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초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연간예측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미국의 경우는 정부와 의회의 무능, 유럽의 경우는 유로 존의 붕괴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전부 빗나갔다. 모건 스탠리는 S&P 500 지수의 7% 하락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13% 상승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 국채는 10%, 그리스 국채는 78%나 가격이 상승했다. 전세계적으로도 MSCI 월드 지수가 17% 상승 마감했다. 금년 들어서도 미국의 S&P 500은 어제까지 2% 추가 상승해 들뜬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의 거의 돈 폭탄에 가까운 양적완화 정책이 있었고 거기에 미국의 재정 낭떠러지 문제의 타결도 가세하고 있다. 미국 연준은 매월 850억달러 상당의 국채 및 주택모기지 증권을 시장에서 공개 매수해왔고 유럽 중앙은행도 필요할 경우 유로 존 국채의 무제한 매입을 공언했는데 이것의 위력이 컸다. 재정 낭떠러지 문제는 결국 극 부유층을 제외하고 소득세 인상을 막았고, 정부 예산의 일괄 자동삭감(sequestration)을 3월 이후로 미루었는데 시장에서는 이것을 반기고 있다.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소득세와는 별도로 원천징수하고 있는 FICA 세금(연금저축 성격의 특수목적세)은 4,2%에서 6,2%로 2년 만에 원상 복귀되었다. 또한 소득공제 제도에 상한선을 도입해 세수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한편 이번에 미루었던 정부지출 자동삭감은 3월 이후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는 것이 대세인데 그렇게 된다면 세금 인상과 정부지출 축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스테리티(재정긴축) 모드에 미국도 진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도 오스테리티(재정긴축) 모드 진입

재선된 오바마는 신임 국방부장관에 척 헤이걸(Chuck Hagel)을 지명했다. 의회에서 그의 인준이 난항을 겪을 것을 예견하고도 밀어붙인 것이다. 반대 의원들은 그의 반 이스라엘 발언을 문제 삼기도 하고 그의 반전사상이 국방장관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선택한 것은 국방예산 절감을 단행하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세계 국방비 지출의 40%를 점할 정도로 크며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군수산업체들의 로비를 많이 받는다. 의회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인준은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보수진영 내 구 보수주의 세력들이 헤이걸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예산이 삭감 수순에 들어가면 다른 예산항목들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오스테리티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상쇄해야 하는 숙제는 누가 푸는가? 지난 6일 바젤위원회는 은행의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을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LCR은 금융위기 발생시 예상되는 첫 30일 동안의 뱅크 런(급속한 자금인출)을 자체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은행감독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신설했던 것인데, 그 준수 시기를 2005년에서 2009년까지 연기했을 뿐 아니라 유동자산의 범위에 우량 주식과 우량 회사채를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비율 계산방법도 은행에 유리하게 바꾸어주었다.

될수록 부담을 줄임으로써 은행들이 대출확대를 통해 신용창조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려는 속셈이다. 이는 미국 연준이 진행 중인 양적완화 조치 QE 3 및 QE 4의 시한을 "실업률이 개선될 때까지"로 못박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통상 사용하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되살아날 때까지"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고용과 부채 경감에 도움

MIT 경제학 교수이자 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랜차드는 2010년 2월 "마크로 경제정책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IMF 평가서를 통해 미국 연준의 인플레이션 타겟 2%는 너무 낮아서 4%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공식으로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비주류 경제학 이론인 인플레이셔니즘(Inflationism)은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통화정책의 운신의 폭이 커지고, 둘째 실질임금을 낮추어 줌으로써 고용을 늘릴 수 있고, 셋째 부채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려 채무 부담을 경감시켜 준다는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미 연준이 재무성증권을 매입하며 시중에 풀어놓은 돈이 1월 2일 현재 1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이 자금을 회수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의 조건은 충족되어 있다. 연준은 이미 목표 방향을 인플레이션 억제에서 인플레이션 조장 쪽으로 선회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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