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숙 복식문문화연구소장이 말하는 '제주인 의복' 지혜

“없으면 없는데로 최상의 재료를 골라 옷을 짓는 제주인들의 창의성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생각해요”

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도문화재위원)은 옛 제주인들의 의복생활을 설명하며 감탄하듯 이같이 말했다. 14일 제주문화예술재단 인문학강좌 첫 번째 강사로 나선 현 소장은 '제주 최고의 멋쟁이'를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 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인들은 띠를 이용해 '우장' 즉, 지금의 비옷을 만들어 입었다. 육지부에는 짚으로 만든 우장이 있지만 '띠 우장'이 최고다. 습기에 강하고 잘 썩지도 않는다.

제주 우장에는 거센 비바람에 제주인들이 어떻게 적응해왔는지 새겨져 있다. 띠를 엮은 모양과 목 부분의 말총 마감은 비가 잘 새지 않고 방향 없이 불어대는 제주바람에도 끄떡없다.

현 소장은 “제주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걸 이용해 만들었다. 자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을 얻었다. 띠가 지천에 있다고 해도 항상 쓸 만큼만 베어왔다”고 말했다.

없으면 없는 것 빼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것을 구하려는 ‘제주 정신’이 깃든 또다른 예로는 ‘원삼’이 있다. 원삼은 원래 조선시대부터 혼례때 여성들이 입는 ‘공주옷’이다. 혼례 때만큼은 왕족들이 입던 옷을 한 번 입게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제주 원삼은 형태가 육지부와는 달리 많이 단순하고 생략돼 있다. 그만큼 물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인들은 마을마다 계를 조직해 결혼식 때 입는 원삼이나 가마 등을 돌아가며 사용했었다.

현 소장은 “원삼에서도 항상 제주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 원삼도 원래 단추를 달게 돼 있었지만 제주의 원삼에는 고름이 달려있다. 비싼 것 달 필요 없이 고름을 여미면 된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제주인들만이 입는 옷도 있다. ‘봇뒤창옷’이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입는, 육지부 식으로 말하자면 ‘배냇저고리’다. 하지만 봇뒤창옷은 아기가 입기에는 까칠하다. 삼베로 만들어져 여름용이지 싶지만 한겨울에도 입었다고 한다. 이 옷에는 아이 사망률이 높았던 당시 잘 자라주길 바라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다.

▲ 제주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입었던 삼베 소재의 '봇뒤창옷'(위)과 소박한 결혼식 문화를 보여주는 '원삼'(아래). ⓒ제주의소리
태어난지 3일째까지 살아있는 것을 확인 후에야 이 옷을 입혔다. 옷은 복이 있는 동네 할머니에게 직조를 맡겼다. 미리 만들어두면 흉이 난다며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 만들었다. 혹여 아기가 죽으면 아이의 복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봇뒤창옷을 같이 묻어 주었다. 무명실 고름을 다는 것은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다. 긴 팔은 아기가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달라는 의미다.

현 소장은 “근대에 들어 많은 직물이 나왔음에도 삼베옷을 입혔다는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만큼 의례적인 옷이란 뜻”이라며 “우리집에 막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아들을 아낀다며 삼베옷이 아닌 명주로 옷을 해 입혔다. 그 아들이 40세가 넘어서 등이 가렵다고 하자 어머니가 ‘삼베를 입혔어야 안 가려울텐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봇뒤창옷이 제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는 제주인의 의복생활에 단절을 가져왔다.

일제강점기 이전, 제주에서는 가늘고 얇은 실을 뽑을 수 있는 ‘재래 면’이 있었다. 육지부의 두꺼운 면과는 질이 달랐다. 일제는 면화를 공출하기 위해 목화는 심기는 장려한 반면 옷은 짓지 못하게 했다. 가져간 면화로 일본에서 천을 만들어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서였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몰래 옷을 짓기 위해 창문을 이불로 막고 그 안에서 물레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서 옷을 지었다. 그러다가 들키면 고문을 당하고는 했다. 현 소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재래종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 수강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마련한 현진숙 소장의 '제주인의 의복생활' 강연을 듣고 있다.

이 강연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제주문화광장 인문학강좌 ‘제주성안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첫 번째 강연으로 이뤄졌다. 21일에는 현진숙 소장의 두 번째 강연이 이어진다.

양영흠 이사장은 강좌 개설 첫인사에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선 인문학이 바탕돼야 한다. 역사, 문화, 철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은  정체성 성찰하는 계기로써 중요하다. 인문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면 제주사회가 주체성있는 가운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문학 강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좌문의=064-710-3492.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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