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화백의 이야기판]미술과 역사가 만나 빚어낸 풍경

▲ <아시아로 날다>, 스티로폼·합판 ⓒ박경훈

전범·전범국가의 탄생

과거 오랫동안 전쟁은 국가최고통치자가 행하는 최고의 비즈니스, 곧 대업이었다. 제왕만이 행할 수 있는 대업이 곧 전쟁이었다. 적어도 고대국가 성립 이후 인간은 전쟁을 통해 영웅을 탄생시켰다. 귀족과 기사, 사무라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은 근세를 넘어서면서 전국민이 동원되고 전국토가 전장으로 변하는 총력전으로 변해 갔고,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인류의 절명을 초래할 ‘범죄’로 인식되면서 전쟁의 개념은 재정의 되었다. 즉, 전쟁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영광과 죄악, 이 극명한 인식론적 변이는 전쟁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류의 자성에서 출발했다. 더 이상 전장도 후방도 존재하지 않는 전면전, 국민전의 폐해는 인류사회를 절멸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묵시록적 미래를 예감하게 할 뿐이었다.

적어도 대륙을 휩쓰는 세계대전의 위협만은 피해야 한다는 강대국들, 전승국들의 논리가 평화주의 평화지향의 정치적·외교적 논리로 전개되었고, 이는 곧 2차 대전 패전국들에 대해, 전범·전범국가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한다.

▲ <기억의 독법-반성·청산·기념>, 하드보드 위에 디지털프린트 ⓒ박경훈

기억의 독법, 반성 성찰 기념

기억은 시간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기억의 본질은 결국 시간의 반추이다. 가까운 시간, 먼 시간, 퇴색된 시간, 선명한 시간의 정보들, 이미지들, 단어들, 오감을 통해 육화된 시간들의 이칭이 곧 기억이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전선과 아시아 전선의 두 주축국인 독일과 일본은 전범국가로 낙인 찍혔으며, 분단과 무장해제를 당한다. 그러나 이후 이 국가들의 전후처리에 대한 대응양상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는 1970년 12월 7일 전후 최초로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비오는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게토의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한 후, 기념비 앞에서 두 무릎을 꿇었다. 빗물에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참회의 묵념을 올린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이 장면은 전세계로 타전되었고 특히 인접국가로서 오랜 역사적 앙금을 지녔던 폴란드 국민의 가슴을 열게 했다.

그 후로도 독일의 이러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 국토의 곳곳에 유대인 추모기념비와 기념관을 세웠으며, 종전 60주년인 2005년 5월,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한복판에 수백 개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의 군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홀로코스트 추모공간을 조성한다.

일본은 천황의 기만적인 종전조서를 발표한 옥음방송 이후에도 아시아 주변국들에 대한 공식적이고 진정어린 사죄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국면적으로 터져나오는 각료와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아시아인의 지속적인 공분을 촉발시켰고 특히 정부수반인 총리의 신사참배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반성 없는 일본의 이미지를 지속시키는 사건이기도 하다.

▲ <알뜨르, 기억의 저장소> 지퍼백·흙·이미지컷·기타 알뜨르에서 수집한 다양한 삶의 흔적들 ⓒ박경훈

1975년 8월 15일 미키 다케오 총리가 개인자격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신사참배를 강행한 이후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 일본 총리 역시 전후정치의 총결산을 주장하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그리고 21년 만인 2001년 8월 13일,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총재선거 당시부터 “총리에 취임하면 어떤 비판이 있더라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하면서 주변국들의 비난과 우려 속에서도 강행했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의 현 정부를 상징하는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은 과거 침탈의 상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주변국들의 입장에선 결국 과거의 침략을 존숭하고 미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일본의 전후 행보는 지금도 주변국들로부터 일본의 영향력 확대가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독일의 지독한 참회의 모습은 주변국들의 호의를 끌어내 다시 유럽의 맹주로 복귀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했지만, 일본의 반성 없는 모습은 여전히 아시아의 착한 이웃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아시아로 날다

냉전이 끝난 21세기, 여전히 아시아는 각축한다.

슬픈 이카루스의 기억, 더욱 슬픈 것은 그 슬픔 안에서 아시아는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이기를 원했던 욕망의 ‘탈아입구’는 결국 아시아를 불과 쇠의 지옥으로 몰아넣은 100년을 만들었다.

▲ <아시아 100년>, 철·알루미늄·PDP-60inch·영상-1min ⓒ박경훈

평화로운 아시아는 가능한가? 지속가능한 꿈은 실현되지 않는 한 실현가능하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래서 꿈은 꿈인 한 지속적으로 대물림된다. 잘못된 비상- 텐노 이카루스의 역사가 미래일 수는 없다.

구미제국주의 열강이 침탈한 아시아의 100년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올 100년을 맞아 새로운 비상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 비상은 100년 전의 것과는 다른 것이라야 한다. 그것은 아시아 제 국가들의 각축적 군사외교전략을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하는 일이며, 아시아 제 민중들의 상호이해를 통한 평화연대의 비상이라야 할 것이다.

10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우리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다. 아니, 없다. 오직 평화공존의 길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 길은 지난 100년의 반성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아시아여! 이번엔 제대로 날아보자!

① <기억의 독법-반성·청산·기념>, 하드보드 위에 디지털프린트 
② <아시아 100년>, 철·알루미늄·PDP-60inch·영상-1min 
③ <아시아로 날다>, 스티로폼·합판
④ <알뜨르, 기억의 저장소> 지퍼백·흙·이미지컷·기타 알뜨르에서 수집한 다양한 삶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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