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포퓰리즘과 경제민주화

포퓰리즘의 어원은 인민 또는 대중이라는 뜻의 포풀루스다. 포퓰리즘은 엘리트주의와 대치한다,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는 종종 엘리트 기구인 원로원을 제치고 로마시민 전체에 호소하여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가장 고전적인 포퓰리스트로 꼽힌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앙샹 레짐에 대한 인민 대중의 반기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외세 배격 및 국유화 조치를 통해 대중의 큰 불만이었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불만을 기반으로 하므로 우파나 죄파 어느 한 쪽의 전유물도 아니다. 미국의 티 파티 운동과 "오큐파이" 운동은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똑 같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전자는 정부에 대한 불만에 불을 붙여 세금납부 거부도 불사하겠다고 하며 후자는 월 스트리트의 엘리트, 1% 때문에 99%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진행중인 글로벌 금융 및 재정위기가 더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탈출 메뉴가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내일에 있을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세 번째의 양적 완화를 결정할 지를 목마른 심정으로 주목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하려는 계획이 제대로 실행될 지에도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긴축과 성장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당면 과제를 두고 경제학적인 해법은 물론 정치적인 결단도 들리는 바 없다. 그 와중에 미국과 유럽의 실업률은 각각 8%와 11% 선을 계속 웃돌고 있다. 지금은 포퓰리즘의 대두가 당연한 시기인 것이다.

세계대공황이 한창이었던 1933년 독일에서는 제3제국이 탄생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부정되었고 금융자본은 죄악시되었다.

포퓰리즘의 조건들

파시즘(fascism)은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의 공적에 대한 증오를 공유하면서 오직 하나의 이상을 위한 단결만이 있다. 군중 동원이라는 점에서는 표퓰리즘의 한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꼭 파시즘의 출현을 걱정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것을 마냥 기다리는 선에서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금융시장에 쏠렸던 눈을 실물시장으로, 그 중에서도 다수의 약자들의 불만해소에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하나의 시도가 로빈후드세(稅)의 도입이다. 금리선물, 통화옵션 등 금융파생상품을 포함하여 모든 금융상품의 거래에 원금의 0.05%를 금융거래세로 징수하자는 금융거래세를 말한다. 한편으로는 '머니 게임'의 과잉을 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재원으로 전세계의 빈곤을 구제하자는 취지다.

전세계에서 이를 시행할 경우 연간 4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 제안은 한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선까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으나 세금의 신설이 금융거래를 위축시켜 관련 업계의 고용을 저해한다는 미국 측의 우려와 미국의 동참을 전제로 해야만 참여하겠다는 영국의 주장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로빈후드세가 보다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 이름이 표방하는 바와 같이 부자의 것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 준다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신문 칼럼니스트 김영호의 신간 '경제민주화 시대의 대통령'은 유통재벌의 골목시장 침탈이나 거대자본의 자영업과 중소기업 영역의 침투 같은 것은 결코 자행되어서는 안 되는 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민생복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참뜻

경제민주화는 "똑같이 잘 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이윤추구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 빈부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그러나 초기 자본주의를 일찍 경험한 미국의 경우도 시장점유율이 일정한 선을 넘거나 대기업 사이의 담합행위 등 경쟁 제한적 행위를 금지하는 반독점 입법을 시행했다. 그리고 거기에 경쟁 법(Competition Law)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경제민주화 요구는 소자본은 소자본대로 맨몸인 경우는 맨몸인대로 돈벌이에 나설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서민 대중은 로비후드의 출현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그 정도로 험악한 세상은 아니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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