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66) 사람 살리자고 만든 법 취지 살려야

사진=픽사베이.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람을 살리자고 만든 법이다. 사람을 살리자고 만든 법에 시행 시기와 적용 범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사진=픽사베이.

광주에서 공사 중이었던 39층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고 그 안에서 실종된 노동자를 찾지 못한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다. 평택의 물류창고 신축공사현장에서 화재진압 중 화마에 휩싸인 소방관 3명도 가족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에서도 새해벽두부터 건설노동자의 사망사고 비보가 들려온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앞둔 지금 시점에도 노동자의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반복되는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제정되어 올해 1월 27일,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오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언론이 뜨겁다. 각 기관들은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관리체계를 준비 했다며 앞 다투어 홍보한다. 지자체의 장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제주도·제주도교육청을 비롯한 지자체에서도 관련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연일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몇몇 기업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회장님”이 직접 처벌을 받지 않도록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 꼼수를 연구하며 찾아내기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처벌만을 위한 법은 아니다. 법은“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여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관리체계 구축 의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안전 관리를 위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게 의무 위반 시의 강력한 처벌을 규정하여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최대한 예방을 도모하는 목적의 법이다.

결국 외형상 처벌법이지만 제정의 취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그간 노동 현장에서 목숨 바쳐 일하다가 돌아오지 못한 산재사망노동자가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작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산재사망유가족과 노동자의 절규를 잊어서는 안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일하다가 허망하게 죽지 않게, 시민이 활동하다 안전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본연의 취지다.

노동자 사망사고의 원인 “재래식 사고”

2020년을 기준, 산재사망노동자의 수는 2062명이다. 그 중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산재노동자가 882명이다. 그 외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 사고다. 사고로 인한 사망의 유형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반복되는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 2020년 기준 사고의 유형은 떨어짐(328명), 끼임(98명), 부딪힘(72명), 물체에 맞음(71명), 깔림․뒤집힘(64명)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고 유형별 순위는 매년 반복되어 왔다. 

소위 “재래식 사고”라고 불린다. 과거부터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어 오는 떨어짐․끼임과 같은 사고를 “재래식 사고”로 명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털의 힘을 빌어보니 최소 1992년부터 떨어짐과 끼임사고를 “재래식사고”로 표현하고 있는 기사가 검색 된다. 30년 전의 재래식 사고가 2022년 현재에도 재래식 사고로 표현되며 비극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2017년과 2018년, 도내에서 연이어 발생했었던 ㈜제이크리에이션과 삼다수의 사고도 사업장은 다르지만 똑같은 원인이었다. 기계가 멈춰있는 상태에서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불량을 제거하다가 발생한 끼임 사고였다. 경영책임자가 기계의 오작동을 몇 개월간 방치해 온 것도 똑같았고 현장에서 임시방편으로 작업을 지시했다는 것도 닮아있었다. 

노동자의 죽음의 유형이 닮아있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어떤 상황에서  목숨이 위태로운지가 파악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재래식 사고로 불리며 사망률이 줄지 않은 이유는 그 위험한 현장이 계속 방치되어도 아무도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브레이크가 되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사업주 등이 스스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해당 사업주가 과거의 사고 유형을 분석하여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를 위해 안전관리를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 보건 장치를 구비하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사업장에 조직․인력 등을 형식적으로 갖추는 것만으로 사업주의 의무를 이행한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관련 사업에 대한 안전보건에 관한 법률․규칙 등에 따라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없애기 위한 안전보건조치를 하는 등의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이행되는 구체적인 과정까지 요구된다. 

대형사고는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하나의 대형사고가 있기까지 여러 차례의 전조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 전조현상을 방치한 결과 하나의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본래의 법 취지에 맞게 일상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사고의 유형을 분석하고 개선한다면 무참하게 반복되는 산재사망사고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니, 브레이크가 되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노동자 참여가 중요 

우리의 일상은 서로의 노동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 주변의 노동자는 다양한 일을 한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작업과정에서 구체적인 위험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산업안전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경우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자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일터에서 위험하고 유해한 요소가 무엇인지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노동자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작은 사업장이라고 간과하지 말아야 

최근 도내 청소년 아르바이트와 관련한 상담을 진행했다. 고깃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청소년은 고기를 굽거나 불판을 교체할 때 뜨거워서 손을 데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사장님이 사전에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연고라도 바를 수 있도록 비치해 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없어서 알바 입장에서는 황당했다고 한다. 우리 사업장이 작은 사업장이라고 해서 위험요소를 그냥 두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위험은 작은 사업장에서 더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법은 사람을 살리자고 만든 법이다. 사람을 살리자고 만든 법에 시행 시기와 적용 범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제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죽음을 함께 막아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법 적용이 되지 않는 작은 사업장이더라도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위험 요소를 사전에 예방하여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어보자.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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