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화백의 이야기판] 미술과 역사가 만나 빚어낸 풍경1

올해로 경술 국치 100년이다. 박경훈 화백이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로 향한 것은 100년 전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100년전 그날, 오늘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지침을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박 화백은 이곳에서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박경훈 화백의 이야기판'을 거기서 다 풀어내지 못한 박경훈 화백 이야기로써 7회동안 연재를 시작한다. 그와 함께 우리는 한 세기 전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 편집자주
▲ 알뜨르 비행장 내 한 격납고 안에서 바라본 격납고군의 모습. /사진=이승철기자

경술국치 100년, 신제국주의의 각축장 '아시아'

지난 8월 29일은 1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다. 이 용어는 너무 순치된 역사적 표현이다. 오히려 최근에 쓰이기 시작한 '강제병합' 또는 '일한병탄'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910년 8월 16일 데라우치는 총리 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대신 조중응(趙重應)을 통감관저로 불러 병합조약의 구체안을 밀의(密議)하고, 18일 각의(閣議)에서 합의를 보게 한 다음 22일 순종황제 앞에서 형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치게 하고 그날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을 완료했다. 그리고 1주일 후인 8월 29일 윤덕영(尹德榮)을 시켜 황제의 어새(御璽)를 날인해 합병조약을 강제로 반포(頒布)하였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간명한 역사적 서술은 당시의 긴박감을 전하기에도 그 후에 닥쳐올 미증유의 식민지 조선이 겪어야 할 운명에 비하면 너무 야박하다. 이 국치의 결과로 한민족은 엄청난 트라우마를 당대는 물론 100년이 지난 후의 후대에게도 남기는 민족사 초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

40여 년간의 식민지 기간 내내치열하고 지난한 항일투쟁을 벌였지만, 끝내 독자적으로 일제를 내몰지 못한 결과, 향후 미·소에 의해 주도되는 냉전 블록의 최전선이 되는 운명에 내몰리게 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새로운 체제 블록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질서였다. 태평양 전쟁의 종전과 함께 찾아온 해방은 양대 초강대국과 이질적인 사회체제의 격전장으로 초토화하게 된다. 이른바 동족상잔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또한 오늘까지 60여 년간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게 되는 운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2010년. 국치 100년이 되는 해에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시대를 여전히 살고 있다. 핵을 고리로 하여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를 넘어서서 중국의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이종교배한 신중화주의의 부상, 군비확장을 위한 보통국가론의 명분 속에 지속적인 군비증강을 통해 아시아의 맹주를 노리는 신군국주의의 일본 그리고 냉전 이후 극동지역에 대한 지배권과 역할을 포기하지 못하는 패권주의 미국이 두 동강 난 한반도를 둘러싸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아시아는 특히 극동아시아는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세계적인 군사, 경제적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신제국주의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아시아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전기의 진원지는 일본이다. 종전 후 일본을 지배해 온 집권 자민당체제를 종식시키고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체제의 하토야마내각은 100년 전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버리고 입아탈구(入亞脫歐)를 외치며 변화하려는 일본,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귀하려는 착한 일본의 이미지 정립을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물론 유럽의 독일처럼 전후청산을 위한 주변국이 납득할만한 반성의 과정이 빠진 일본의 행보는 식민지시대와 전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아시아의 제 국가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않은 듯 보인다.

