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4.3 57주년] 4.3 연작시 - 김경훈

               조센징, 빨갱이, 똥돼지                   

                                                                                  김경훈


▲ 하산인. 산속 피난민들이 투항의 깃발을 들다. 폭설의 한라산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노인, 어린이, 부녀자들은 흰수건으로 만든 백기를 들고 해안으로 하산해왔다. 이러한 수 많은 하산인들은 수용소에 갇혀 지내야 했으니, 무더기로 치러진 군사재판에서 어떻게 분류됐는가가 그들의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 강요배 화백. 동백꽃 지다.
제주에 있을 때는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이를 피해
부산에 도망갔을 때는 ‘제주도 똥돼지’ 소리를 들었다 이를 피해
일본에 밀항해서는 ‘조센짱이라 하여 멸시를 받았다
이를 피해 살 수는 없었다
나의 자존을 세울 수 없었다
선택은 둘 중 한 가지다
죽든지
아니면 돈이다

돈 앞에서는 다 무릎 꿇는다
악착같이 돈 벌어서 놈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조센징이라 놀리는 쪽바리들
똥돼지라 놀리는 육지것들
빨갱이라 놀리는 부모형제 일가방상의 원수들에게
나는 보란 듯이 성공해서 나의 원한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역시 돈보다는 자존심이다

인민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데 아무런 저항을 못했다면
제주도 남자들은 불알을 까버려야 했을 것이다

▲ 광풍(光風) ⓒ 강요배 화백. 동백꽃 지다.

김경훈
1962년 제주 출생. 1992년『통일문학통일예술』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운동부족』,『고운 아이 다 죽고』,『한라산의 겨울』. 희곡집『살짜기 옵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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