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실종된 민심 되찾기 위해 원칙 입각한 전면적 사업 재검증 필요하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돈 잔치

또 다시 개발특혜의 재판(再版)인가. 제주시 오등봉공원 민간특례 개발사업(일명 오등봉 특례사업)에 대한 의혹이 지역 차원을 넘어 전국적 이슈로 부상했다. 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의 논란이 확산되자 급기야 감사원도 최근 자체감사에 착수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오등봉 사업은 외형은 도시공원화 사업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아파트 대단지 개발이다. 오등봉 공원은 토지매입비와 공원 공사비를 모두 합쳐 2300억 원 정도 추산되는 반면, 아파트는 분양수익만 5000억 원 이상 예상된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화려한 ‘돈 잔치’가 벌어질 판이다. 

제주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생태 숲과 하천으로 남아있었던 오등봉 일대는 제주시 동서 간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한 간선도로로 애조로가 개설되면서 얼떨결에 도심의 아스팔트 감옥에 갇혀 버렸다. 당시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비판 여론은 도로주변 개발을 철저히 억제하겠다는 공적 약속으로 무마했다. 역시 허언이었다. 오등봉의 공원화는 우리 고장이 ‘청정제주’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모범과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였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 앞에 ‘자연과 도시의 공존’에 대한 희망은 다시 허무하게 무너졌다.

사형대

돌이켜보면 자연이 내려준 최고의 자산이었던 앞바당 갯가를 그렇게 잃었고, 늦가을 바람에 살랑거리는 억새꽃 너머 한라산 정경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용담 해안도로의 본래 모습이 그렇게 없어졌고, 지나가는 미국인들마다 캘리포니아 해안도로보다도 훨씬 멋지다며 “원더풀”을 자아내던 애월 해안도로의 본 자취가 그렇게 사라졌다. 이젠 오등봉이 다음 차례다. 지금은 자연생태 숲이 ‘녹지 보전’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의 사형대에 선 아이러니를 목격하고 있다. 이러다 한라산을 보존하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백록담 앞에 아파트 단지를 짓자고 할까 두렵다.  

환경보호가 최고 가치로 대두되는 시대에 제주도는 이를 위해 대체 무슨 노력을 했을까. 역시 콩 심은데 팥 나기를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인공지능(AI)과 플랫폼 산업으로 대표되는 4차 혁명시대에 미래 산업엔 전혀 관심도 없고 굴뚝산업에만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부우며 뒤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데 골몰했던 MB정권의 과오와 악행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보수 적통자지만 그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었던 원희룡 도정에게 당초 추호의 기대감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의 행태가 ‘책임방기’ 차원을 넘는다. 

제주시 오등봉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조감도. ⓒ제주의소리
제주시 오등봉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조감도. ⓒ제주의소리

장본인

이에 대해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생태 공원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오등동 개발이 5년 전 제주시 관계부서의 검토결과 이미 ‘사업 불가’ 판정을 받은 제주시 내부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 계획한 아파트 규모가 이번 사업의 절반인 688세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개발계획이 수용되지 않은 것은 대규모 주택 및 상업지역 개발로 인해 심각한 교통 혼잡을 유발하는 것에 대한 우려뿐만이 아니라 생태공원에 대한 심각한 환경훼손을 초래함으로써 공원의 본질적 기능과 의미가 상실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당시엔 제주시장을 비롯해 담당 공무원들이 공정한 판단과 업무수행을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선 21세기에 20세기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단체장도 있는 법이다. 이미 사장(死藏)된 오등동 개발 사업을 다시 관(棺)에서 꺼낸 장본인이 바로 원 전 지사라는 것이다. 일찍이 공원화가 결정됐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미뤄왔던 오등봉 사업이 2019년 민간특례사업으로 다시 결정된다. 원 전 지사가 의심을 사는 것은 2017년 약 1조원의 지방채를 발행하면서도 정작 최우선 사업이었던 오등봉 공원 조성사업은 사용처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밑자락

“예산부족으로 오등봉 사업이 민간개발로 넘겨야 했다”는 관계자의 해명이 단지 최고수장의 개인적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한 도의원은 “(민간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미리 계획하고 있지 않았을까”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오등봉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도시공원 일몰제로 공원지구가 해제되기 이전에 사업을 고시해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원 도정의 평소 주장과 완전히 대치된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지도자는커녕 평범한 인간의 기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산을 확보했으면 가장 필요한 사업부터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정작 개발압력이 없는 삼매봉 등 시급하지도 않은 곳에 먼저 투입했다니 정말로 수상한 일이 아닌가. 이는 오등봉 사업을 공공 주도에서 다시 민간사업으로 돌리기 위한 밑자락을 깔기 위한 것이라는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민간특례사업 제안서 심사 위원이었던 동일인이 사업검증 용역에도 평가위원으로 관여한 ‘셀프검증’은 최고결정권자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결론에 절차만 형식적으로 꿰맞추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오징어

게이트는 공적 권력을 남용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행자 공모에서 2순위인 선정된 것도, 그리고 이 업체에 최저수익을 보장해 준 것도 게이트 의혹을 짙게 한다. 이에 대해 제주시장은 “대장동은 이익금을 사업자가 가져가지만, 오등봉 공원은 초과 수익금을 제주시에 환수하는 조치를 해 놓았다”며 반박한다. 하지만 제주시가 환수할 수익금을 고정액으로 못 박지 않는 한, 사업비용을 부풀려 초과수익금을 ‘빵 원’으로 만드는 건 개발업체에게 일도 아니다. 영리가 목적인 기업에게 천사의 마음을 바라는 것인지 정말 한심한 해명이다. 

제주시장도 기업의 이런 생리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건설업체에게 환경보호는 돈을 벌기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아파트에 생사가 달린 중대사처럼 유별나게 집착하는 우리 국민들이 아니던가. 이런 심리를 이용해 공원 조성비용을 아파트 분양수익에서 조달하는 것은 도박판에서 ‘꽁지’를 떼는 대가로 노름꾼들에게 떼돈을 벌게 해주는 격이다. 더욱이 천혜 자연인 오등봉이 단지 내 근사한 앞마당이 되면서 높은 인기와 관심으로 아파트 분양가는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자연을 살리겠다는 오등봉 개발이 오히려 자연과 서민을 죽이는 “오징어 게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적폐

그러나 아파트 분양가와 수익금 규모의 향방은 차후의 문제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환경훼손이다. 아파트 규모를 두 배 이상 늘리면 환경파괴도 그만큼 악화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도 반박도 없다. 원 도정이 남기고 간 유산이 적폐임이 분명함에도 일반 시민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게이트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다. 결국 법정 싸움까지 갔지만 설사 제주시가 법적으로 승리한다고 떳떳해 할 일이 아니다. 법정 싸움은 그만큼 주민자치에 주민들의 의지가 소외되고 소통이 막혀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제주시는 주민 대표와 환경단체를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객관적이고 엄정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하고 개발업체 선정과정과 사업계약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불신이 극에 달한 주민들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선 원칙에 입각한 소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결정을 내렸던 5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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