과거 일제의 경험은 아시아 제 국가들에게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토야마에서 간 나오토 수상 체제로 넘어가면서 입아탈구를 외쳤던 집권 민주당의 태도는 미일동맹의 강화론에 의해 다시 전통적인 미국중심의 외교노선으로 복귀하는 듯하며, 최근의 센카쿠(다오이다위)열도에서의 중국인 선장납치사건과 일련의 처리과정에서 예상을 뒤엎은 중국의 강력한 대응은 향후 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의 보통국가로서의 복귀보다는 외교분쟁의 당사자가 될 확률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입아탈구론이나 착한 일본론은 타 국가들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즉 아시아의 모순은 오히려 극대화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최근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외교로의 복귀선언은 아시아의 결속과 공생을 위한 평화의 미래에 강대국들의 입김이 각축할 것임을 예견케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 위성사진으로 가늠해 본 알뜨르비행장 유적. 활주로와 격납고를 연결하던 유도로는 대정주민들의 삶의 텃밭으로 변해 있지만, 아직도 공군의 비상활주로로 유지되고 있는 활주로는 그 모습이 완연하다. 항공기지의 탄약고였던 섯알오름은 미군에 의해 대파되어 오름의 원형을 잃어버렸고, 1950년 8월 20일 4·3에서 기원한 예비검속자 252명이 집단학살 당한다. 역사가 한 겹 덧입혀졌다. ⓒ박경훈

알뜨르, 100년 국치사의 트라우마 기념비군

1945년 해방 당시 알뜨르 일본군 항공기지는 활주로와 그 주변을 포함하여 80만 평에 이르렀다. 1926년부터 시작된 알뜨르 일본군 항공기지의 건설은 10년 만에 이루어지는데, 이때 규모는 약 20만 평이었다. 그 후 1937년 8월 일본은 중국의 남경폭격을 감행한다. 이때 난징폭격기들은 일본 나가사키의 오무라 해군 항공기지를 출발하여 알뜨르에서 연료를 공급받았다. 중일전쟁 후에는 오무라해군 항공기지가 아예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알뜨르비행장도 40만 평 정도로 늘었으며, 중일전쟁 이후인 1937년 11월에는 오무라해군 항공기지가 상해부근으로 옮겨가고, 알뜨르비행장은 연습항공기지로 활용했다. 1944년 중반 들어 알뜨르비행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지는데, 이는 패전을 거듭하던 일본이 미군의 본토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결7호' 작전에 따른 것이다.

'결7호' 작전이란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이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하는데, 제주도가 결7호지역에 배당되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일본의 남단 큐슈지방과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직선상에 위치하면서 필리핀과 한반도 사이에 놓여 있어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3국의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이다. 제주도를 미군에게 점령당하면 일본은 대륙으로부터의 물자 공급 및 관동군 차단, 일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어 전쟁 수행 능력을 사실상 상실할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규슈방면으로 상륙하여 일본을 공격할 경우에는 그 배후인 제주도를 먼저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 미군은 1945년 9월 경 제주 상륙을 계획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제주도는 제2의 오키나와가 되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키나와전은 1945년 4월, 미군이 섬에 상륙하면서 시작됐는데, 일본군 방어전은 치열했다. 피비린내 나는 82일 간의 전투를 치르고서야 미군은 비로소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6월 23일에 전투가 종료되기 까지 미군 1만2500 명과 일본인 약 25만 명이 죽었는데, 일본인 희생자의 절반은 오키나와 민간인이었다. 제주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일이었다.

▲ 박경훈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제주의소리
일본은 1944년 10월 알뜨르비행장을 66만 평으로 확장하면서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여 모든 군사시설의 지하화 공사를 시작한다. 이에 따라 비행기를 은폐하기 위한 격납고 공사도 추진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20개소의 격납고들은 이 당시 만들어진 30개의 격납고 중 파손을 면한 것들이다.

역사는 가고 폐허만 남았는데, 오직 그 콘크리트 잔해만이 이곳이 70여 년 전 제주의 운명을 갈랐던 기억의 저장소임을 알게 해준다. 그것들은 마치 시간이 빚은 세월의 비석 같다. 더 이상 날지 못하는 항공기지, 날아 오를 항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 위에 스쳐지나간 시간의 기념비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필자 약력 1962년 생, 개인전 6회, 단체전 다수 출품, (사)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 (사)제주민예총, (사)탐미협 회원, 도서출판 '각' 대표.

*이 글은 한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