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던 '펭펭물'의 추억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던 '펭펭물'의 추억
  • 양영자 (-)
  • 승인 2011.01.21 11: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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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성 문화유적100] (48) 신흥1리 펭펭물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펭펭물 ⓒ양영자

신흥리(新興里), 새로 일어나는 마을, 새로 흥성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각 마을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마을이름은 ‘속칭’, ‘토속지명’으로만 간직한 채, ‘새롭게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신흥리 지명이 제주도에는 3개 마을이나 있는 것을 보면 마을 이름이 ‘신흥’이 된 것은 전혀 필연성이 없어 보인다.

신흥1리는 1950년대 방구령과 보말개 2개의 자연마을을 합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랫마을인 보말개에는 슈퍼와 농협, 우체국 등이 있지만 방구령에는 상점도 관공서도 없다. 전원주택 같은 살림집들만 띄엄띄엄 고요히 집자리를 틀고 있다.

방구동 가름 안에서 손당모(아래아)루 쪽으로 쭉 나아가면 긴 내(川)를 만날 수 있다. 이 내를 ‘진물내’ 또는 ‘펭펭물내’라 부른다. 내의 윗길로 반듯한 길을 내어 놓아 요즘은 올레를 걷는 사람들이 재잘거리며 시골길의 호젓함을 만끽하고 있다. 마을 촌로의 말을 빌자면, 옛날 사람들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 냇기정(내의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바라서 펭펭물에 오고갔다면, 요즘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반듯한 길을 걸어 ‘호(아래아)서(好事)’하러 다니고 있다.

예전에는 펭펭물 가는 길 어염에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성읍리 향교보다 앞서 방구령 마을에 향교가 지어졌고, 진진내 다리 건너편 과수원 자리에 옥터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다.

봄 가뭄이 한창인데 옛날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듯 펭펭물은 고즈넉이 고여 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물이 찼던 자리에 지금은 양지꽃이 가득 피어났다. 지난해 다리를 건립하고 하천정비 사업을 하였는데, 그 이후로 바윗돌과 수위(水位)가 같았던 물이 메말라 갑작스럽게 수량이 줄어들어 마을사람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펭펭물은 앉음만 하고 흐르지 않는다. 비가 오면 딱 15일 동안만 흐른다. ‘앉음만 하고 흐르지 않는’ 물이어서 방구령 사람들은 토산 지경의 ‘올리소’까지 가서 식수를 길어다 먹어야 했다. 펭펭물은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밭에서 김을 매고 돌아올 때 반드시 이곳에 들러 목욕을 하였다. 두 개의 소(沼)같은 물통이 있어서, 웃깍은 여자들의 차지, 알깍은 남자들 차지였다. 알녁펜(아래쪽) 목욕통에는 물 위로 우뚝 솟은 바윗돌이 있는데 남자들은 이 바위봉우리에 의지하여 멱을 감았다. 이 바위는 물의 깊이를 재는 척도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물이 모두 말라버려 부끄러움도 잊은 채 온몸을 허옇게 드러내고 있다.

앉음만 하고 흐르지 않는 물이 어떻게 날마다 밭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남녀노소의 목욕탕 구실을 해내는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과연 신통방통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신이함은 각종 세제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의 몸에서 털어내는 흙이라고 해야 고작 천변(川邊)의 이끼와 진흙보다 더러울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펭펭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바닷물같이 수량이 깊고 풍부하여 신흥2리(여웃내)에서도 여기 와서 빨래를 해갔다. 물구덕(대구덕) 가득 빨랫감을 지고 와서 빨래를 한 후 여기저기 돌담에 널어서 말리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아직도 수많은 ‘빨래톡(아래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빨래가 마르는 동안 이야기꽃을 피우고 마을의 대소사나 집안일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였던 아기자기한 추억들을 펭펭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신흥1리 마을회관 → 정북쪽 방향 2.5km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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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펭 2011-01-21 14:02:46
동심이 머물러 있는 펭펭물이
바닥을 들어내고 말았네요
2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