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의 최근 연구보고서는 미국은 내년이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2007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지만 유럽은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양쪽의 차이는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당시 유럽과 미국의 정부부채 잔액은 각각 GDP의 59% 및 62%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 대응과정에서 정부 재정지출이 증대하면서 2010년에는 이 비율이 유럽 80% 미국 92%로 크게 증가하게 되는데 미국과 유럽의 대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은 이때부터였다.

미국은 재정 지출을 지속하는 대신 부실금융기관의 파산 및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치면서 은행과 기업 그리고 가계의 구조조정을 속행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럽, 특히 유로 존 국가들은 정부 재정을 바로잡는 일이 더 우선이라며 위기가 한참 진행 중일 때에 재정정책의 방향을 긴축으로 급선회했다.

유럽의 경우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은 정부재정의 긴축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다. 유럽은행들은 이제서야 저위험의 전통 은행업무와 고위험의 투자 은행업무를 조직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유럽은 재정개혁 우선, 미국은 민간부문 개혁이 우선이었다.

미국은 그 열매를 얻고 있다. 시티은행 그룹은 '서프라이즈 지수'(surprise index)라는 것을 추적하고 있는데 이는 기업들의 성과가 전문가들의 예측에서 얼마나 벗어나는가를 지수화한 것이다. 이것이 지난 7월에 최저 마이너스 65까지 내려 갔다가 최근에 플러스 57까지로 반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KFC 치킨이나 허기스 아기 기저귀 같은 소비자 심리를 예민하게 반영하는 업종들의 서프라이즈가 컸다고 한다.

유럽은 재정개혁, 미국은 은행구조조정

주택경기도 반전되고 있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기존주택 거래량은 8월 이후 전년대비 10%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거래 가격도 본격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는 지난 4년간의 공급 공백이 있었던 데 연유하기도 하지만 불량 모기지 채무자로 몰려 집을 은행에 빼앗긴 다수의 미국인들이 저가 아파트의 새로운 수요자로 등장하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그 동안의 긴축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경제분과 위원장 올리 렌(Ohli Rehn)의 발언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계수적 목표는 그것이 숫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이다. 스페인은 질적 구조조정의 길을 잘 밟고 있으므로 2013년 말까지는 재정적자 감축목표의 계수적 달성을 추궁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당분간 스페인 정부에게 재정긴축(austerity)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작년에 GDP의 11%에 달했던 재정적자를 금년 6.3%, 내년 4.5%로 줄이겠다는 것이 그 동안의 목표였는데 시장의 전망은 그 정도까지는 힘들어도 금년 8%, 내년 6%로 점진적 개선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던 참이었다. EU 집행위의 이런 변화는 불황기의 무리한 긴축을 비난해 온 IMF의 최근 입장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지에서 학교, 대중교통, 항공사들의 파업이 최고조에 달했던 분위기에서 이런 변화가 나온 것을 대중적 반발에 굴복한 것으로 폄하할 수도 있고 아니면 현실적 대안을 찾으려는 이성의 복귀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급한 긴축을 반성하는 유럽

중요한 것은 스페인 같은 나라가 이제 유럽중앙은행에게 자기 나라의 국채를 매입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은 추가긴축 요구를 해 올 것이 두려워 이의 요청을 미루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국채가격은 오랜 만에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재정위기의 국면도 급속히 개선될 수 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유럽은 유로화가 기축통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도 언젠가는 재정적자 문제를 풀기 위하여 유럽이 걸었던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눈 앞에 다가온 재정 낭떠러지 정국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의 '재침체'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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