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언론과 전쟁→98∼99년 검찰 수사→04년 실형 선고

신구범 전 지사가 세칭 '은혜마을' 사건과 관련해 서울고법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정치적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해있다.

아직 대법원 상고심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법원 상고심은 10년 이상 징역형 선고가 아닌 경우 항소심의 유·무죄 판단의 잘못과 잘못된 법률 적용 등에 국한돼 있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번 재판은 지난2000년9월 서울지검 특수1부가 축협중앙회장을 그만 둔 신구범 전 지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면서 시작됐지만 은혜마을 사건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97년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구범 지사가 첫 민선지사였던 그해 2월 제주도는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따라 도내 관광지구를 기존 3개단지 13개 지구에서 3개 단지 20개 지구로 확대하면서 대유산업이 신청한 우보악지구를 신규 관광지로 추가했다.

은혜마을 특혜 의혹…신구범-한라일보 전쟁 일촉즉발

대유산업은 색달동 우보악 서쪽일대 81만평에 3000억원을 들여 콘도미니엄과, 골프장, 위락시설 등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우보악 지구가 아닌 전혀 엉뚱한 쪽에서 시작된다.

1997년7월 제주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봉개동에 있는 '은혜마을(현 평화양로원)' 진입로 개설 문제가 거론됐고, 이 과정에서 은혜재단에 신 지사의 부인이 이사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의회가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한라일보는 이를 '愼지사 부인 참여 은혜재단 진입로 사업비 道에서 지원, 특혜논란'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후, 이에 대한 후속취재에 들어가 '우보악지구 사업자인 대유산업 회장의 장남인 한모씨 명의로 은혜재단에 20억원을 출연했다'며 우보악지구 지정-은혜재단과의 의혹을 속보 형식으로 잇따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신구범 지사는 며칠 후 기자회견을 갖고 한라일보에 대해 '악의적 음해성 추측보도'라고 비난하면서 한라일보에 대한 취재거부의사를 밝혀 한때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발전했으나 다행히 주변의 중재로 더 이상 확전되지 않은 채 사태가 수습됐다.

신 지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대유산업 회장 장남인 한모씨가 제주도를 사랑하는 한씨 부친과 부인의 뜻에 따라 장애인과 불우노인을 돕기 위해 20억원을 출연했고, 그 후 10억원을 추가로 출연했다"며 신 지사 자신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촌 땅을 봉개동에 있는 친구의 땅과 바꿔 재단에 현물로 출연했다고 밝혔었다.

제주지검, 6.4 지방선거 직후 특혜의혹 수사…신구범 단식 농성

이후 세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은혜마을 사건은 신구범 지사가 민선 2기 선거에서 패배해 도지사직을 떠난 직후인 1998년7월, 검찰이 사정차원에서 공직비리 대상자로 신 전지사를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한다.

신 전 지사는 이에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우근민 후보의 선거운동원의 고발에 의한 것이라며, 검찰의 표적수사 항의와 우근민 후보의 불법금권선거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

검찰은 이때 은혜재단에 대한 수사와 함께 컨벤션센터 선거자금 유입, 그리고 신 전 지사가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건축주인 정모씨 등에 대해 대규모 수사반을 투입해 2개월간의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정씨만 신 전 지사와는 별개의 사건으로 구속하고, 컨벤션센터 자금유용에 대해서는 무혐의, 은혜재단 출연금 30억원 뇌물 수수건에 대해서는 내사 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한동안 연구활동을 하며 지내던 신 전 지사는 농·축협 통합 파동이 한창이던 1999년 7월 축협중앙회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축협통합 항의 국회 할복 소동…서울지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축협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농·축협 통합을 밀어 부치며 그해 9월 통합법안을 국회에 상정,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처리를 시도하자 신구범 축협중앙회장은 상임위 회의장에서 할복하는 국회의정 사상 첫 사건을 만들어 내면서 다시 한번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게된다.

2000년7월 축협중앙회장을 사임한 그에게 서울지검이 출두요구서를 보내고, 이번에도 또다시 은혜재단 뇌물수수혐의와 국회 회의장 소동, 예금이자 과다지급으로 축협에 970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실질심사에서 기각되자 검찰은 두달 후인 9월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속됐다가 이틀 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

결국 신구범 전 지사는 1997년7월에 촉발된 은혜마을 특혜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차례 언론과의 전쟁,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와 재판 끝에 30억원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돼 서울고법에서 징역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신 전 지사는 지난 7년여 동안 우보악 지구지정과 은혜마을(재단)의 특혜의혹, 그로 인한 뇌물 수수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서울고법은 결국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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