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현기영 선생의 제주에 대한 생각과 제언

 무엇이든 ‘의미’는 ‘경험’ 후에 찾아오는듯 싶다. 사실, 나에게 실크로드 여행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왜 이리 힘든 배낭여행을 사람들은 못떠나서 안달일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간에는 나머지 일정을 포기하고서라도 그저 돌아가고만 싶다는 본능과도 같은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얼마 후, 찾아온 ‘의미’. 그것은 아직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여백같은 것이다. 새로운 활기이기도 하고, 어떤 ‘여여(如如)’한 일상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험난함이든 여행은 떠나볼만 하다.

 이번 실크로드 기행의 마지막은 현기영 선생의 인터뷰로 대신하고자 한다. 애초 이번 여행의 기행문은 선생과의 인터뷰 형태로 작성하려 했었다. 하지만, 여행 중의 빈번한 인터뷰는 오히려 선생께 누가 될 것 같고, 무엇보다 인터뷰어로서 필자의 역량이 부족했다. 때문에 선생과의 인터뷰는 이번 실크로드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험난한 여정속의 겹친 피로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께 감사 드린다.

▲ 현기영 선생과 필자, 여행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고유기 시민기자

 현기영 선생과의 인터뷰는 실크로드 기행 말미, 둔황에서 시안으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아침 무렵 이뤄졌다.

 현기영 선생은 작년에 펴낸 소설 ‘누란’을 통해 사막화, 황폐화 되어가는 인간 사회를 조명하고자 했다. 이번 여행에서 그는 3,800년전의 누란의 미이라를 보고, 사막을 걸으면서 헛된 욕망의 덧없음을 느꼈다며, 단순 소박한 삶의 가르침을 새삼 일깨웠다고 한다.

 현선생은 또한 중국 문명에 대한 비판적 지적과 더불어, ‘무사(無事), 무위(無爲)’의 노자 사상이야말로, 오늘 날 현대문명을 넘어서는 대안임을 말씀하신다. 특히, 제주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노자의 이상국가,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지금이라도 제주의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무사, 무위의 대응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계시다.

 현기영 선생은 내년에 또 한 권의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알려주신다. 이번에는 산문집 형태가 될 것 같다. 현기영 선생은 “살아가면서 나이들고 예전에 못느꼈던 삶의 기미, 단면들을 떠올리게 된다.”면서,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놓쳤던 의미를 탐구하고 싶다.“ ”그간 제주의 4.3과 역사문제에 진력하다 보니, 나를 둘러싼 세계들에 무관심 했던 것 같다. 특히 꽃과 나무와 같은 자연에게 미안하다.”며 책 집필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이미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통해 자연과 인간세계의 교감을 제주에 대한 기억으로 들려준 바 있는 현선생의 이번 작품은 보다 보편적이고 본격적인 시각의 내용물이 아닌가 싶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 지평선과 먼 산맥, 실크로드 여행내내 다가오고 멀어지는 풍경이다. 삶의 희구가 이와 같다. ⓒ고유기 시민기자

중앙의 논리에서 벗어나 제주의 독자적 자존 회복해야
 
- 이번 여행을 한 마디로 표현하신다면?

= 음 ... ‘사막 경험’? 현장법사와 혜초가 갔던 길을 비록 터벅터벅 걸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일생을 다해 이상이나 꿈을 추구하며 걸었던 그 길을 뜻있게 음미할 수 있었죠. 삶이란 단순히 얘기하자면, 군데 군데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 아닌가 합니다. 혜초의 그 길이 부질 없어 보이지만, 누구가 이 사막에 오면 자신이 아등바등 쫓아가는 자본의 길이 오히려 부질없다는 느낌을 받게 돼 있어요.

