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쾌한 여행 에피소드

▲ 실크로드 여행에 함께한 일행. 왼쪽부터 김찬수, 고유기(필자), 현기영, 허상수, 박은석. ⓒ제주의소리

동행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많진 않지만 여행길에 누가 동행하게 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행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혼자의 여행을 우선 꼽는다. 동행이 있다 하더라도 신혼여행을 포함한 부부지간 여행이 아니라면, 오랜세월 우정을 쌓아온 친구 한 명 정도가 딱이란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은 필자 포함 다섯 남자가 함께 했다. 40대, 50대 60대 다른 세대의 다섯 남자. 그 만큼 템포와 시각과 마주하는 풍경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그런 각각의 다름을 조율하며 여행 내내 원활한 여정을 일구어낸 김찬수 박사의 수고로움이 지금에서야 제대로 느껴진다. 노고에 감사를! 

 이번 글에서는 여행에 동행한 분들의 여행 중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인상을 소개한다. 이 글이 동행한 분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없지 않은 만큼, 미리 깊은 해량을 구한다.

  현기영 선생의 ‘버럭’ 사연

▲ 현기영 선생. 힘든 여행 내내 여유와 꼿꼿함을 놓지 않았다. ⓒ제주의소리
 배낭 매고 잰걸음을 놓지 말아야 할 여정 내내 여유와 꼿꼿함 또한 놓지 않으신다. 불과 열흘이라지만, 험난한 여정도 연륜의 정돈된 무게를 범하지는 못했다. 그런 현기영 선생이 한 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 좋다.

  여정의 마지막 코스, 둔황에서의 밤. 제주시 칠성로보다 조금은 넓은 거리에 야시장이 형성돼 있다. 각종 상품을 파는 부스들이 즐비하고, 차량진입이 통제된 거리에는 수많은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음식과 더불어 밤을 즐긴다. 우리도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양고기 꼬치를 비롯한 적당한 음식, 술로 마지막 여정을 음미하고 있다. 그런데 좀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가 저쪽에서 색소폰을 멋지게 연주한다. 케니지의 ‘고잉 홈’이 마치 우리 일행의 귀향행을 축복하는 듯 들린다.

  거기 까지는 좋았다. 색소폰 연주가 끝나자, 이번에는 어느 취객이 노래방 기기를 이용해 한바탕 노래를 불러 제낀다.  노래가 우리의 ‘뽕짝’ 정도에 해당되는 듯 하다. 그런데 잠자코 듣던 현기영 선생이 갑자기 버럭 하신다.

   “야! 시끄러 임마!”

  예상치 못한 현선생의 ‘버럭’에 우리 일행, 순간 긴장된 침묵에 휩쌓인다. 그 날은 밍사산(鳴砂山) 사막을 걷고 온 터였다. 막고굴의 감상도 긴 시간의 집중과 걸음을 요구했다. 그랬던 터라, 여느 여정보다 피곤하고 지쳤다. 거기다 허기진 상태에서 늦은 저녁식사에 적당히 오른 술은 내면의 정돈을 일순간 해제시킨다. 그것이 현기영의 선생의 일탈(?)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인물의 표상에 가해지는 충격. 이것 또한 동행의 매력이리라. 

▲ 밍사산 사막을 걷는 현기영 선생 ⓒ제주의소리

▲ 둔황의 밤거리 ⓒ제주의소리

 허상수 교수, “헤이!  따거! 노 스모킹!” 

▲ 허상수 교수 ⓒ제주의소리
  아마 일행 중 가장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아닌가 한다. 앞서 밝혔거니와, 그는 여행 첫 날, 잘못된 기차표 때문에 일행과 떨어져 홀로 북경서역에서 신문지 덮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여행 엿새 째 되던 날. 허교수와 나, 박은석은 쿠처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 우리는 터미널 근처 노천식당에 앉아 술과 함께 요기를 하며 위구르 박물관을 뒤늦게 둘러보고 온다는 현선생과 김찬수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코스에서 거쳐간 식당에서는 물을 내주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주문에 앞서 차를 내준다. 거기다 술까지 들이키니 나는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나는 식당 주인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뭐? 화장실이 없다고? 그럼 당신네는 어디서 ‘볼 일’을 해결해?”

