 백여만 이상의 사람들이 된다. 일본 인구 약 1억2천만명이다. 재일동포및 귀화한 일본인 합쳐서 백여만 이라면, 일본인구의 약1% 정도이다. 그러나, 일본 야구에 영향력이란 1%란 숫자로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먼저,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에서 한국계 구단이 2개다. '롯데'와 '소프트 뱅크'다. 롯데는 한국 롯데와 같다. 소프트 뱅크의 회장은 재일동포 출신이다.

▲ 가네다 마사이치(한국이름 김경홍) ⓒ제주의소리
선수들은 어떤가? 최고 기록의 투수도 동포출신이며, 최고 기록의 타자도 우리 동포이다. 역대 또 현재까지 일본 투수중에서 최고의 승수(400승)을 올린 투수는 가네다 마사이찌(金田 正一, 한국 이름 金 慶弘)이다. 이 기록을 깰 투수가 나올까? 400승이라면 매년 10승씩을 올려도 40년, 매년 20승을 올려도 20년이 걸릴 기록이다. 이 기록은 영혼불멸의 기록이 될 것이다.

타자로서는 어떤가? 장훈(張勳) 선수가 있다. 그가 가졌던 일본 최다 안타기록 3085안타.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타자이다. 수십년간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 프로야구의 어른이다.

장훈 선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한국사람' 이라고 분명히 말하며, 일본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서서 훌륭한 플레이로 일본사람들을 매력시킨 의지의 우리 한국사람이다.

장훈선수의 어머니, 야구가 무엇인지도 모른 어머니가, 아들이 야구를 하는 야구장에 갈 때면, 고운 치마저고리로 말끔히 단장을 하고서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 동포 할머니들이 입버릇이 되버린 말이며, 내가 일본에 와서 우리 동포할머니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이야기이다.

장훈 선수. 장훈선수의 어머님. 우리 한국의 선수요, 한국의 어머님인 것이다. 1940년 히로시마(廣島) 출생인 장훈, 1945년 전쟁이 끝난 일본, 그가 프로야구에 입단한 1959년, 선수를 은퇴한 1981년까지, 1950년대 60년대는 일본도 무척 곤란한 시절이었다. 배불리 밥 먹었으면 아주 재수 좋은 날로 생각해야 될 그런 시절.

또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죠센진'. 일본사람들보다 더 빈곤해야만 했고, 한국사람이란 것때문에 받아야만 될 인간이하의 취급. 당시의 차별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였다. 그런 차별이 너무도 심했기에, 살기 위해서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닌 일본 사람' 이라며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장훈 선수는 장훈 선수의 어머님은 그런 차별을 피하려 하지않고, 떳떳하게 맞서 싸워서 이기면서, 일본 사람들 위에 선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너무도 많은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 주었기에 그의 어머니가 행하신 그 모습이 우리 할머니들의 입버릇이 된 것이다.

1940년에 태어난 장훈. 1945년 히로시마(廣島)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폭으로 누님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또 4살때 동내에서 화상으로 인하여 오른손가락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손을 가지고 오직 연습으로 '안타제조기' 란 별명을만들어 냈다. 안타제조기로도 유명하지만 연습벌레로도 유명한 일화가 많다.

▲ 장훈 ⓒ제주의소리

고등학교를 다닐때 퇴학을 당하는가 하면, 전학 간 학교에서 다시 야구부를 그만두어야 만 할때도 있었다. 이것 또한 차별 때문이었다. 좋치않은 일만 생기면 그 표적은 무조건 '조센진' 에게 돌아왔다. 고등학교 졸업후 1959년에 도에이 프라이야즈(東映 フライヤ―ズ, 현재 닛폰 햄)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에 신인왕, 다음해에 타율 3할, 다음해는 수위타자를 하는 등 매년 기록을 갱신해 냈다. 특히 수위타자는 7번을 했다. 이것 또한 기록이다. 안타만 많이 친 것으로 유명하나, 실제로는 그렇치가 않다. 홈런도 504개로 역대 7위, 도루 319개로 역대 21위이다. 통산 타율 3할, 300개 홈런, 300 도루의 기록은 역사상 없는 기록이다.

