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모두의 이동권을 위해](상) 제주 장애인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현주소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지원센터가 설립된 지 11년째. 아직도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교통약자들은 마음 편히 이동하는데 한계를 느낀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이동권 보장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이동권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국가나 지자체가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기본권인 모두의 이동권을 위해 [제주의소리]가 세 차례에 걸쳐 송년기획으로 다뤄본다. [편집자 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몇 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요. 결국 차량 배차가 안 되면 집에 갈 수 없으니까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 한번 다녀오기도 힘들어 평소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아요.”(장애인 당사자 김동환(가명) 씨 인터뷰 中)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곳곳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 누군가에게는 지나친 사치였고 괴로운 일이었다. 

아침 5시30분부터 시작되는 투석을 받기 위해 새벽 2시에는 눈을 뜨고 콜을 불러야만 겨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들. 누군가와의 약속을 위해 3시간 전부터 늦진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사람들.

제주지역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다섯 사람의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의소리
취재 기자와 만난 장애인 당사자들은 몇 시간 동안 밖에서 추위나 더위와 싸우며 기다려야 하는 이용객들의 불편함을 도정이나 지원센터가 알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하소연했다. 기본적인 이동권 문제에서 늘 소외됐던 이들에게선 마음 편히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제주의소리

# 몇 시간 기다려도 10분 늦으면 ‘쌩’…“코 앞에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어디론가 이동할 수 없는 장애 당사자 김동환(가명) 씨는 최근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 콜을 불렀다. 

집이 옛날 건물이라 1층인 집에서 입구로 이동하기 위해 13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그는 배차를 신청하고 기다리다 근처에 있는 차량이 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챙기고 있던 그때 1층에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았고, 아들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고 있던 순간 차량이 눈앞에서 출발하고 말았다. 그는 멀어져가는 차량을 우두커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10분이 지나면 출발한다는 자체 규정에 따라 시간이 지체되자 코앞에 있는 그를 두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는 3계단만 더 내려가면 입구였기 때문에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김 씨는 “모든 사람이 엘리베이터가 있고 계단이 없는 곳에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기본적으로 나오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무작정 기다려달라는 말이 아니라 전화 한 통화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계단 3개만 내려가면 입구에 도착하는 상황에서 전화 한 번 걸지 않고 10분이 지났다고 가버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것이다. 10분이 지나기 전에 미리 나와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무작정 밖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사정이 있었다.

평소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콜을 부르면 차량이 없어 2~3시간이나 기다린 적도 많았기에 무작정 집 앞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 밖에서 기다리게 되는 일도 많았다.

차량 배차 역시 멀리서 잡히는 경우에는 그나마 제시간에 나갈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코앞에서 잡히는 경우에는 준비하고 내려가는 시간도 부족하다.

이 밖에도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힘겹게 일반 화장실을 이용한 뒤 나와보니 차량이 목발만 실은 채 떠났다거나, 차량 내부 위생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탑승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 제주시→서귀포시 ‘하늘의 별 따기’

신장 장애 당사자인 70대 아버지를 모시는 최혁진(가명) 씨는 서귀포시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시를 넘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귀갓길은 그야말로 고행길이라고 했다.

서귀포지역 내에서 움직일 때나 제주시로 넘어갈 때는 1시간 정도면 차량이 도착해 그나마 괜찮은데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갈 때면 3~4시간 걸릴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치료를 다 받고 나와 지쳐있는 상태의 아버지를 모시고 오랫동안 기다리다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져 결국 어딘가로 옮겨 눕혀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작 다른 사람이 내려준 뒤 아무도 태우지 않고 떠나는 차량은 배정되지 않고, 서귀포에 있는 차량이 배정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꾹 참고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나빠진다고 했다. 관광객을 상대하느라 정작 병원에 가야하는 도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도 했다. 

최 씨는 교통약자가 내는 요금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도내 어딜 가도 최대 1000원밖에 안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원센터 차량을 습관처럼 부른다는 것.  버스요금보다 저렴한 데다 집 앞에 내려주니 수요는 늘 공급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적어도 버스보다는 비용을 더 받도록 해 저상버스 이용률도 높이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으면 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운송수익금이 늘어난다면 차량 1대라도 더 살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도 담겼다.