“$#% ... #$..%@#.. " (저 길거너 나무 밑에 가서 해결해라)

"그래요? 그럼 같이 가자!" (설마하며, 혹시 나를 엿먹이려는 의도가 아닌가 해서)

 그랬더니 진짜로 그 곳까지 주인이 안내해준다. 안심하고 볼일(?)을 보고 제자리로 왔는데, 이번에는 허상수 교수가 화장실행을 준비한다. 이미 화장실 간다고 버스터미널까지 갔는데도 화장실이 없다며 허탕치고 돌아온 그였다. 나는 허교수에게 주인이 알려준 바로 그 곳, 길건너 나무밑으로 가시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볼일 보던 허교수, 공원관리인쯤 되는 사람으로부터 호되게 욕먹고 도망치듯 그 곳을 쫓겨 나왔단다. 상상해보라. 한 참 볼일을 보는데, 저 쪽 뒤에서부터 누군가 뛰어오며, 호통을 치는데 볼일은 안끝나고 허겁지겁 그 곳을 재빨리 떠야했던 허교수의 그 난처함과 민망함을. 괜히 나만 미안해졌다.

  허교수가 빚어낸 여행 중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우르무치에서 쿠처로 가기위해 14시간을 달려야 하는 버스안. 이 버스는 실내가 모두 2층 침대로 돼 있다. 편안하게 누워갈 수 있는게 장점인 반면,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책을 읽고 싶어도 뜻대로 안된다. 오로지 운전사의 뜻대로이다. 대체로 3시간에 한 번 휴게소에 들르긴 하지만, 담배를 즐겨피는 애연가들에게는 버스안이 일순간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버스가 출발하고  한 두 시간이 흐르자, 운전사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워무는 승객들이 생겨났다. 운전사와 시종 말을 주고 받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니, 같은 서역인들이라 그런지 뭔가 통하는 모양이다. 오랜 시간 밤버스를 운전해야 하는 운전사 입장에서도 비록 ‘금연버스’이지만 졸음을 쫓고 지루함을 달랠 수 있어서인지 허용하는 분위기다. 운전사와 승객이 아예 서로 담배를 물고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 허상수 교수, 문제의 침대버스에서의 셀카 ⓒ제주의소리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허상수 교수, 갑자기 버스 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 헤이! 노 스모킹 !” 

 이에 놀랐는지 운전사가 힐끗 백미러로 둘러 본다. 그래도 변함 없는 분위기, 더욱 더 큰 목소리로 누운 자세에서 반쯤은 일어나 삿대질과 더불어 허교수, 한 번 더 소리친다.

  “헤이! 헤이!! 따거! 노 스모킹, 노우!”
 
  그렇지만, 이 일로 운전석 옆 담배 대화가 끊기지는 않았다. 아니, 거꾸로 일종의 복수(?)를 당해야 했는데, 그 주인공은 내가 되었다. 나는 보아 하니, 운전사와의 담배 대화가 마치 관행처럼 이뤄지는 것 같아, 슬그머니 나도 운전사 옆으로 가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내 옆에도 어느 서역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를 물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운전사, 내 담배 끼워든 손을 힛끗 힛끗 쳐다보더니 갑자기 확 담배를 빼앗고 창 밖으로 던져버린다. 이런 민망할때가! 금연버스안에서 왠 담배냐는 표정이다. 나는 속으로 이내 ‘아뿔사! 당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아까 ‘노 스모킹’을 외치던 승객과 일행인 것 같은데, 그러면서 너는 왜 담배피냐는 투로 뭐라 뭐라 일러댄다.

