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극장 창작 뮤지컬 ‘만덕상회’

제주극장의 창작 뮤지컬 '만덕상회'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제주극장의 창작 뮤지컬 '만덕상회'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지난해 11월 제주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사회적협동조합 제주극장의 ‘댄스컬 만덕상회’가 해가 바뀌어 6월 11일부터 12일까지 다시 무대에 올랐다.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는데 장르가 댄스컬에서 뮤지컬로 바뀌었다. 

‘뮤지컬’ 만덕상회는 제주의 실존 인물 김만덕과 신화적 세계관을 연결시킨 기존 이야기 틀에 탄탄한 음악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다만, 개성 뚜렷한 인물들과 줄거리를 매끄럽게 풀어내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여자, 종의 신분, 기녀, 섬 사람’이라는 네 가지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큰 덕을 쌓은 김만덕(배우 서미정), 그는 사후 소별왕·대별왕의 축복을 받아 ‘차르르상회’로 향한다. 이곳은 신들을 위한 옷을 제작하는 특별한 장소로 인간과 신들의 세계, 중간에 위치해 있다.

만덕은 여기서 차르르(고귀환), 털털(안유현), 삭삭(전여경), 칙칙(이혜진)과 함께 옷을 만든다. 그리고 특유의 적극성으로 고비를 넘기면서 동료들을 환생시키고, 차르르상회가 아닌 ‘만덕상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초연 만덕상회는 무용 전공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춤을 주된 표현으로 내세우는 ‘댄스컬’이었다. 이번 만덕상회는 춤 보다는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비중이 커진 ‘뮤지컬’이다. 새로운 역할에도 ‘생명’을 우선시하겠다는 만덕의 각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차르르상회 4인의 과거, 물숨을 들이마시고 이승을 떠난 해녀 엄마와 딸의 이별 등 감성적인 장면마다 음악은 감정을 한껏 증폭시켰다. 특히, 작품 속 20여곡 가운데는 기승전결을 갖추고 그 안에서 말미에 힘을 끌어올리는 특징의 곡들을 제법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대사나 노래 위주로 진행하는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뒤엉킨 배경음 안에서 한복을 갖춰 입고 춤추는 ‘신’ 역할의 중년 외국인, 해녀의 독무, 소품으로 쓰인 커다란 종이배, 그 배를 들고 이동하는 네 명의 존재들 등 자세한 설명 대신 무언가를 연상케 하는 상징적 표현들이 비중 있게 사용된다.

아마도 이선재 각색 겸 연출이 최근 몇 년 사이 퍼포먼스를 비롯해, 여러 장르를 융합한 복합 예술 창작에 참여한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신’ 역할을 맡은 미겔 까마레로(Miguel Camarero)는 2019년부터 이선재 연출과 함께 호흡을 맞춰온 스페인 출신 예술가다.

이 같은 연출은 색다른 분위기에, 작품 소재가 지닌 신비한 매력을 가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객 입장에서는 충분한 공감됐다고 확실히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만덕을 제외한 네 명이 어떤 이유로 차르르상회에 모였는지, 왜 신들의 옷은 전부 아기 옷 크기인지, 환생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관객은 자세히 알고 싶지만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다. 저마다 독특한 사연을 지닌 차르르상회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는 한 곡 씩 차례로 부르는 짧은 노래와 작품 말미가 돼서 만덕이 간단히 전하는 설명뿐이다. 차르르는 강림도령, 털털은 강림도령 부인, 삭삭은 지장아기씨, 칙칙은 과양생이라는 자료집 소개는 무색하게 다가온다.

차르르상회 직원들은 해녀와 해녀의 딸을 위해 자신들의 환생을 포기한다. 만덕은 동료들을 위해 신과 흥정을 벌인 끝에 환생을 얻어낸다. 중요한 분기점임에도 만덕과 신 사이의 짧은 대화만으로 끝나며 다소 맥없이 풀려버리는 느낌이다. 곧이어 만덕이 동료들의 환생 이야기를 마치 해설하듯 전하면서 급히 매듭짓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찡한 감동을 선사한 해녀 에피소드 만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기본 등장인물에게도 더 공을 들였으면 어떨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만약 이 같은 짜임새가 잘 갖춰졌다면 위에서 언급한 복합적 예술 요소들이 더욱 빛났겠지만, 안타깝게도 체감은 반대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객석 앞에서 진행한 타악기 포함 라이브 연주는 긍정적 효과보다 노래 가사를 덮는 식의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와 아쉬움을 줬다.

앞서 말한 대로 ‘만덕상회’는 댄스컬로 시작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건입동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출발했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본래 계획대로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고심 끝에 선택한 방법이 바로 뮤지컬로의 장르 전환이다. 예상 밖의 노선 수정이었기에 적지 않은 비용을 제주극장 사회적협동조합이 새로 충당했다. 제주 예술인들의 노력으로 탄생시킨 콘텐츠를 이대로 사장시킬 수 없다는 의지와 비애가 담겨있겠다.

달라진 여건에 제작 환경 역시 녹록치 않았다. 의상·무대·소품 등에서 많은 타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십시일반 자신의 몫을 내려놓은 제작진의 수고 역시 전해 들었다. 여러 부분을 지적했지만, 그 안에서 가능한 무대를 완성시킨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냉정히 말해 ‘만덕상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뮤지컬로 다시 공연을 올릴지, 혹은 또 다른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설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인간과 신 사이 ‘중간계’라는 설정, 제주역사와 제주신화에서 뽑아낸 각기 다른 매력의 등장인물들, 이 두 가지 요소 안에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상상의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만덕상회’ 원석이 지닌 가치는 온전하다. 옷감을 정성껏 재단하는 만덕이 다시 관객과 만나는 날을 기대해본다.

'만덕상회'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만덕상회'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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