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때 뒤틀린 가족 찾기 나선 제주 사람들] ② 김희택(44)씨

제주4.3 때 집단학살로 ‘무남촌(無男村)’이라 불리는 제주시 조천읍 북촌에서 자란 40대 청년은 북촌초등학교를 지날 때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4.3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듣지 못했지만, 어른들에게 사람들이 많이 죽은 장소라는 얘기를 듣고 자란 것이 원인이다.
마을 청년회 활동으로 올해 너븐숭이4.3기념관을 청소하던 김희택(44)씨는 수백명의 이름이 기재된 북촌 학살 피해자들 명단에서 큰 삼촌 부부의 이름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큰 삼촌 부부에게는 3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도 없이 4.3 희생자로 올랐다.
4.3을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침묵의 세월’은 수십년간 이어졌다. 민주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4.3 피해자 가족에 대한 ‘주홍글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했다. 제주 사람들은 주변에 피해가 될까봐 4.3때 겪은 피해를 홀로 마음에 담아두고 살았다.
북촌초를 졸업해 40대 청년이 된 김씨도 어릴 때 4.3 당시 많은 북촌마을 사람들이 죽었다는 정도의 얘기만 들었다.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진구(1953~2004)는 늦둥이다. 김씨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큰 삼촌 부부의 제사상이 함께 차려진 것을 보고 자랐다.
김씨의 아버지가 20년전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김씨는 아버지가 모시던 제사를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는데, 백모와 이름없는 사촌형은 김씨 가족 가족관계등록부(호적)에 없다.
4.3때 군경 토벌대는 북촌마을을 모두 불태워 주민 상당수를 총살하고, 나머지는 해안가 마을인 함덕으로 이동하게 했다. 함덕에서도 상당수가 총살됐으며, 이후 토벌대는 북촌 일대에서 젊은 남자들을 사살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중산간 마을에 사는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내몰렸고, 북촌에 살던 청년들은 숲 속에 숨어있다가 어두워지면 몰래 해안가로 내려와 허기진 배를 채워 또 피신하곤 했다.
김씨의 큰 삼촌 김진태(1929~1949)는 아내 김근현(1928~1949)과 가정을 꾸려 아들을 낳고 살다 4.3 피해를 겪었다.
김근현과 3살짜리 아들은 1949년 1월18일 함덕 모래사장에서 군·경 토벌대에 의해 총살됐고, 아내와 아들을 잃은 김진태도 그해 5월13일 함덕에서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70여년 전 김진태는 아내 김근현과 3살짜리 아들을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 4.3희생자인 김진태 가족은 너븐숭이4.3기념관에 모두 이름이 올라 있는데, 3살짜리 아들은 이름도 없이 그저 김진태자(子)로 기재돼 있다.
4.3때 김씨의 할머니도 사망했고, 김씨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4.3때 생존한 삼촌과 고모들이 일본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의 할아버지는 4.3의 광풍이 끝나자 새로운 아내를 맞고 늦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진구다.
고(故) 김진구는 제주에 남아 아버지와 어머니, 배 다른 형제들의 제사와 벌초 등을 도맡다 2004년 삶을 마감했다.
김진구가 사망하면서 아들 김씨가 자연스레 제사와 벌초를 전담하고 있다. 김씨의 조부모와 큰 삼촌 가족은 현재 북촌 마을공동묘지에 함께 안치돼 있다.
[제주의소리]와 만난 김씨는 “친인척이 일본에 갔다는 얘기만 들었고, 생사조차 모른다. 제주에 남아있는 자손으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들 비슷하겠지만, 저도 구체적으로 4.3때 가족들이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마을 어르신들이 말해줘 ‘그땐 그랬구나’하는 정도”라며 “너븐숭이4.3기념관에 큰 삼촌 가족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손으로서 제사와 벌초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 20년째 맡고 있다. 4.3 때 뒤틀린 가족관계 정정이 가능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큰 삼촌의 가족 관계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백모(김근현)와 3살 때 목숨을 잃은 사촌형을 큰 삼촌 호적에 올려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생사조차 모르긴 하지만 일본의 친인척들이 지금 제주의 상황을 잘 모르지 않겠나. 제주에 있는 저말고 누가 할 수 있겠나”라며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고 싶다고 했다.
김진태의 가족 모두 4.3희생자 결정됐으며, 희생자 결정 소명자료에는 3명의 가족으로 기재돼 있다.
또 4.3희생자 결정 소명자료에 김씨의 아버지는 큰 형인 김진태 가족의 유족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김씨는 4.3희생자 소명자료와 북촌 마을주민 인우보증 등을 토대로 호적 정정을 준비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