1976년에 巨人으로 이적, 1980년에는 롯데로 이적한후 1981년에 은퇴를 하게 된다. 지금은 야구해설자로서 활약하고 있으면서, TV에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은퇴하는 야구선수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서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니 ... 못난 놈.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때 우는 것' '이찌로의 안타기록은 기록이 아니라 참고기록. 미국 메이져 리그는 시합수가 많기 때문에 안타도 당연히 많아지는 것. 적은 시합수에서 그런 안타숫자를 올린 내가 진짜 기록 보유자' 라는 명언을 남기곤 한다. 야구만 잘한 것이 아니라 입심도 좋다.

장훈씨는 한국민족학교를 다녀보지 못했지만 한국말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또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창설이 되면서 한국야구위원회의 특별보좌관으로 취임 2005년에 퇴임했다. 한국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장훈씨는 재일동포의 보물이다. 일본의 국민 스포츠 야구를 통해서, 본인뿐만 아니라 우리 재일동포의 위상을 거침없이 올렸을뿐만 아니라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은퇴후에도 TV방송에서 명언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면 재일동포 야구선수는 장훈 선수와 김경홍 선수만 있었을까?

일본프로야구에는 명구회(名球會)와 야구전당(野球殿堂)이라는 단체가 있다. 야구전당(野球殿堂)은 미국 프로야구의 야구전당의 일본판인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는 물론 감독·코치·심판도 들어갈수 있고, 선수이외의 야구공로자, 아마츄어 출신까지도 들어갈수 있다.

선수및 감독등의 경우는 은퇴를 한 후에는 들어갈수 있다. 현역으로서는 추천을 받을 수가 없다. 들어갈수 있는 기준은, 추천으로 올라온 피추천자를 위원들의 75%이상의 찬성을 받아야만 들어갈수 있다. 전당에 입당이 결정되면 야구박물관에 흉판이 걸려져서 앞으로 일본에 야구가 존재 하는 한 영원히 그 이름이 남게된다.

2009년까지 168명이 야구전당에 입당을 했다. 명구회(名球會)란 단체가 있다. 1978년 가네다 마사이찌(金田 正一, 한국 이름 金慶弘)가 중심이 되여 만든 단체이다. 프로야구 옛날 명선수, 지금의 명선수들만 들어갈수 있는 단체인 것이다. 처음에는 친목회와 같은 성격이었으나 지금은 회사로서 법인체가 되여, 상호는 '일본프로야구 명구회'이다.

회사(단체)의 목적에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환원및 프로야구의 저변확대' 를 큼직하게 내걸어서 야구를 통한 사회 봉사활동및 야구교실등을 여는등,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명구회가 일반인들에게 넓게 인식이 되여, 사회에서도 확실한 단체로서 인식받고 있다. 이 명구회에 입회가 될려면, 투수로서는 200승이상을 올려야 되고, 마무리 투수로서는 250세브 이상을 올려야 되며, 타자로서는 2천안타 이상을 올려야 되는
명확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명구회에 입회가 되면, TV의 스포츠 뉴스에서 크게 보도가 되며, 은퇴가 가까워진 선수들은 200승 혹은 2천안타를 올려서 명구회의 입회가 된 다음에 은퇴를 하려고, 어지간한 발버둥 친다. 역대의 훌륭한 선수로서 이름이 남게 되니, 야구선수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수 있고, 개인 및 가문의 영광이다. 현역선수도 규정의 목표를 달성하면 회원이 되며, 회원이 되면, 명구회 마크가 들어간 양복 상의를 입혀주는 것이 TV로 전국에 대대적으로 방영된다. 현재 56명의 회원이 있다. 그중 재일동포 출신은 6명(상기의 김경홍, 장훈 포함)으로 볼 수 있다.(1명은 동포사회에서는 재일동포 라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로 되 있지만 본인이 확실히 밝히고 있지 않음)

명구회의 일본인 선수로서 한국과 관계가 깊은 선수가 있다. 타가쓰 신고(高津臣吾, たかつ しんご)선수 이다. 2008년에 히어로스에 재적했던 선수이다. 1968년생으로 오른손 투수이며, 구원(마무리) 전문이다. 싱커는 세계 명품이라 불릴 정도로 아주 예리하게 잘 돌아가는 볼을 던졌다. 일본에서 15년간 286세이브를 올려서 세이브 기 록, 미국에서 2년간 27세이브, 한국에서 1년간 8세이브를 올린 선수이다. 장훈 선수의 중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명구회의 56명중 재일동포 6영은 약 10%, 야구 구단도 12개 구단중 2개구단이 우리 동포계 구단이라서 약 10%, 일본인구 1억2천중에 약 백만명이 동포및 동포출신이므로 일본 인구의 약1%, 1%가 10%의 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신재경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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