  얼마 후,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버스가 멈췄다. 밖에 내려 일행은 아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현기영 선생이 일갈하신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따라야지, 왜 나서서 문제를 일으키냐는 것이다. 누가 금연버스인지 모르냐, 괜히 후진적인 자국인들에게 뭘 가르치려는 외국인 인상 아니냐, 그 덕에 우리까지 괜히 ‘이상한 놈’ 됐다는 등등. 현선생 뿐만 아니라,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한다. 급기야 허상수 교수, 인정한다며 ‘반성’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서 나는, 아까 그 운전사와 옆에서 담배를 나누던 서역인들이 모인 곳에 가서 담배를 권하며 애써 친근한 표정을 연출하며 ‘유감’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선뜻 즐거운 화해에 응해주었다.

  낯선 곳의 여행에서는 우리사회의 ‘교수’도 즐거운 도발을 발휘할 수 있다. 내내 그 즐거움을 준 것이 허상수 교수였다. 험난한 여정에도 현기영 선생을 ‘보필’하며, 후배들에게도 여유와 웃음으로 대해준 허교수의 풍모가 그립다.

   박은석, 그는 실크로드에서도 음악평론가였다

▲ 음악평론가 박은석 선생 ⓒ제주의소리
   박은석 선생은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안 친구이다. 새로운 만남과 더불어 여행까지 동행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어느 덧 오래된 관계인듯 여겨진다. 그는 음악평론가로 국내 유력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기도 하고, 상업음악이 아닌 독립음악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여러 일에 관여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이 벌이는 국내 곳곳에서의 활약상은 가끔 들을 수 있는데, 그 또한 그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는 여행 중에 일어나는 일들도 음악적으로 해석할 줄 한다.

  앞서 현기영 선생의 ‘버럭’사건(?)이 벌어진 돈황의 야시장에서도, 케니지의 ‘고잉 홈’을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에, 얼른 “아! 고향 여정에 오른 우리를 축복하는 노래 아닙니까?” 하며, 즐거운 해석을 달아준다.
 
 쿠처에서 유위안으로 가는 새벽 기차를 탔다. ‘아비규환’이라 할만한 기차안 풍경에 가뜩이나 피곤에 절어있던 우리는 절망했다. 발조차 디딜틈 없을 정도로 가득찬 사람들, 후덥지근함과  땀냄새, 중국 특유의 향이 스며든 음식냄새, 이 곳 저 곳의 시끄러운 소리들....

  그런 와중에 춤을 추는 소녀들이 있다. 투루판이 고향인 그녀들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신 그녀들의 전통춤을 즐겁게 선보인다. 기차안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어우러지는 분위기다. 어른과 아이가 없고, 춤과 노래가 있다. 우리들의 마음도 가벼워졌고 정신도 맑아졌다.

 이들 좌석 왼편에는 ‘디디’와 ‘바바’부부가 그들의 딸, 아들과 앉아있었는데, 그들의 딸 ‘노르비’는 꽤 영민하게 보인다. 박은석은 이내 그녀와 친해져서 한글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중간역인 하미에서 투르판 소녀들과 노르비 가족이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투르판 소녀들과 어울리던 한 ·청년이 박은석에게 다가온다. 그는 알 수 없는 몸짓으로 무언가를 물었는데, 우리는 이내 그것이 아까 내린 노르비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느냐는 물음임을 알아채렸다. 기차 안에서 투르판 소녀들과 어울리던 그는 한편으로 노르비를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 청년은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서야만 했다.

▲ 전통춤을 추며 기차안을 즐겁게 달군 투루판 소녀들. ⓒ제주의소리

▲ 기차안에서 모두에게 호감을 줬던 예쁜 8살 소녀 레이한 굴 ⓒ제주의소리

  박은석은 1970년대 중반 인기를 누렸던 팝그룹 스모키(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의 노랫말과 연결시켜 그 청년의 안타까움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노랫말은 이렇단다. 24년 동안 짝사랑한 옆집의 앨리스가 이사를 가버렸다는 소식을 샐리라는 또 다른 이웃의 여자가 들려준다. 그러자 그는 " 큰 리무진 차가 앨리스 집으로 들어가서 그애를 태우고 가버렸어!, 내가 24년을 한 동네에서 앨리스랑 잘되기만을 기다렸는데. 이젠 앨리스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수 없을것 같아...." 라고 허탈해 한다. 바로 그 때, 샐리가 “앨리스는 갔지만 24년을 널 기다려준 내가(샐리) 지금 바로 네 곁에 있잖아 "라며 자신이 정작 앨리스를 사랑한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고백한다는 내용.

