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흔들리는 공수화] ③ '사유화 신호탄' 여론비등 시민단체 "제2, 제3의 민간기업 달려들면...의회 나설 차례"

▲ 2005년 3월, 당시 양우철 의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한진그룹의 행정심판 청구에 대해 대응을 선언하고 있다. <제주의 소리 DB>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의 지하수 취수 증량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공적관리시스템 붕괴에 따른 후발 업체들의 지하수 개발 참여 요구. 선례를 앞세워 득달같이 달려들 경우 막을 명분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있다.

공적 개념이 지배했던 제주 지하수가 사기업의 이윤추구 대상으로 전락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곶자왈사람들, 제주경실련,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환경운동연합, 탐라자치연대는 최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번 결정(증산 허용)으로 인해 제주도개발공사의 지하수 취수량 증대 요구, 신규 사업자의 먹는샘물 사업허가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 단체는 "앞으로 다른 기업이 한진그룹의 사례를 들어 먹는샘물 사업을 허가해 달라고 주장할 경우 이를 제한할 근거와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고 걱정했다.

◇ "제주특별법, 사유화 방어막 맞지만 언제까지 장담못해"

진보신당 제주도당은 논평을 통해 "제주도가 공수관리체계를 포기했다는 증거"라며 지하수관리위원회 회의록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방침을 천명했다.

22일 창당문제로 기자회견을 한 신구범 전 지사도 재직 시절 한진에서 취수량 증량을 요구했지만 한번 허용하면 제2, 제3의 재벌이 물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할 때 막을 도리가 없어 불허했다고 회고했다. 

물론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려면 제주특별법을 뛰어넘어야 한다. 현행 제주특별법은 제312조(지하수개발.이용허가 등에 관한 특례)를 통해 사실상 지방공기업 외에는 지하수 개발.이용을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지하수의 사유화를 막는 영구적인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곶자왈사람들 등의 단체는 "해외기업이 FTA 등과 연계해 지하수 판매사업의 불허를 이유로 제주도를 제소할 경우 한진그룹의 사례는 제주도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레 점쳤다. 

일부에선 사기업에 의한 지하수 독점 가능성을 제기한다.

제주경실련 한영조 사무처장은 "지금 법체계 상으로는 (한진그룹 외에)다른 기업이 치고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제한 뒤 "문제는 특정기업의 독점화가 진행되면 제주도개발공사(삼다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미래 독점 가능성도 제기 "그땐 삼다수도 위협"

그는 "그동안 물량(취수량)이 적어 시판에 제한을 받았지만 증량이 허용되면 국내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고, 세계시장을 향한 교두보도 마련될 것"이라며 "이럴 경우 가격시장이 상당히 왜곡되고, 더구나 프리미엄 생수를 통한 고가전략으로 시장을 파고들면 장차 개발공사는 따라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훗날을 걱정했다.   

나아가 그는 "지하수는 공공재이지만, 이를 대신할 게 없다는 점에서 대체재는 될 수 없다"면서 "대대로 먹고살아야 할 지하수가 고갈되거나 오염되면 도민에게 지하수는 (고가전략에 의해)무기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이제는 최종 동의권을 쥔 제주도의회가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있다.

5개단체는 "사기업의 지하수 사유화를 원천 차단하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제주 지하수의 공수화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주도의회가 지하수 증산 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공항의 취수량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공항이 지하수 개발 허가를 최초로 얻은 것은 1984년 8월30일. 당시 취수량은 하루 최대 200톤, 월 3000톤으로 지금과 같은 수준이었다.

1993년에는 월 6000톤으로 급증했다. 3년후인 1996년에 다시 3000톤으로 줄었다가 2001년엔 2500톤으로 더 내려갔다. 3000톤을 회복한 것은 2003년 11월25일부터. 이후 2년마다 허가를 갱신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 "시판 않겠다" "허용 않겠다" 둘다 뒤집혀...의회 역할 초미 관심

오는 11월24일이면 다시 허가를 갱신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한국공항이 10개월도 더 남은 시점(1월18일)에서 발빠르게 변경허가를 신청했다. 

중간에 취수량이 줄어든 데는 의회의 역할이 컸다. 사기업의 잇속에 맞서 생명수를 지켜야한다는 도민 여론을 등에 없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강경식 의원은 "일부는 삼다수를 생산하는 개발공사의 취수량까지 문제삼는 마당에 사기업에 대한 증량 허용은 원칙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다"며 "의회가 공수화 개념을 감안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해 동의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공항과 제주도가 '물분쟁'을 겪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중반, 한국공항의 전신인 제동흥산 대표는 직접 도청 기자실을 찾아 "생수 국내 시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깨진 것은 2005년 1월.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거쳐 2007년 4월 한국공항이 최종적으로 웃음을 지었으나 제주도는 이후로도 완강했다. 절대 증산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외부에 드러내지 못할 뭔가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공공기관의 정책이 손바닥 뒤집히듯 할 수 있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정이 바뀌기 무섭게 360도 달라진 당국의 태도에 의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도민 시선이 의회로 쏠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성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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