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52) 마을의 역사를 앞당기다 - 서홍동 지장새미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지장새미 내부 ⓒ양영자

서홍마을의 옛이름은 ‘홍로’, 동홍마을과 서홍마을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제주도를 동·서 양도로 나누고 현을 설치할 때, ‘홍로현’을 두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홍로마을에는 이보다 200여 년 앞선 고려 예종 2년(1107년경)에 중국의 술사 고종달(호종단)이 지장새미의 물혈을 끊으러 왔다가 실패하여 돌아간 지장새미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중국 송나라 왕이 지리서를 보다가 고려의 지세가 특이한 형국임을 감지하고 장차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자국을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고려는 배 형태이고 제주도는 배의 닻에 해당하므로 닻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여겨 풍수에 능한 고종달에게 제주에 가서 혈을 끊어 인재가 태어날 것을 막도록 지시했다.

제주에 도착한 고종달은 ‘종달리’에서 마을 이름이 자기 이름과 같다고 불쾌히 여기고 대머들이라는 곳의 물혈을 잘라버렸다. 그 바람에 샘물이 나지 않게 되자 종달리는 지금의 바닷가로 이주하게 되었다. 고종달은 여러 곳의 땅혈과 물혈을 끊으며 홍로에 찾아오고 있었다.

홍로의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다급하게 다가와 자신이 쫓기고 있는데 감추어 달라고 부탁하자 농부는 쉐질매(소길마)로 노인을 덮어 숨겨주었다. 지장새미 위쪽으로 마치 쉐질매 형상의 동산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쉐질매동산(가시머리동산)’이라고 한다.

고종달이 큰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근처에 꼬부랑 나무 밑의 헹기물을 아느냐고 묻자 농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고종달이 데리고 온 개가 쉐질매 부근을 맴돌자 숨겨둔 점심을 먹으려 한다며 쫓아버렸다.

고종달은 끝내 ‘꼬부랑나무 밑 헹기물’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고종달이 돌아간 후 쉐질매를 들어내니 백발노인은 간 곳 없고 한 그릇의 헹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남아 있었다. 헹기물을 그 자리에 부으니 계속해서 맑은 물이 솟아나 지장새미가 되었다고 전한다. 백발노인은 지장새미의 수신(水神)이었다.

지장새미는 천지, 서홍뿐만 아니라 서귀포 일대 사람들은 모두 이용했던 물이다. 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게 되자 수량이 줄었지만 설화의 현장인 만큼 멋드러진 기와집을 머리에 이고 있다.

또한, 지장새미는 주변 일대의 논에 물을 공급하는 농업용수로서도 한몫 했다. 지장새미 덕분에 홍로는 다른 지역에 비해 물 자원이 좋은 편이어서 지장새미케, 걸매케, 하논케 등 논지대가 많았으며, 전답 분포가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홍로는 지장새미 덕택에 번성하고 풍요롭게 되었으니 지장새미야말로 마을을 이루는 중심축이다. 마을 안 거리 길인 지장새미 입구에 있는 세거리의 이름은 ‘지장샘 세거리’이고, 지장새미깍에 만들어진 논판이는 지장새미케이다.

홍로 사람들은 해마다 정초에 지장새미에 제를 지내며 마을을 있게 한 음덕을 기리고 있다. 또한 지장새미는 솟아나는 양이 뚜렷이 보이지 않고 항상 물의 양이 그대로인 것처럼 조용히 흘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장새미만큼만 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큰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중용의 덕을 지니며 살라는 민중의식을 반영한 말이다. / 양영자

*찾아가는 길 - 서홍동 SK한진주유소 → 북쪽 마을안 500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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