- 저는 실크로드의 문명과 제주를 비교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는 변방이고, 실크로드의 도시들 역시 오늘 날 중국의 변방에 속합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제주와 실크로드가 문명의 교류지로서, 중심으로서 기능했습니다. 변방과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실크로드에 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 역사적으로 서역의 여러 국가들이 고대문명을 일으켰지만, 그 대부분이 모래 속으로 사라지고, 오늘 날 그 민족들은 중국의 침략으로 독자성을 상실하고 말았어요. 자연환경도 사막화와 더불어 초록의 영역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주 역시 서역의 고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탐라국이라는 이름의 독립적 국가를 이룬 경험을 갖고 있고, 그러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구한말까지고 낮은 수준이긴 했지만 자치적 지위가 남아 있었죠. 지금은 중앙 집권의 논리 아래 철저히 아주 작은 ‘분자’로만 존재하는 듯 합니다. 서역의 여러 문명이 명멸을 거듭했던 것 처럼 탐라가 꽃피웠던  문명, 문화 역시 중앙 이데올로기에 흡수되면서 제모습을 잃었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서역은 사막과 문명의 자취가, 제주는 자연환경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주의 자연환경이 관광의 자원으로 기능하듯, 서역의 도시들, 우르무치나 둔황 등도 관광지로서의 정체성만 남은 듯 합니다.

▲ 투르판에서 모래폭풍을 만났다. ⓒ고유기 시민기자

  우리 제주의 경우, 관광지로서의 입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계해야 할 것은 특유의 방만한 소비문화입니다. 육지의 다른 도시들과 똑같은 정도가 아니라 더 파행적입니다. 관광사업을 하는 주체로서 제주인의 자존심, 창의력을 갖춰야 합니다. 전통을 재발견하고 창의적 노력에 의해 우리 나름의 문화를 가꿔야 합니다. 예컨대, 4.3의 수난과 항쟁의 역사를 창의적으로 형상화하여 아주 중요한 관광 품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남과 구별되는 이러한 창의성이야말로 우리 제주를 일급 관광지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관광지로서의 파행적 소비문화는 서역의 도시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르무치든, 둔황이든, 시안이든, 서울이든, 제주이든, 똑같은 풍습의 젊은이들이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오늘 날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획일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름의 독자적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아주 다른 별개의 문화를 만들기는 불가능하지만,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그러한 문화, 문화적 자존심, 창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는 생활이나 삶이란 허황될 뿐입니다.

▲ 3800년전 누란의 여인이 미이라로 누워있는 우르무치 위그루 박물관의 모습 ⓒ고유기 시민기자

 소설의 무대가 된 누란의 여인을 만나다

- 이번 실크로드 여행길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인가요?

= 우르무치, 돈황 보다는 쿠처나 투르판에서 옛사람, 옛 생활모습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왜곡된 자본주의 문화에 비틀리지 않았던 순수한 인간상들이 그 곳에는 남아 있었습니다.

- 이번 여행은 거의 절반의 시간을 기차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기차여행이 선생님께는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 비행기의 속도를 거부하고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가는 역정은 그 자체로 느림에 적응하는 과정이 되었죠. 만나지 않고 사귀지 않은 사회가 편협한 인종주의를 낳을 수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타인들과 얼굴을 가까이 하고, 체취를 맡으면서, 또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그들이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이런 인식들이 사회적으로 획득되면 인종주의와 편견도 없어질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차여행을 통해 소수민족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손짓, 몸짓을 동반한 소통의 과정이 재미도 있었어요. 또 그들과 꼭 같은 밥을 먹는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직각형 의자에 몸을 기대어 자야 하는게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어요.

 기차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풍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매순간 다른 풍경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막과 먼 산맥, 지평선으로 다가 가는가 싶더니 또 멀어지는 그 느낌은 기차여행 아니면 쉽게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어요.

▲ 현기영 선생 ⓒ고유기 시민기자

- 여행 이후, 무엇이 달라질 것 같은지요?

= 내 소설 제목을 ‘누란’으로 정했던 것은 상징적인 이유에서였지요. 기후변화, 사막화되는 자연과 같이 인간사회도 사막화 되어 가는 인식으로 누란을 썼습니다.  

 ‘누란’이라는 작품을 그 곳에 가보지 않고 써서, 그 곳에 꼭 가보고 싶었어요. 그 곳에서 비록 미이라로 누워 있었지만, 3800년 전의 여인을 만나면서, 또 사막을 기차로 달리면서, 때로는 걸으면서, 난 것은 ‘해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 사막을 걸으면서 지나친 욕망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 것가를 실감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막은 나에게  일상에서 ‘비움’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무사(無事), 무위(無爲)’의 노자사상에서 미래를 밝혀야

- 중국에 대한 인상은 어땠는지요?

