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로 변한 고려군 칼에 목 내준 삼별초
모기로 변한 고려군 칼에 목 내준 삼별초
  • 김일우·문소연 (-)
  • 승인 2011.03.23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몽골을 만나다] (6) 제주설화 속 삼별초 이야기

제주에는 김통정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해져 왔습니다. 설화들 속에는 항파두리성에 관련된 내용, 삼별초와 제주백성들과의 갈등, 여·몽연합군과 삼별초의 전투 상황 등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 있습니다.

설화들 속에 등장하는 당시 인물들은 흥미롭게도 이야기에 따라 상반된 인식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김통정은 영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패배자로 그려지기도 하고 더 나아가 당신(堂神)으로 그려지기도 하는가 하면, 여·몽연합군의 장수들이 당신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제주 밖의 세력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속에 놓인 제주백성들의 생존전략과 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지요. 김통정이 여·몽연합군에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몽골의 직할령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에 따른 고초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읽혀지기도 합니다.

항파두리성 주변의 마을들에서 전해지는 전설들 가운데 몇을 모으고 다듬어 소개해봅니다.

▲ 항파두리토성 쌓기 ⓒ김일우·문소연

고려 때 일이다. 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밤마다 한 남자가 몰래 들어와 잠을 자고 갔다. 문을 꽁꽁 잠가도 어디로 들어오는지 들어와 자고가곤 했다. 과부의 허리가 날이 갈수록 점점 굵어져 갔다. 마을사람들은 남편도 없는 사람이 저럴 수가 있느냐고 수군거렸다. 과부가 사정을 털어놓자, 마을사람들은 그 남자의 허리에 실을 묶어보라고 했다.

그날 밤 과부는 어김없이 찾아들어와 잠을 자는 남자의 허리에 실을 묶어두었다. 다음 날 아침 실을 따라가 본 과부는 소스라친다. 실이 노둣돌 아래 있는 커다란 지렁이 허리에 감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 지렁이가 밤마다 잠자리를 같이 했다니, 과부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이 징그러운 지렁이가 다시 찾아오면 어쩌나 싶어 지렁이를 죽여 버렸다.

얼마 후 과부는 아이를 낳았다. 온몸에 비늘이 돋아있고, 겨드랑이에는 자그마한 날개가 돋은 남자아이였다. 마을사람들은 지렁이와 정을 통해 낳았다 하여 ‘진통정’이라 불렀다. 혹은 ‘질통정’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 아이가 바로 김통정(金通精)이다. 성이 김씨로 된 것은 김씨 가문에서 ‘진’과 ‘김’이 비슷하다 해서 자기네 김씨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김통정은 자라면서 활을 잘 쏠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며 도술도 부렸다. 그래서 삼별초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김통정은 삼별초가 궁지에 몰리자 진도를 거쳐 제주에 들어왔다. 그가 들어온 곳은 군이 입항했다 해서 ‘군항이[지금의 동귀리 포구]’라고 부른다. 군항이에서 군사상 알맞은 곳을 찾아 산 쪽으로 올라가던 김통정은 항바들이[지금의 애월읍 고성리]를 발견하고 토성을 쌓았다. 흙으로 내·외성을 두르고 그 안에 궁궐을 지어 스스로 ‘해상왕국’이라 일컬었다.  

김통정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받았는데, 돈이나 쌀이 아니라 반드시 재 닷 되와 빗자루 하나씩을 받아들였다. 그 재와 빗자루를 비축해 두었다가 토성 위를 뱅 돌아가며 재를 뿌렸다. 그리고 외적이 수평선 쪽에 보이기 시작하면 말꼬리에 빗자루를 달아매고 채찍질을 하며 성 위를 돌았다. 그러면 뽀얀 안개가 일었고 적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 해 김방경이 거느리는 고려군이 김통정을 잡으러 왔다. 말꼬리에 빗자루를 달아매어 연막을 올렸지만, 김방경도 도술이 능했기 때문에 통하지 않았다.

▲ 아기업개 ⓒ김일우·문소연
김통정은 사태가 위급해지자 사람들을 서둘러 성안으로 들여놓고 성의 철문을 잠갔다. 이때 너무 황급히 서두는 바람에 한 아기업개[아기 업저지]를 들여놓지 못했는데, 이것이 실수였다.

토성이 너무 높고 철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성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김방경에게  그 아기업개가 ‘열나흘 동안 쇠문을 녹이라’는 묘책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아기업개 말도 들으라’는 속담은 그래서 생겨났다.

아기업개의 말을 듣고 성문을 무너뜨린 김방경 군사가 성안으로 몰려들었다. 김통정은 깔고 앉은 쇠방석을 바다 위로 내던지더니 날개를 벌려 쇠방석 위로 날아가 앉았다.

김방경이 다시 아기업개에게 묘책을 묻자, “하나는 새로 변하고 또 하나는 모기로 변하면 잡을 수 있으리라”고 했다. 김방경의 군사들은 곧 새와 모기로 변해서 쇠방석 위의 김통정을 따라 갔다. 김통정은 난데없이 새와 모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어 ‘골그미’ 내로 쇠방석을 띄워 날아갔다. 새가 따라가 김통정의 투구 위에 앉고 모기는 얼굴 주위를 돌며 앵앵거렸다. 김통정이 새를 보려고 머리를 뒤쪽으로 젖히자 목의 비늘이 거슬리어 틈새가 생겼다. 모기로 변했던 군사가 칼을 빼어 그 틈새를 내리치고는 떨어지는 김통정의 모가지에 얼른 재를 뿌렸다. 김통정은 온몸에 비늘이 좍 깔려있어 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해서 모가지가 떨어지게 됐고 재빠르게 재를 뿌려놓았기 때문에 다시 붙지 못했던 것이다.