 마치 지금의 상황이 그 노래를 연상케한다며 1970년대 중반의 노래에 빗대어 박은석은 설명하는 것이다. 혼잡한 기차안 풍경과 공기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유명한 팝의 노랫말로 자신이 겪은 상황을 빗대어 우리를 청량감있게 이끌었던 것이다. 각각이 관계하는 삶의 역량이 발휘되었던 매순간들은 이번 여행의 고단함을 풋풋한 기억으로 남게했다.

  즐거운 해결사, 김찬수 박사

▲ 김찬수 박사, 이번 여행을 제안하고 여행 내내 어려운 일을 해결해냈다. ⓒ제주의소리
  이번 여행을 제안하고 준비부터 현지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행을 이끈 것이 김찬수 박사이다. 이미 작년 실크로드 기행에 홀로 나섰던 그였다. 기왕 나설 거라면, 실크로드의 다음 코스 기행에 나서야 할 그가 오로지 우리 일행을 위해 재차 동일한 코스의 여행에 나선 것이다.

  기차표를 구하느냐 여부가 관건인 실크로드 여행에서 매번 기차표를 결국 만들어내고, 숙소를 찾아내고, 이동수단을 구하기 위해 어려운 타협을 가는 곳마다 성사시켜냈다.

  그의 너스레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이번 여행의 또다른 행간이 되었다. 택시를 탈라치면, 앞좌석에 앉아 “유어 밍짜(이름)? 밍짜?”  하면서 “오우! 마이 밍짜, 에~ 찰스(찬수) 브론즈 !” 하며 운전사에게 친화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일부 구간에 있었던 택시투어 내내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그만의 전략인 것이다.
  
  둔황에서 시안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둔황역에 도착했다. 미리 구해둔 표를 든든하게 챙기고 있던 터여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역에서 화기애애한 대화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탑승이 시작될 때까지도 우리는 있는 여유를 다부리며 길게 늘어선 탑승줄이 꼬리를 보일때 즈음해서 기차에 오르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앞에 서 있던 허상수 교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줄 뒤편의 우리에게 오더니 자기가 갖고 있던 표를 내민다.

▲ 기차에서 잠든 필자. 좌석보다 잠자기에는 이게 편하다. 나중에는 미리 잠자리용 골판지를 구하는 여유도 부렸다. ⓒ제주의소리
  이럴 수가! 우리가 미리 구해둔 표는 지금 탈 기차가 아닌 다음 날 기차표가 아닌가! 일정이 중간에 변동이 있었는데 다음날 둔황에서 떠나기로 된 원래 일정만을 의식해 표를 샀던 것이고, 일행중 누구도 기차표의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나는 오늘 기차를 못타면 베이징에 도착하는 일정도 늦어지고, 결국 예정된 비행기도 못타 언제 귀국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탑승이 마무리 되어가는 순간이었던 만큼, 대책을 끄집어낼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김찬수 박사가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를 박은석이 쫓았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김박사는 제대로 된 날짜가 찍힌 표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당황하거나 절망할 새 없이 역 관리사무소로 달려갔고,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정을 설명하고는 결국 표를 구해온 것이다. 그것도 입석도 아닌 좌석표로 말이다.

  그렇듯 김박사는 여행 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의 해결사였다. 모든 문제를 해결의관점에서 풀어냈다. 힘든 여행이 별 탈없이 무사히 마무리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이었다.  <계속>

▲ 기차역에 앉아 잠시 나누는 담소는 이번 여행에서 흔치 않은 여유이자 즐거움이다. ⓒ제주의소리

▲ 기차에서의 고단한 수면. 현기영 선생과 허상수 교수 ⓒ제주의소리

▲ 기차는 실크로드 여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제주의소리

▲ 동행 ⓒ제주의소리
▲ 밍사산 전경 ⓒ제주의소리
▲ 밍사산을 오르며 ⓒ제주의소리
▲ 밍사산의 오아시스, 월아천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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