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시인의 시네마 줌①]「실미도」

하나였던 조국이 두 쪽으로 갈린 분단사를 다룬 영화에서 우리는 얼마나 웃을 수 있고, 얼마나 진지해질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가 아닌 흥행을 염두에 둔 영화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사실적일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흥행으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둔「쉬리」를 보았을 때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적잖이 후회를 했었다. 군복무 하듯 의무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영화를 보곤 했던 까까머리 학창시절이 떠올랐던 것이다.

기관단총 소리와 입으로 깐 비장의 수류탄이 마른번개 치듯 우르르 쾅! 우르르 쾅! 터질 때면 희열에 찬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박수를 보냈던가. 영화가 끝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영화관 앞 찐빵가게나 자장면가게로 몰려가곤 했던 기억을 되살려 그날도 자장면 그릇에「태백산맥」을 뒤섞어 면발을 삼켰던 기억이 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잡음을 일으키던 영사기의 낡은 필름도 뇌리에서 잊혀져 갈 즈음, 영화관을 다시 찾았다.「공동경비구역 JSA」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반세기를 넘긴 민족의 분단이 이제야 위험수위의 물살을 헤치고 나와 공동경비구역의 다리를 어렵사리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여기에 강우석 감독의「실미도」까지 합세하고 보니 그럭저럭 분단사의 시대별 영화는 갖춰진 셈이다. 그 숱한 반공영화들을 지나 태백산맥에 이르니 우리 민족의 분단사가 포화 속에서 일단락 지어지고, 공동경비구역을 거슬러 오르는 언덕에서 잠시 숨을 돌리니 사건 발생 사흘만에 국방장관과 공군참모총장 등 정부와 군 관계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은 칠십년대의「실미도」가 그 자리를 잡은 것이다.

칠십년대― 그 시대처럼 암울한 때가 또 있었을까. 자고 나면 간첩이 내려오고 자고 나면 무장공비가 출몰했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도 북한에 간첩을 보낸다는 둥, 범죄자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었다는 둥 풍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1971년 8월 23일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 버스를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그 실체를 알리고자 목숨을 내걸었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다면,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 나타난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영화가 시작되자 두 사내의 움직임이 숨가쁘게 돌아간다. 대통령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북에서 내려왔다는 김신조는 생포되어 총을 놓고,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연좌제 사슬에 묶인 폭력배 강인찬(설경구 분)은 사형언도와 함께 피묻은 칼을 내려놓는다. 그때 나타난 또 다른 사내 최재현 준위(안성기 분). 헐리웃 영화에서 숱하게 보고 들어온 대사와 함께 잊혀진 사람들의 영화는 시작된다. '이 칼! 나라를 위해 다시 한번 잡을 수 있겠나?'

1971년 8월 23일, 목숨을 내건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이 묻혀버렸던 첩보부대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건 실미도에 도착하고서였다. 1968년 1월 21일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왔다는 김신조가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쓰레기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형수, 무기수, 일반 제소자들이 실미도로 끌려와 '김일성이 목에 태극기만 꽂고 돌아오면 형벌면제는 물론이거니와 정부로부터 새로운 삶을 보장받는다'는 조건하에 '실미도 684부대'가 조직된다.

이 얼마나 유치하고 모략적이며, 기상천외한 분단의 비극사인가. 조폭 세계와 흡사한 형사들의 세계를 날것 그대로 파헤쳤던「공공의 적」처럼 감독은 오직 남자들로만 구성된 마초 세계 속으로 인간 쓰레기들이라고 할 수 있는 31명의 북파부대원을「실미도」속에 처박아 넣어버린다. 낙오자는 죽음으로 그 몫을 다할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인간병기(人間兵器)가 되는 것뿐이다. 또한 실미도에 훈련은 없으며 그들 뒤엔 언제나 실탄을 장전한 기간병들이 있을 따름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나 흘렀을까. 인간한계에 도전해 인간병기로 만들어진 실미도의 지옥훈련도 3개월간의 그 막을 내린다. 오합지졸이던 684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만에 실전명령이 떨어지고, 31명의 부대원들 중 보이지 않는 얼굴도 몇 있다. 훈련도중 사고와 탈출, 처형 등으로 사라져간 얼굴들이다.

주석궁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목에 태극기를 꽂고자 최후까지 살아남은 자는 하여 24명. 그러나 김신조 사건에 놀란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가 합작하여 보복조치로 창설한 684부대(공군 제 7069부대 소속 2325전대 209파견대)는 상부의 저지로 무산되고 만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와 남북대립의 긴장을 화해무드로 바꿔 가는 적십자회담이 그것이다.

단 한번의 지시에 의해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684유령부대. 실미도에는 이제 빛나야 할 조국도, 멋있게 싸우고 값지게 죽고싶은 분단비극의 애원도 사라지고 없다. 3년 4개월 동안 출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인간병기들을 향해 최재현 준위에게 내려진 두 번째 지상명령은 '제거하라!'는 한마디가 전부다.

일단락 실미도의 전개과정이 끝나자 조급해하는 부대원들과 불안해하는 관람객들과는 대조적으로 감독의 손놀림은 편안해진다. 인간병기를 만들기 위해 1시간 남짓 긴장감을 고조시켜온 감독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버린 인간병기들을 제거하기 위해 제 2막의 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오락성 레일을 적절하게 뒤섞은 앵글은 악바리 조중사(허준호 분)와 합리주의자 박중사(이정헌 분)를 내세워 자신의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는 센티멘털리티를 지향해 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에 태어나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던 그들이 출장을 떠나는 조중사를 향해 눈물의 거수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부르던 노래는 어느새 민중의 붉은 깃발은 죽은 전사의 시체를 싸고 있고, 중앙정보부가 국가일 수밖에 없는 70년대의 한복판을 지나 부대원들은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야 할 북녘의 주석궁이 아닌 청와대로 돌격을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주석궁이 아닌 청와대로 향했으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채 전원 자폭을 선택한 것일까?

애써 답을 구하지 않기로 한다. 오랜 세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꿈꾸며 불가능 속에서 살아왔던가. 한번 다물린 침묵은 차디찬 납덩어리가 되고도 남았다. 그래, 그래. 설마했던 32년 전의 실체가 이렇게 라도 대중 앞에서 거짓의 옷을 벗고 있음을 감사해하자. 그들은 무언가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무엇 때문에 자랑스런 애국가는 한번에서 그치고,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깃발을 물들이는 인민군가를 세 번씩이나 불렀단 말인가. 탈취한 버스에 한 맺힌 자신들의 이름 석 자를 피로 물들여 쓰면서도 그들은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북에 가야만 하는 그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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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인 박영희 시인은 1962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태생으로 1985년 문학 무크 「民意」로 등단, 시집 「조카의 하늘」(1987), 「해 뜨는 검은 땅」(1990), 「팽이는 서고 싶다」(2001)를 펴냈으며, 옥중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1999)도 있다.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와 평론집 「김경숙」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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