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제주 고유가 비밀]③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제주도, 年 수백억 소비자피해 기름유통 개선 나서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유류가격은 서민경제를 울고 웃게 만드는 중요한 변수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공급되는 제주지역 유류가는 제주도민들을 웃는 일보다 매번 울게 만든다. 고유가 부담으로 인해 제주도내 시설재배농가들이 생산을 중단하는가 하면 어민들 또한 출어도 포기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제주도 유가가 전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물류비용이 필요한 도서지역 특수성 때문에 ‘섬이니까 비싸겠지’하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제주지역 고유가의 비밀이 물류비용이 아니라 국내 정유4사(社)의 담합이나 시장 독과점 지위, 비정상적 유통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주유소 관계자들의 오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같은 왜곡된 고유가 실태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점점 더 골병드는 건 제주지역 소비자들뿐이다. <제주의소리>가 타 지역보다 비싼 제주지역 유류가의 비밀을 기획연재 보도한다. <편집자>

약 10년간 배를 타면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주유소를 차렸던 A씨는 최근 수년간 운영해온 주유소를 넘기고 다시 배를 타고 있다. 적자운영으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다시 바다로 나간 것이다.

그는 “정유사든, 대리점이든, 주유소든 기름 유통과정에서 어느 누군가는 최종 소비자로부터 얻는 이익이 돌아갈 텐데 분명한 건 주유소에 남는 이익은 거의 없다”면서 “기름 유통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유소 경영주 B씨는 “옛날에는 주유소 하나쯤 운영하면 부자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직접 운영해보니 빛 좋은 개살구”라며 “주유소는 앞으로는 남고 뒤로 밑지는 적자운영을 하는 곳들이 많은데 정유사나 대리점만 이득을 보고 있어 박탈감이 크다. 그만 두고 싶어도 정유 대리점에 깔려있는 수억원의 빚 때문에 쉽게 문을 닫을 수도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이처럼 경영난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제주지역 주유소 경영주들의 주름이 깊어가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최근 서울지역 주유소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름 유통 과정에서 확실히 독과점에 따른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 견해이고 정부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며 “현재의 기름유통 구조라면 영세한 주유소들이 현상유지도 힘들 것 같다. 정부가 나서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도 이 같은 왜곡된 기름유통 시장구조에 따른 문제를 공감한 때문이다.

▲ 제주도내 주유소 경영주들이 왜곡된 기름유통구조 문제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외상거래의 비밀…풀려날 수 없는 족쇄?

현재 도내 주유소들 중 90%가 외상거래로 기름을 사들이고 있다. 대리점을 통해 정유사의 기름을 평균 45일, 최장 60일 외상거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외상거래 주유소들은 평균 약 5억원 이상, 많은 곳은 10억원을 넘는 곳도 있다.
또한 주유소를 지으면서 정유사로부터 받는 대출도 주유소의 발목을 잡는다.

주유소를 지으면서 정유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인데, 정유사는 주유소 감정가격의 80%까지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보통 4~5억원 이상의 빚을 주유소들은 안고 간다. 이 때문에 주유소들은 대출금을 갚기 전에는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정유사와의 갑을 관계에서 여전히 약자인 ‘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유사와 대리점의 독점거래 ‘횡포’가 위력을 발휘하고 유류공급가는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유류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김 모씨(52)는 “서울 등 육지부에는 현물시장(정유사→현물시장→주유소)을 통해 기름거래를 할 경우 약 2~3배의 높은 마진이 생기고, 수입사(외국정유사→수입사→주유소) 거래의 경우도 마진이 훨씬 높다”면서 “그러나 제주에는 대리점이라는 유통단계가 더 있고 외상거래를 하고 있는 주유소 공급가격도 육지보다 높아 소비자들이 내는 기름 값은 비싸도 주유소들은 경영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갈수록 치솟는 기름값이 끝을 모르고 있다. 머지않아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전망에 소비자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외상거래와 유통단계 줄여야 모두 산다
 
불합리한 기름유통구조의 개선을 위해선 외상거래와 유통단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제주도가 일선 주유소들에 대해 자금대출 지원 확대나 도내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 이자분을 보전해주는 등의 지원이 뒤따라야 하고, 기름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다양한 거래루트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리점 외상거래나 정유사로부터의 대출을 벗어날 경우 현재 보다 리터당 최소 40~50원 이상의 원가절감 요인이 발생할 것이고, 원유수입사와의 거래루트가 확보된다면 정유사와 대리점의 독과점 유통구조를 깨트릴 있어 결국 소비자나 영세한 주유소 경영주들의 숨통이 트릴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수년 동안 주유소협회 등 주유소 경영주들이 정유사와 대리점의 ‘폭리’ 문제 등을 집중 제기하면서 진정서를 제출하거나 항의방문 등으로 유류공급가 인하를 위한 제주도의 적극적 중재역할을 요청해왔지만 성과는 없고, 정유사 등으로부터 오히려 목소리를 낸 주유소 경영주들만 ‘괘씸죄’ 적용을 받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다.

오랫동안 지적돼온 제주지역 기름유통구조의 왜곡현상이 결국은 연간 수백억원 대의 소비자 피해와 주유소 난립과 경영난을 반복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제주도가 ‘뒷짐’을 풀고 해결방안 찾기에 적극 뛰어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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