ⓒ제주의소리
지원센터 차량에 올라타 안전장치를 하고 있는 한 장애인 당사자. 인터뷰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은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발이 되어준 지원센터에 감사하면서도 그동안 이동권을 침해받아 왔기에 제대로 된 운영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것. 어디론가 갈 수 있는 지원센터 차량은 이들만을 위한 '복지'의 개념이 아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이동권'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제주의소리

# “새벽 2시 일어나야 겨우 투석 받아요”

서귀포시 읍면지역에 사는 신장 장애 당사자 양현용(가명) 씨는 투석을 받으러 제주시를 넘어가려면 새벽 2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준비하고 나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지원센터 차량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콜을 부르고 외출 준비를 마친 뒤 꾸벅꾸벅 졸다가 3시30분쯤이 되면 차량이 배차돼 태우러 온다는 것. 차량을 타고 병원에 가면 4시30분쯤 되는데 정작 병원은 5시가 돼야 문을 열기 때문에 문 밖에서 또 기다림의 연속이다. 

투석을 받기 전도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끝난 뒤에도 고통은 이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을 기다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 장시간 투석을 받느라 몸도 지친 데다 정신적으로 괴로운 상태에서 1시간 넘게 밖에서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겨우 지원센터 차량을 타고 집 앞에 도착해 골목을 걸어 들어가는 사이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투석은 예약도 안되는 데다 근처 병원도 없어 제주시로 가야 하는데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는 의료취약지 주민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서귀포시가 추진하는 민관협력의원 유치사업에 투석이 가능한 병원도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지원센터 차량을 타고 다니기 힘드니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지원센터 차량과 임차택시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체감할 수 없다고 했다. 돈을 더 내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 견제, 감시기구의 부재…모니터링 필요하다

제주시에 거주하는 박광진(가명) 씨는 지원센터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없어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특별자치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 조례에 따르면 이동지원센터는 제주도지사가 설치, 운영하거나 위탁 운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박 씨는 조례에 규정된 것처럼 지원센터 운영.관리를 제주도가 맡아야 하지만 민원을 넣어도 지원센터에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 같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지원센터로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하기도 하지만 괜히 불이익만 받는 것 같아 그마저도 포기하게 됐다. 

어떨 때는 장애인 당사자 모임을 끝낸 뒤 다함께 콜을 불렀지만 가장 먼저 부른 자신에게는 차량이 배정되지 않고, 마지막에 신청한 당사자에게 콜이 먼저 배정될 때도 있었다고 했다. 배차가 신청 순서대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날 김 씨는 가장 늦게 가야만 했다.

그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읍면지역에 가야하는데 배정이 안 된다고 말하면 시내부터 배정한다고 했다가, 시내에 있을 때 배정이 안 된다고 따져 물으면 순서대로 배차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배차가 도대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를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지원센터를 감시하는 곳이 없으니 운영에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 장애인단체나 전문업체를 선정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면 좋겠다”며 “도청은 관리기능을 잃은 지 오래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원센터 자체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는 이용객들의 불편함을 도정이나 지원센터가 알고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호소였다. 이런 제도가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는 읍소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 지원센터 차량 직접 타 봐야…공단 설립도 고려

제주시에 사는 고아영(가명) 씨는 사람들이 지원센터 차량을 직접 부르고 이용해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뙤약볕이 내리쬐거나 칼바람이 부는 환경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려보며 고충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문제를 지적하고 목소리를 높여도 반응하는 것은 그때 뿐, 간담회를 열고 무언가 변화할 것 같았지만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어 답답하다고 했다. 

고 씨는 “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있는 ‘센터에 바란다’ 코너에 글을 올려도 답변 중이라는 현황만 수개월째다. 그만큼 이용객 목소리에 대한 피드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2월24일 오후 4시 기준 지난 7월26일께 올라온 게시글에는 5개월이 다되어가는데도 답변이 달리지 않은 상태다. 

그는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를 위탁하지 말고 공단을 설립하는 등 제주도가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제주도가 직접 관리하면서 제대로 된 운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어 “자동 배차 시스템이라고 하면서 정작 이용 당사자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차고지마다 차량이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운행되는지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전혀 모른다”며 “당사자들이 어떻게 배차되는지 몰라 답답해하고 항의도 많이 하는데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또 도민들이 이용하기도 부족한 차량이 관광객에게 배정돼 차량 부족 문제가 심화된다거나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들도 특장차를 이용하도록해 정작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은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더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