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39) 성읍1리 정소암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가마솥 모양의 정소암 ⓒ양영자

성읍마을 북쪽에 신선이 살았다고 하여 ‘영모(아래아)르’라고도 불리는 영주산(瀛洲山)이 있다. 이 산에 아침 안개가 끼면 반드시 비가 온다 하여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가뭄이 계속될 때에는 영주산 쪽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과거에는 영주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먼 마을에서까지 참여하여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영주산 서녘 기슭을 흐르는 내창(川)에는‘가매소’라 불리는 못이 있다. 못의 형상이 가마솥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곧 정소암(鼎沼岩)이다. 못 주변으로 기암이며 수풀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데 특히 진달래꽃이 피는 춘삼월에는 화전놀이를 하던 어울림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3월 3일이 되면 정의현청 현감을 비롯하여 관속과 육방하인, 관기 모두가 정소암에서 큰 잔치를 베풀며 하루종일 놀았는데, 이를 ‘정소암 화전놀이’라 한다. 제주에서는 화전(花煎)감으로 제주참꽃을 사용했다. 진성기의 『제주도민속』(1969)에 이 화전놀이가 소개되어 있다.

해마다 춘삼월 삼짇날이 되면 정의현 안의 각 면에서 모여든 선비들과 관속, 서민들이 참여하여 잔치가 베풀어졌다. 사람들은 솥단지를 걸머지고 가서 밥을 하고 떡을 해 먹으며 하루종일 춤추며 놀았다.

향교의 선비들은 글을 지어 풍월을 다투었고 이때 장원한 사람에게는 황봉(黃封)이라 해서 술을 상품으로 주었다. 또한 기생들은 신목사타령, 사랑가 등 유희요를 부르고, 사령들은 비명에 죽은 죄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칼춤을 추었다.

지방의 양반들은 원님에게 어려운 일을 진정하기도 하였다. 이 날만은 백성이 관리에 대해서 얼마쯤 불경한 태도를 보여도 벌주지 않았다.

성읍마을은 가창유희요가 잘 전승되고 있고, 마을 촌로들은 누구나 노래 몇 가락쯤은 거뜬하게 부를 줄 안다. 다른 마을에 비해 유난히 소리를 잘하는, 그리고 좋아하는 ‘꾼’들이 많은 마을이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95호로 제주민요가 지정되었고, 현재도 ‘정의꼴 소리패’가 결성되어 활발히 전승의 맥을 있고 있다.

성읍마을에서 전승되는 「용천검」이라는 노래에는 “찼던 칼을 쑥 빼고 보니 / 난데없는 용천의 검이라 / 에야라 데야 에야라 데야라 방애 방애로다”하는 사설이 나온다. 용천검은 장수들이 사용하던 보검(寶劍)을 가리키는 말일진대, 자꾸만 남성 상징으로 읽고 싶어진다면 불경스러운 일일까. 또한 가마솥 모양의 정소암 「신목사타령」에서는 “돌다리 앉인새 참매 올까 감시/수청에 곱은 꿩은 포수나 올까 감시/지화자 좋을소 대명당 허리로구나/아기장 음 아장거려서 신목사 홀리레 나간다”라고 노래한다. 재미있게도 ‘신목사 홀리레 나간다’는 ‘신목사 허리로 나간다’ 또는 ‘신목사 후리레 나간다’ 등으로 자유자재
로 변용되기도 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사설만으로도 당시의 놀이문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화전놀이 같은 유희의 현장에서 불렸음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소암 곳곳의 너럭바위는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기에 충분하다. 현감이 모로 누워 감상하던 곳, 글짓기와 글 겨루기로 풍류가 익던 곳, 기녀가 올라가 춤을 추던 무대, 뭇사람의 시선을 피해 멱을 감던 곳, 화전을 부치며 슬쩍슬쩍 입속으로 가져가기 바쁘던 곳…….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우리도 어느덧 그 시대의 한 여인이 되어 있다.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성읍1리 성읍민속마을입구 삼거리 → 동쪽으로 300m → 영주산 방면 1.2km → 서쪽 냇가 방면 5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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