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3 57주년] 연작시(9) - 양영길

              애기 돌무덤 앞에서

                                                                                            
                                                                                         양영길

 

▲ 빌레못굴의 유골 ⓒ 강요배 화백. 동백꽃 지다.
북촌 마을에 가면
제주 4․3 때 군인 한두 명 다쳤다고
마을 사람 모두 불러모아
무차별 난사를 했던 총부리의 서슬이
아직도 남아 있는
조천면 북촌 마을에 가면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흙 한 줌 없는 언덕배기에
돌무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직 눈도 떠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들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들이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나의 눈에는
너무 낯선 이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누가 이 주검을 위해
흙 한 줌을 허락해 주지 않았을까
누가 이 아기의 무덤에
흙 한 줌 뿌릴 시간마저 빼앗아 갔을까
뺏고 빼앗기는 시대였을까

돌무더기 속에서 곱게 삭아내렸을
그 어린 영혼
구천을 떠도는 어린 영혼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용서를 빈다
제발 이 살아 있는 자들을 용서하소서
용서를 빌고
또 빈다

양영길
1952년 제주 출생. 1987년『현대시학』, 199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람의 땅에서』(1999). 저서『한국문학사 인식 어떻게 할 것인갱(2000).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nuli001.do 이메일 nuli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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