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그 동안 미국에 위탁보관 중이던 금괴를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10위로서 8위인 우리나라보다 작지만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외환보유고 중 금의 비중이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량으로는 작년 말 현재 3386톤에 달하는데 이중 대부분을 미국 영국 프랑스 3개국 중앙은행의 금고에 분산 보관했다. 세계2차 대전 종전 후 영(zero)에서 출발했지만 매년 누적되는 무역흑자 덕에 금의 보유가 이만큼 커진 것이다.

영국으로부터는 수년 전에 940톤을 이미 회수했고 이번에는 프랑스로부터는 374톤 전량을, 그리고 뉴욕으로부터는 총 1500톤 보관물량 중 300톤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연방은행 금고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독일정부는 그 이유로 국내여론을 든다. 유럽의 부실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이 나중에 회수될 수 있는 것이냐, 외국에 맡겨 놓은 금이 확실히 있는 것이냐 하는 우려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감사원도 다른 나라의 금 보관증명서를 그대로 믿지말고 주기적으로 실물검사를 할 것을 까다롭게 요구했다고 한다.

유로화로 통합된 이상 파리에 금을 놔둘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달러화는 아직도 세계화폐다. 뉴욕 맨하탄의 연방준비은행 지하 24미터 금고에는 약 7000톤의 금괴가 보관되어 있는데 여기에 있는 것은 거의 전부가 독일을 비롯한 외국 중앙은행들이 맡겨놓은 금이다. 보관료는 일절 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유독 독일이 앞서서 금을 빼가는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한다. 첫째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의 표시라는 것이다. 독일 연방은행 바이데만 은행장은 중앙은행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물가안정 이외의 정책 목표를 수행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위기해법이 아니라는 일관된 주장을 해왔다.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불만?

둘째는 소련 붕괴 이후 동쪽으로부터의 침공의 위협이 사라졌고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기대지 않아도 되므로 미국 눈치 볼 것 없이 금을 가져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위상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교전(交戰)할 때다"라는 제목의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의 지난 17일자 사설이 그 상황을 잘 요약한다. 오바마의 외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데 유일한 단점은 그런 외교가 성과가 없다는 데 있다. 이란과 아랍세계를 향해 움켜쥔 주먹 대신 우호의 손을 내밀었으나 무엇이 돌아왔는가, 북 아프리카의 민주화 봉기를 보면서도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민주화를 쟁취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했지만 지금의 이집트와 리비아는 어떤 지경으로 되었는가를 되묻는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충분한가?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이 작년 10월 발표한 유로 존 재정연합의 로드맵을 보면 그 첫 단계는 은행연합 기구의 설치, 즉 각국의 은행들을 유럽 중앙은행이 통합 감독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회원국의 재정정책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권한과 아울러 노동정책과 같은 비재정적 분야까지 이를 공동조율하고 감독과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재정연합의 본부에 부여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부 안을 추진하면서 그 무게중심은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위치해 있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이번 유럽 재정위기 와중에서 유럽 최강자의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프랑크푸르트 중앙은행의 지하에 금을 쌓아 놓고 싶은 것이 독일의 더 큰 본심이 아닐까 한다.

유럽 최강자로서의 위상에 부합하도록

영국에서 금을 이전해 올 때만 해도 비밀에 붙이던 것을 이번 이전은 사전에 공개했다. 한계에 봉착한 것 같아 보이는 자본주의의 장래에 있어서도 앵글로색슨 모델은 쇠하지만 독일 모델이 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속마음까지 겹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번 금 이동의 상징성은 커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 제2기를 맞는 미국의 외교 및 군사정책은 도덕적으로 순결하지 않은 무력행사를 자제하는 원칙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3월로 연기되었던 국방비 자동감축 시나리오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미국이 중심이 되어 왔던 세계의 리더십 구조가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 변화할 때, 때로는 비도덕적이었던 무서운 큰 손이 없어지는 지구촌에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흥미롭게 지켜본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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