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때 뒤틀린 가족 찾기 나선 제주 사람들] ⑥ 원희철(52) 씨

어머니(김춘란 할머니)를 위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준비중인 원희철씨. ⓒ제주의소리
어머니(김춘란 할머니)를 위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준비중인 원희철씨. ⓒ제주의소리

70여 년 전 4.3 당시 젊은 남자들이 거의 깡그리 학살돼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릴 정도의 피해를 겪은 제주 북촌 사람들은 아직도 4.3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요망진(똑똑하다, 야무지다의 제주어 ‘요망지다’. 주로 어린 아이에게 사용) 것으로 소문나 동네 사람들에게 ‘요맹이’라 불린 김춘란(79) 할머니는 70여년 전을 떠올릴 때마다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4.3을 힘들어 한다. 김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가혹한 4.3의 세월을 버텼고, 힘든 삶을 살았다. 

4.3을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지켜본 아들 원희철(52)씨는 어머니의 한(恨)을 풀기 위해 어머니(김춘란)의 어머니와 또 어머니의 이복동생 호적을 되찾기에 나섰다. 

현재는 가족관계등록(옛 호적) 작성과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았지만, 4.3 당시에는 호적 작성 등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갈 때나 혼인할 때쯤 호적에 올린 경우도 많고, 아예 호적에 오르지 않은 사례도 많아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호적 정리가 이뤄지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첩’이 기재된 일부다처 호적도 발견되며,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일부다처 가족이 꽤 존재했다. 

고 김윤석은 고 강순부와 가정을 꾸리던 중 2번째 아내 고 한계생을 맞았고, 김윤석과 한계생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김춘란 할머니다. 

집안 문제로 한계생은 딸을 데리고 북촌리 다른 집안으로 재가했다. 재가한 집에서도 한계생은 2번째 아내의 역할을 했고, 김춘란 할머니에게는 이복동생이 생겼다.

김춘란(오른쪽) 할머니가 이복자매(왼쪽)를 만나 옛 얘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춘란(오른쪽) 할머니가 이복자매(왼쪽)를 만나 옛 얘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새로운 가정에서 생계를 꾸리던 중 북촌에 4.3이 엄습했다. 1949년 새해 북촌 지역을 뒤덮은 4.3은 수백명의 목숨을 잔혹하게 앗아갔다. 

북촌 마을이 모조리 불타면서 6살이던 김춘란 할머니는 젖먹이 이복동생을 업어 급히 숨었고, 어머니 한계생을 포함한 집안 어른들이 처참히 살해되는 현장을 봤다. 

도망쳤지만,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서 젖먹이 이복동생도 숨을 거뒀다. 

홀로 남은 김춘란 할머니는 계속 걸어 김녕까지 갔고, 요망진 성격으로 보모 생활을 시작했다. 말이 보모일 뿐 집에서 또래 아이들을 챙기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 

보모라는 역할 때문에 또래 아이들이 학교갈 때 김춘란 할머니는 집에 남아 어른들의 일을 거들었다. 

세월이 흘러 혼기가 찬 김춘란 할머니에게 어머니(한계생)의 첫 남편(김윤석) 가족들이 찾아왔다. 한계생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던 김윤석의 가족들이 김춘란 할머니가 생존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찾아온 것. 

그렇게 김춘란 할머니는 김윤석의 딸로 호적에 올랐다. 김윤석의 유족들은 큰 어머니 강순부와 작은 어머니 한계생의 가족들까지 어울려 지금까지도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호적 문제가 정리된 김춘란 할머니는 자신의 가정을 꾸렸고, 외동아들 원희철씨를 낳았다. 

원희철씨는 기구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김춘란)가 품고 있는 마음의 짐을 풀기 위해 호적 정정을 원한다. 호적 등에 없는 어머니(김춘란)의 어머니, 어머니의 이복동생이 짧은 생을 살았다는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서다.  

원희철씨가 4.3때 뒤틀린 가족관계 정정을 위해 모은 자료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와 만난 원씨는 “기억하는 북촌 어르신들 모두 어머니(김춘란)를 ‘요맹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요망진(야무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얘기”라며 “저도 ‘요맹이 아들’로 불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어머니는 4.3을 얘기할 때면 몸을 떠시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서 더더욱 얘기를 꺼내지도, 듣지도 못했다”며 “10여년 전에 할머니 등의 호적을 되찾고 싶어해 문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어머니가 속상해 하셨다”고 덧붙였다. 

원씨는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4.3때 뒤틀린 어머니의 호적 정리를 제가 맡고 있다. 호적상 저의 할머니(김춘란 할머니의 어머니 한계생)는 ‘처녀’일 뿐이고, 어머니의 이복동생은 태어났다는 기록조차 없다. 할머니(한계생)를 기억하는 동네 어르신들과 친인척들이 남아 계셔서 다행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으로서 기구한 어머니 삶에 위로가 되고 싶다”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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