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문화예술과 컴백...균형발전 가능성 '경고음'"도청 논리라면 수도권 공공기관도 제주에 오지 말아야?"

최근 며칠 사이에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남균형발전을 내걸고 서귀포시로 사무실을 옮긴 문화관광스포츠국의 중심인 '문화예술과'가 이틀만에 제주시에 있는 도 본청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문화관광스포츠국이 서귀포시청사로 이사한 것은 지난 27일. 행정구조개편과 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산북-산남 '불균형 심화'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였다. 하지만 문화예술과 직원들에게 갑자기 '다시 짐을 싸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은 서귀포시로 이사한지 불과 이틀만인 29일 아침.
 
이와 관련해 문화예술단체들이 "지역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모든 문화예술 인프라가 제주시에 있고, 대부분의 문화예술 행사가 제주시에서 열리는 상황에서 이를 지원해야 할 문화예술과가 서귀포시로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제주도를 향해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제주도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기는 이들의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말대로 ‘대부분의 문화예술 인프라와 문화예술행사 제주시 편중’은 우리 제주도의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주무과가 제주시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상식적으로 보아 전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서귀포시민들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권리가 없단 말인가?

그런데 ‘문화예술과’의 제주시 존치를 주장하는 문화예술단체들과 일부 종교인들의 주장에는 몇 가지 허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그들의 주장이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지역과 계층에게 돌아갈 수 있는 혜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인구 8만여의 구서귀포시에는 작년 12월23일 <롯데시네마서귀포7>이 월드컵경기장에 둥지를 틀 때까지만 해도 개봉관 극장 하나 없어서 영화 한편을 보려 해도 제주시를 찾아야만 할 정도로 열악하기만 한 문화예술환경에 처해 있다. 그러던 차 문화관광스포츠국이 서귀포시로 옮겨온다는 소식은 지역 출신 국회의원은 물론 도의원당선자 등을 포함하여 온서귀포시민들을 흥분시키기에 족했다. 양식 있는 도민들 다수도 거기에 동감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문화예술부문의 활성화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산남지역사회 전반의 역동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하는 상징성을 높이 샀던 것이다. “과연 특별자치도가 되니까 뭔가 달라지겠구나!” 하는... 거기에 다른 이들도 아닌, 소위 문화예술인이라 하고 종교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그렇다면 수도권 9개 공공기관이 제주에 와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또 하나의 문제는, 장차 제주도 전체의 발전전략과 직결되고 정부의 정책과도 연결된다. 즉,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연장한다면, 우리 제주도가 기대해마지 않는, 국토균형발전정책에 입각한 공공기관 이전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혁신도시 건설’은 터무니없는 시책이 되고 만다.

제주도로의 이전이 확정된 9개 공공기관들 중 관련인프라나 이용자 접근성, 직원들의 근무여건 등 어느 면을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도 제주도로 와야 할 보편적인 이유가 없다. 제주도의 여건이 그들 기관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수도권에 비교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주도민들은 가급적 많은 기관이, 그것도 사업규모가 크고 따라서 이용자나 관련자, 그리고 상주직원이 많은 기관이 제주도로 와야 한다고 기대했고 주장했다. 제주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바로 그렇듯이 서귀포시의 여건과 상대적으로 적합성이 높은 부문으로 선택된 문화관광스포츠국은 바로 산남지역의 부활을 위한 견인차의 역할이 기대된 것이 아니었는가? 서울집중의 타당성은 부인하면서 제주시집중은 당연시한다면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산남지역의 사정은 안중에 없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사전대책없는 제주도 당국의 허술함이 빚어낸 '치명적 과오'

또한 이번 벌어진 해괴한 사안의 과정에 개재된 제주도 관계자들의 치명적인 과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의 소리 보도에 의하면, 제주도는 도 본청기구인 경우 신설되는 지식산업국과 관광문화스포츠국을 놓고 검토한 끝에 산남지역의 경제적 특성과 컨벤션센터 등을 감안해 관광문화스포츠국을 옮기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즉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신중한 사전검토 끝에 보다 적합성이 높은 부문으로 이전 부서를 결정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강도야 어떻든 반발은 예상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설득 논리도 없지 않았을 터이다. 당장 눈앞의 목청높은 반대는 보이고 장차의 파급효과의 의미심장함은 보이지 않더란 말인가? 이미 사전에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몇몇 목청 높은 반대가 있다고 해서 이사한지 이틀만에 짐을 다시 싸게 하는 도청 문화예술과 관련 의사결정 라인과 그 당사자들의 허술하고도 무책임한 업무능력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고스란히 도지사에게 부담이 되고 말았다.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불편함만 하더라도 그렇다. 서귀포시와 제주시는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이다. 제주시에서 열리는 문화예술행사를 지원하지 못한다니 엄살이 지나친 게 아닌가? 업무 처리상 떨어져 있는 것이, 예전에 비하면 서로간에 불편한 게 적지 않기도 할 것이다. 답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지역균형발전의 기회를 도모하자는 발상의 전환에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기본컨셉으로 하는, 특별자치도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지 않았는가?

"문화 교육 인프라 한계 극복하겠다는 김태환 지사의 취임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는 데 즈음한 치사에서 한명숙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는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정책의 내일을 가늠하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제주의 성패는 우리 국가 미래와도 직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온 국민이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큰 관심과 기대를 보내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와 같은 정책기조하에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된 것이다

수도권 집중의 공공기관들을 해당 지역의 상당한 반발을 무릅쓰면서 지방으로 분산 이전하는 정부의 정책은 궁극적으로 지역균형 발전을 통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총체적인 국가경쟁력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 왜 산북 산남 균형발전이 일부 관련당사자들의 불편함보다 덜 중요하단 말인가?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취임사에서 “제주는 ‘대한민국의 1%’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이, 재정 규모, 문화 인프라, 교육 환경, 인구수 등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데 그동안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한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 도지사 취임식을 제주시의 한라체육관이 아니라 산남의 컨벤션센터에서 치르도록 한 것은 한계 돌파를 위한 신선한 발상이며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틀만의 짐싸기‘는 그것이 발상의 전환이자 희망의 싹이 아니라 1회성 눈가림용 이벤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화예술과 컴백은 향후 산남 균형발전 가능성의 시금석

食도 兵도 결코 信에 미치지 못한다는 동양의 금언은 결코 고루한 허언이 아니다. 공신력을 잃고서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제주특별자치도에 걸맞는 리더십의 결정적 조건은 신뢰성의 회복에 있다. 그 점에 있어서 깨놓고 이야기해서 김태환지사는 그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왔지 않은가? ‘이틀만의 짐싸기’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서귀포 지역출신의 국회의원과 도의원들에게도 책무가 주어졌다. 작년 봄 이마트 사태 때처럼 이쪽 저쪽 표나 계산하면서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문제해결의 당사자로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주민대표가 왜 필요한가? 지역발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정의구현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들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다. 성명서 한 장으로 될 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민들이 당신들을 선출한 데 대해 상응하는 능력을 입증하라. “문화예술과 이틀만에 도 본청 '컴백'” 해프닝의 상징성을 유념하라. 결코 일개 과가 어디에서 집무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서울 대 지방의 경우만이 아니라 제주시와 다른 지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관철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기본적인 시민권 실현의 문제이기도 하며 따라서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구가 적은 곳에 살거나 많은 곳에 살거나 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리는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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