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54) 일하는 국민과 도민의 노동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길 바란다

최근 모 정치인이 현재의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시간 제한에 대하여 언급하며 ‘1주일간 120시간까지 바싹 일할 수 있도록 열어두어야 한다’등의 발언을 한 후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 처음 이야기를 꺼낸 유명 정치인은 ‘게임업계를 만났을 때 나온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지 과로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예시를 든 것뿐이라고 해명하지만 120시간 발언으로 촉발된 노동시간이 화두가 되었다.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 노예제 사회에서부터도 일하는 사람의 노동시간은 언제나 화두였다. 농경사회의 영국에서는 노예가 3일 이상 노동을 거부할 경우 인두로 낙인을 찍는 등의 제도를 두고 있었고, 자본주의 초기의 영국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15시간을 훌쩍 넘었다. 아동노동이 문제가 되자 뒤늦게 13세 이하의 아동 노동시간을 12시간 이하로 강제하던 시대도 있었다. 당시에도 1주일에 1일은 휴식이 지켜졌으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5시간씩 한 주간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 주 90시간이 된다. 

[그래픽디자인=김찬우기자] ⓒ제주의소리
내년 치러질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일하는 국민과 제주도민의 노동에 대한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길 바라본다. [그래픽디자인=김찬우기자] ⓒ제주의소리

10여 년 전 경기도 평택에서 주야 2교대 사업장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당시 같은 공단에 위치한 동종업계의 공장의 근무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본으로는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오후 8시에 퇴근하는 12시간 맞교대를 하고,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바로 이어서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추가연장근무를 할 수 있게 회사에서“해준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다음날 휴무일이 아니라 근무일이라면 계속 이어서 일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저녁 8시에 퇴근하는 것이다. 꼬박 36시간을 라인에서 일을 하며 보내는 것이다. 근무시간 사이 추가연장 12시간을 하면 시급의 2배를 받을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이 신청했었다. 1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겠다며 그 공장에서 일한 후배는 추가연장을 할 수 있을 때마다 했고, 1달간 연장근무만 150시간을 찍었다. 그렇게 일을 해도 한주의 근무시간은 100시간 가량이었다.

일하다 과로사로 사망하면 산업재해가 된다. 산업재해 여부를 결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과로를 인정하는 기준으로 발병 전 12주를 평균해서 주간 60시간 이상 일한 경우(혹은 발병 전 4주간 주간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상 관련성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평균 주간 노동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도 업무상 질병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업무상 부담 요인을 가중시키고 있다. 노동시간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도 바로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5월 1일이 노동자의 날로 제정되고 노동자의 유급휴일이 된 것의 시초인 130여 년 전 미국 시카고 노동자의 파업투쟁 요구는 1일 8시간, 주 48시간제 노동시간이었다. UN산하 국제노동기구 ILO가 주 40시간 노동을 국제기준으로 삼은 것이 1935년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만들 당시 주 48시간 노동제를 기본으로 삼았다. 2003년 소위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기준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40시간제를 52시간제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예외적으로 노동자의 동의하에 가능한 주간 연장근무 12시간까지 포함하여 52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기준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임금수준 인상이 동반되어야 한다. 주간에 일을 하면서도 생활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근무시간 외에 혹은 쉬는 날에 투잡을 찾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경우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2022년 대선의 시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의 발언이 촉발되어 ‘노동시간’이 화두가 되고 상대진영 후보진에서 해당 발언을 비판하며 노동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2017년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치렀던 대통령선거에서는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1만 원”공약을 내놓을 정도로 노동의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며 노동의 문제는 감춰졌고 대선을 앞둔 지금도 국민의 먹고사는 이야기보다는 진영논리가 더 쟁점이 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 120시간 노동’의 발언으로 노동시간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왕이면 스웨덴에서 이미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주 30시간 노동’이 촉발되어 논의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번 사례를 기점으로 내년 치러질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일하는 국민과 도민의 노동에 대한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길 바라본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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