 =개인적으로 중국 경험은 세 번째입니다. 앞서 두 번은 모두 도시에서만 지냈죠. 한 번은 중국의 작가동맹 간부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영웅문’의 저자(김용)를 훌륭한 작가로 평하는 것을 듣고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웅문’은 다분히 오락물과 같은 위안의 문학이라 생각해요. 영웅문 전개 자체가 ‘허장성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허장성세’는 중국 특유의 무엇과 맥이 닿아 있는데, 중국 도처에서 이것을 발견할 수 있었죠. 중국이 ‘대국주의’ 노선을 견지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허장성세 속에서는 작지만 귀한 가치들을 짓밟을 수 있는 난폭함이 반드시 깃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봐요.

- 중국은 동양문명과 사상이 발원했던 곳이고, 그 흐름을 면면히 확장시켜 온 나라입니다. 물론, 서역을 중심으로 한 여행이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현실은 마치 ‘낡은 사회주의에 경박한 자본주의의 옷을 입혀 놓은 꼴’이라고 할까?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바로 그런 인상 때문에 넓은 땅덩어리와 수억 인구의 중국에 대한 어떤 공포마저도 느껴지는데, 너무 저의 속단인가요? 어쨌든 중국의 현실은 이번 여행에서 일종의 ‘속된 조잡함’ 처럼 다가옵니다.

= 서양문학을 해서 그런지 중국문학은 뭔가 치밀하지 못한 날림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공자의 사상도 세련된 실용주의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백성을 통치하기 쉽개 획일적인 질서 속에 묶어 버리는 식의 이데올로기죠.

▲ 병마용의 모습. 현기영 선생은 중국의 규모의 논리는 허장성세로 나타나고 이는 작고 가치있는 것을 짓밟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고유기 시민기자

 인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나는 노자를 좋아합니다.
 
 노자의 사상은 제주공동체의 삶과 맞아 떨어지는 면도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이른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는 이상사회, 이상국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치와 상부상조의 공동체였던 제주의 전통사회야말로 그러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은 사람끼리의 공동체가 되어야 인본정치(人本政治)가 가능할 것입니다. 인구가 많을 수록 중앙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주는 명색만 특별자치도일뿐, 자치는 커녕 중앙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문화의 고양이 필수적입니다. 망가진 공동체를 복원하여 창의적인 생산성을 획득하려면 강한 자치정신, 자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현기영 선생의 소설, '누란'. 현기영 선생은 이 소설을 통해 사막화, 황폐화되어가는 인간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고유기 시민기자
 아울러, 노자의 사상은 오늘날 현대 인류가 직면한 환경문제의 해결의 관점에서도 해답이 될 수 있는데, 인위적인 자연관리나 개발이 아닌 무위(無爲)의 철학이 그것입니다. 관광개발이란 이름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에 손을 대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자연환경에 관한한은 ‘무사(無事), 무위(無爲)’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를 여행했을때, 사람들 소개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 보다는 제주사람이라고 하면 더 좋아하는걸 경험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케이블카, 시멘트가 아닌 순수한 제주의 자연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무사, 무위의 정책이 필요합니다.

-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계시는걸로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 노경에 접어들면서 예전에 못 느꼈던 삶의 기미들, 단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놓쳤던 사물의 의미들을 탐구하고 싶어요. 그간 제주의 4.3과 역사문제에 진력하다 보니, 나를 둘러싼 세계에 다소 무관심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꽃과 풀과 나무, 산과 강, 바다와 같은 자연에게 미안합니다. 이번은 그런 탐구의 결과물로서의 에세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내년쯤 출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

▲ 기차안에서는 서로 다른 인종, 민족의 사람들이 똑같은 밥을 먹고 무릎을 마주한다. ⓒ고유기 시민기자

▲ '난'을 구워파는 쿠처거리의 어느 가게, 서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고유기 시민기자

▲ 동행. 사막을 오르다. ⓒ고유기 시민기자

<이번 글로 실크로드 기행문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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