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QE(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QE 중에서 제로금리의 지속은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어 초점은 월 850억달러의 채권매입을 언제 얼마씩 감축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막상 QE 탈출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처음부터 불안한 두개의 조건을 달고 출발했다는 점과 양적완화가 극약 단계를 넘어 마약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첫째 QE의 지속을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연계시켰던 것은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 우선 실업률부터 보면 미국은 실업자의 정의를 일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일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자로 규정한다. 구직광고를 보기만 한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구직원서를 제출했거나 인터뷰에 응했거나 등의 가시적인 구직 활동을 최근까지 하였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표시가 없으면 일하기를 원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유엔 전문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일단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 분류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가능 인구 중에 취업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닌 자가 존재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크기를 알아 볼 수 있는 통계가 경제활동참가율이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통계에 의하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말에 66.0%였던 이 비율이 지난 11월말 현재로 63.0%로 3% 포인트 낮아졌다.

11월말 실업률이 7.0%로 낮아졌다는 발표를 두고 QE 탈출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업률 인하의 배후에 구직 포기자들이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가능인구 2억5000만명을 기준으로 할 때 그 숫자의 3%인 약 750만명이 현재 진행중인 금융위기의 와중에 비(非)경제활동인구로 전락하여 취업예비군으로 대기하고 있다.

배경이 못 미더운 실업률 하락

이들은 고용사정이 호전되면 다시 취업의 문을 두드리게 되어 실업자의 수를 증가시킨다. 새로 부임하는 연준의장 옐렌이 좋아하는 표현, "갈 길이 멀다"에는 이런 내막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어떤가? 소비자물가지수가 2%에 훨씬 못 미치고 있어 QE로 인한 통화증발이 물가상승을 초래할 위험성이 없다는 것이 QE 지속을 주장하는 측의 유력한 무기였다. 그러나 돈은 소비뿐 아니라 저축의 수단이기도 하다. 재산형성 항목에 있어서의 물가상승은 애당초 인플레이션으로 취급 받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바로 이런 인식방법의 오류 때문에 금융자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품이 일고 있다는 우려가 달라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리차드 피셔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정리하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개의 연계조건은 그 자체가 불안정한 기준이어서 QE 탈출 근거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것, 나아가 그 두 지표를 제대로 이해하더라도 실업률은 QE 지속, 인플레이션은 QE 종식이라는 서로 정반대되는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QE 탈출을 어렵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연준의 공개시장조작이 너무 깊이 진전되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경기 조절을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 채권매입을 통해 통화를 증대시켰다면 다음에는 적절한 시기에 이를 회수하는 것이 공개시장조작의 본분이다.

데이비드 스톡튼 전 백악관 예산국장은 지금의 QE를 "통화라는 이름의 헤로인"이라고 악평한다. 극약을 넘어 마약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채권매입 규모의 축소를 놓고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마당에 매입했던 채권을 시중에 내놓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호지세의 미국 연준

중국 북조 최후의 왕조인 주나라의 선제가 죽고 나서, 한족인 재상 양견이 선비족인 주나라 왕조를 타도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 그의 용기를 북돋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미 호랑이를 올라타고 달리는 기세입니다. 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호랑이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그는 결국 수(隋)나라를 세우고 8년 후에는 중국을 통일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기호지세(騎虎之勢)를 계속 밀고 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S&P 500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하여 이를 굳이 거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

다른 변수에 변화가 없다면 장기적으로 달러화의 가치는 하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깨지지 않는 거품은 거품이 아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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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일신문> 12월 11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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