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과 함께 한 제주대병원 20년] ② 1960~1990년대 의료체계, 상급 의료기관 ‘도민 염원’

제주를 대표하는 거점 의료기관이자 도민의 의료 안전망 역할을 자임하며 지난 2001년 문을 연 국립 제주대학교병원이 지난 11월 1일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열악한 의료체계를 극복하고, 인술을 펼치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뒤따랐다. 제주대병원의 역사는 곧 제주 공공보건의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의소리]는 약 100여 년 전 제주 근대 의료를 태동시켰던 제주자혜의원으로부터 오늘날 제주대학교병원이 의료자치 실현에 도전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되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비전과 과제를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 주
1998년 3월 열린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개교 현판식.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1998년 3월 열린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개교 현판식.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섬 지역'이라는 제주의 특수성은 근현대에 들어서도 열악한 의료체계를 개선하는데 있어 꾸준히 발목을 잡았다. 집 안에 중증·희귀병 환자가 생기면 어김없이 가세가 기울던 것이 정설로 여겨지던 때다.

지역 내에서의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려는 시도는 꾸준했다. 공공의료의 축이었던 제주의료원의 경우 1979년 12월 당시 80병상에 그쳤던 시설을 증·개축 과정을 거쳐 1992년 7월 200병상으로, 1998년 12월에는 256병상으로 확장했다.

민간 차원에서도 1960년대 후반부터 전문의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산부인과, 외과, 신경외과, 소아과, 비뇨기과, 안과, 정형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방사선과 등 거의 모든 전문 과목이 들어섰다. 1980년대 이후에도 성형외과, 흉부외과, 예방의학과, 결핵과, 해부병리과 등의 개원이 잇따랐다.

  제주 첫 민간병원 나사로병원, 첫 종합병원 한국병원

1967년 첫 민간병원인 50병상 규모로 개설된 나사로병원에 이어 종합병원으로는 한국병원이 1983년 2월, 제주한라병원이 1983년 10월 각각 설립돼 의료복지에서 소외됐던 제주도민의 건강을 지켜왔다.

이와 맞물려 제주도내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의 수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2005년 집필된 '제주도의사회 60년사'에 따르면 제주도내 의사 수는 1953년 47명에서 1993년에는 349명으로 약 7.4배 증가했고, 1994년에는 1년 사이에 424명으로 늘어났다.

의사 1인당 인구수는 1946년에 1만3320명이었으며, 1974년에는 4500명당 1명꼴이었다가 1990년 말에는 2057명, 1993년 말에는 1464명당 1명으로 떨어졌다. 

치과 의사를 제외할 경우 1994년도 의사 1인당 주민 수는 1623명이었다. 그러나,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고는 해도 이는 의사 1인당 670명의 인구를 돌봤던 당시 전국 평균치에 비해 2.4배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급 의료기관의 부재였다. 지금은 암 치료 요법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발달했고, 생존율도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암에 걸린 환자는 무조건 육지부 병원으로 보내던 때였다.

제주도의사회에 따르면 1994년도 제주지역 의료 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제주도민은 연인원 161만1661명으로, 제주도민 1인당 3.1회꼴로 진료를 받았으며, 총 진료비는 385억93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7만5000원이 지출됐다. 

이중 3차 진료를 위해 서울 등 육지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1993년 2만647명에서 1994년에는 4만1154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지출한 의료비만 60억8578만원에 이르러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제주 의료기관에 비해 2.5배 가량 더 높았다.

단순 치료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항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때에 육지부를 수 차례, 내지 수 십차례 오가는 치료 일정은 부담을 가중시켰다. 체류비도 만만치 않았다. 환자와 대동하는 보호자를 최소화해도 가계 부담은 크게 늘었다.

집계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타 지역 의료기관 의존률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굳이 숫자로 열거하지 않아도 그 시대를 살아온 도민들에게서 구전돼 온 여러 사례는 열악한 의료환경을 대변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역 거점 교육기관으로서 제주대학교의 의과대학 신설은 필연적인 지상과제였다.

난항을 겪던 제주대병원 건립과정을 보도한 1996년 11월 28일자 제주일보 기사. 정부의 국고 지원 부당함에 맞서 야당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과정이 기록됐다. 사진=제주대학교병원ⓒ제주의소리

  제주대 의예과 신설-제주의료원 인수 ‘제주의료사 최대 사건’

도민들의 열망 속에서 제주대학교에 의예과가 신설된 것은 1995년 10월이었다. 전년도인 1994년 교육부가 실시한 공모 당시 4개 의과대학이 인가되는 과정에서 제주대가 더 낮은 점수를 받았던 타 학교에 밀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의료계는 물론 정치권, 재계 등이 한 마음이 됐고, 정부 부처와 청와대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1995년 최종적으로 의예과 설립을 인정받았다.

돌이켜보면 의과대학을 인가받는 과정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역력했다. 당시 정부는 의과대학이 신설되면 분명 지역에 대학병원을 지어달라고 할 것이 뻔한데, 국가 재정이 어려우니 대학병원을 지어달라는 말을 하지 말 것을 다짐하는 각서를 작성토록 하면서다.

초대 제주대병원 진료처장으로서 병원신축추진단장을 맡았던 김상림 제주대병원 전 원장(2대, 3대)은 "제주의 인구가 워낙 적으니 중앙 부처에서 겪는 설움이 컸다. 국가 재정이 어려우니 '병원 지어달라는 말을 하지 말라, 도장을 찍어야 허락해주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나. 일단 인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도장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의예과 신설 후 1998년에는 의과대학 신설 역시 차근차근 진행됐지만, 의과대학에 대학병원이 없다는 단점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정작 우수한 인력을 길러내도 현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타 지역을 전전하도록 방치해야 할 위기를 맞게 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IMF 사태를 맞으면서 대학병원 설립의 염원은 더욱 멀어지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방책을 찾은 것이 '제주의료원 인수'였다. 새로 병원을 짓지 못하는 대신 제주의료원을 제주대가 인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 정부 차원에서 나왔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1999년 제주도와 제주대, 제주의료원이 인수 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도민 염원이 모이는 과정에서 1996년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제주대병원 건립을 당론으로 채택한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2월부터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힘이 실렸다. 

상급 교육기관에서 양질의 의료 인력을 길러내고, 그 인력이 그대로 지역사회에 투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안착된, 제주의료사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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