김통정은 죽어가면서 “내 백성일랑 물이나 먹고 살아라.” 하며 홰를 신은 발로 바위를 꽝 찍었다. 그러자 바위에 홰 발자국이 움푹 파이더니 샘물이 솟아 흘렀다. 이 샘물을 ‘횃부리’ 또는 ‘횃자국물’이라 한다.

김통정을 죽인 김방경은 김통정의 처를 찾아 죽였다. 당시 김통정의 처는 임신을 하고 있었는데, 매 새끼 아홉 마리가 같이 죽어 떨어졌다고 한다. 날개가 돋친 김통정의 자식이니 매 새끼로 임신된 것이다. 김통정의 처가 죽을 때 피가 일대에 흘러내려 흙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서 붉은오름이란 이름이 생겼다.
한편 향파두리성 함락 직전에 김통정의 모친은 부하를 몇 데리고 유수암천이 흘러가는 어느 양지바른 곳으로 가서 토굴을 짓고 들어갔다. 장모라는 이야기도 있고, 모친과 장모가 다 왔었다는 말도 있다.

▲ 산수국(도체비꽃) ⓒ김일우·문소연

어쨌건 삼별초 군이 망하고 나니까 마을사람들에게 “이 토굴에 불빛이 꺼지거든 입구를 막아 달라” 했고, 얼마 후 토굴에서 불빛이 사라지자 마을사람들이 입구를 막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일생을 마쳤다고 해서 그 토굴을 종신당(終身堂)이라고도 부른다. 토굴 주변에는 산수국이 많았다. 산수국은 삼별초의 국화였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도체비꽃’이라 부르는데, 삼별초가 망했기 때문인지 ‘망한 꽃’이라고 해서 집에는 심지 않았다.

관련유적 둘러보기

함덕포

지금의 조천읍 함덕리 해안에 있는 포구입니다. 여·몽연합군의 주력군이자 김방경 등이 지휘하던 중군이 이 포구로 들어와 해안에 매복해 있던 삼별초군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중군은 우세한 군사력으로 함덕포 전투에서 항파두리성으로 향하게 되고 삼별초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 산새미오름과 금수못 ⓒ김일우·문소연

산새미오름

항파두리성 남쪽 약 4㎞ 지점에 있는 해발 650m, 비고 100m의 몸집이 꽤 큰 오름입니다. 남서쪽 자락에 샘이 있어 ‘산새미’라 이름 붙은 이 오름은 북쪽에서 보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듯한 산형 때문에 삼산악, 삼심봉, 산심봉 등 여러 별칭이 붙기도 했다고 합니다.

 1270년 고려 개경정부에서 진도삼별초의 제주입도를 막고자 보낸 김수장군이 이 오름 정상에 고려군 진지를 구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상에서 제주시 동부와 애월읍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한라산은 물론 추자도까지 관찰할 수 있는 오름입니다.

금수못

산새미 오름 동쪽에 있는 직경 50m 정도의 둥그런 못으로 봉천수가 고여 있습니다. 산새미오름에 고려군 진지를 구축한 김수장군이 이용했던 물이어서 ‘금수못’ 또는 ‘진수못’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김수장군 추정묘 ⓒ김일우·문소연

고려 김수 장군이 묻혔다는
유수암리 산새미오름 방묘

산새미 오름 북동쪽에 있는 방묘입니다. 방묘는 판석을 사용해 장방형으로 석곽을 돌려 축조한 무덤으로 고려말~조선초기의 무덤양식입니다.

이 방묘의 석곽은 흙속에 파묻히다시피 해 20㎝ 정도만 지상에서 보이고 봉분은 거의 평지처럼 납작해져 있습니다. 비석은 없지만 고려시대의 분묘형태이고 그 크기가 다른 묘에 비해 월등히 크며, 마을에서 오름 아래 있는 연못을 금수못이라 부르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김수장군의 묘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김수는 문과 급제 출신으로 영암부사(靈巖副使)로 재직하던 중 개경정부에 의해 제주로 파견됩니다. 진도삼별초의 제주 진입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뒤이어 파견된 고여림과 함께 밤낮으로 성을 쌓고 병기를 수리하며 제주를 지켰다고 합니다. 김수는 평소 대의로써 사졸들을 지휘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감격하곤 했다는군요. 그러나 삼별초의 이문경 부대가 다른 길로 이른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송담천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삼별초 이야기가 담긴  고내 본향당

애월읍 고내리 포구와 주택가 사이를 관통하는 해안도로 남쪽에 있습니다. 돌담을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안쪽에 당집이 있습니다. 이 당에서 모시는 신은 ‘황서땅 황서장군’으로 마을사람들의 생산과 물고, 호적 등을 관장합니다. 원래 방파제 아래 있었는데, 1993년에 이곳으로 옮겨서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곳 당신의 내력을 전하는 본풀이에 삼별초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통정보다는 황서, 을서, 병서로 표현되는 세 장수[여·몽연합군의 홍다구, 김방경, 흔도]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그 세 장수가 당신으로 좌정한 것이지요. / 김일우·문소연

<본 연재글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본 연재글의 저작권은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