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51) 영천동 돈내코 나는물도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나는물도 물맞이 ⓒ양영자

옛날에는 한라산에 산돼지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토평마을 근처에는 멧돼지가 좋아하는 초(아래아)낭열매(도토리)가 많아서 멧돼지가 많이 서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돗드르’라고 하고, 이 마을 여성이 다른 마을로 시집가면 ‘돗드르방’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돗드르’ 또는 ‘돗벵뒤’라고 하는데, 어떻게 ‘토평(吐坪)’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돈내코’도 멧돼지들이 다니던 하천인 ‘돗내’인가 생각하지만, 토평마을회에서 발간한 『토평마을』(2004)에는 ‘돌아서 흐르는 내의 내민 부분’이라는 뜻으로, ‘돈回+내川+ 코내민 부분’로 설명하고 있어 궁금증이 한층 커진다. 한편 나는 시원한 물이 흘러 ‘돈(아리애)내(단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돈내코는 물맞이 장소로 알려져 여름 한철 전도적으로 물 맞이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당일 물맞이를 다녔지만,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고기, 밥 등을 가져가거나, 식재료를 가지고 가서 해먹으면서 며칠 동안 시름을 잊고 지내기도 했다. 지금도 밀감밭에 농약을 치고 나서 이곳에 와서 물맞이를 하고 나면 해독 효과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찾고 있다.

물맞이 장소로 알려진 돈내코는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물도’이다. 돈내코는 나는물도가 있는 일대를 통칭하는 지명이다. 그런데 ‘나는물도’는 물맞이 장소로보다는 식수 해결을 위한 눈물겨운 현장이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중산간인 돗드르와 인근 마을들은 지형이 평탄하고 기후가 온화해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으나 식수가 없어서 고통을 받았다. 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용천수는 드물었다. 해안에서 용출하는 ‘검은여물’과 ‘민막은물’, 마을안의 ‘토물(흙물)’, 상효의 ‘조개물’, ‘새밋골물’ 등에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날마다 물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물을 길러 조금 늦게 가면 이미 바닥이 드러나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일을 하지 않는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 물을 길어 오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으므로 새(띠)를 꼬아 묶어서 항아리에 빗물을 흐르게 해서 물을 받아먹기도 했다. 이를 ‘샛물 받아먹는다.’고 한다.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하천수와 마을 공동의 봉천 수통(빗물을 받아 저장해 놓은 물통)에 의존하여 생활하였다. 한가한 때는 바다에 가서 목욕이나 빨래를 했으나, 밭일을 하고 돌아올 때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홍동의 냇물이 고인 물에서 목욕을 하고 귀가하거나, 건천인 하천을 따라 올라가서 겨우 물을 찾아내 목욕이나 빨래를 하기도 했다. 돈내코의 ‘나는물도’ 물맞이는 백중을 기해서 할 수 있는 호사였다.

나는물도는 봄부터 가을까지 물이 마르지 않았다. 덕분에 5∼6km 떨어진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식수나 목욕, 빨래에 활용했다. 하지만 돈내코까지 가서 허벅으로 물을 길어 오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1920년대 후반, 돈내코 상류의 ‘나는물도’ 수원지 물을 끌어다가 수도를 가설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토평리, 신효리, 하효리 3개 마을에서 각 2백원씩, 6백원을 마련하여 전라남도청에 상수도가설공사를 신청했고, 1931년 12월 착공하여 1932년 7월 준공했다.

수도가 가설되자 처음에는 수도세를 받지 않고 보리, 조 등을 모아 관리자에게 보수를 주었다고 한다.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영천동 서귀포과학고등학교 서쪽 150m

<본 연재글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본 연재글의 저작권은 '제주발전연구원'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