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50억 무죄’ 단상…결국은 상식의 문제

당대 최고 권력인 재상까지도 거침없이 날려버린, '서달 사건'에 관한 세종의 판결은, 최근 '50억 뇌물 무죄' 판결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은 우리 사회에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다행스럽게도 제주4.3 재심에 관한 한 상식적인 판결이 이뤄지고 있어 4.3의 완전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당대 최고 권력인 재상까지도 거침없이 날려버린, '서달 사건'에 관한 세종의 판결은, 최근 '50억 뇌물 무죄' 판결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은 우리 사회에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다행스럽게도 제주4.3 재심에 관한 한 상식적인 판결이 이뤄지고 있어 4.3의 완전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명재상(名宰相)으로 이름을 날린 황희에게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 하나 있었다. 청렴 강직한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하나의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조선시대 최악의 권력형 비리, 이른바 ‘서달 사건’이다.

서달은 황희의 사위. 개차반이라고 할까. 전형적인 금수저였던 서달은, 영화 ‘베테랑’의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떠올릴법한 갑질 사태의 장본인이다. 

길을 가다가 아전이 자신을 몰라봤다고 하인들을 시켜 잡아오게 했고, 그 과정에서 항의하는 또다른 아전에게 매질을 가하게 해 죽게 만들었다. 악질적이긴 하나, 여기까지는 단순 폭행치사로 볼 수 있다.

사실 대로만 처리했으면 될 일인데, 고관대작들이 대거 개입하면서 사건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회유와 협박, 은폐가 자행됐다. 결국 사건은 하인 한 명이 다 뒤집어쓰는 것으로 조작됐다. 하인의 과잉충성이 빚은 비극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서달의 아버지 서선(형조판서)은 물론 황희와 함께 청백리의 상징으로 통하던 맹사성(우의정)까지, 조작에 가담한 관리가 자그마치 수십명에 달했다.

황희의 가담 정도에 관해선 ‘은폐 주도’, ‘묵인’ 등으로 의견이 갈리나, 친인척 만큼은 철저히 챙겼다는 일화를 접하게 되면 시쳇말로 확 깬다. 조선초 24년 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이라는 황희 조차도 가문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세종이다. 사건 보고서를 접한 세종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직접 의금부에 대대적인 재조사를 명하면서 전모가 밝혀졌다.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은 파면되었고-얼마없어 복직은 됐지만-곤장을 맞거나 유배를 간 벼슬아치가 부지기수였다.  

엄격한 계급사회인데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고관대작들이 한꺼번에 철퇴를 맞은 것은 그때까지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오늘날에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판결이 당시엔 세종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는지 모른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건 조작과 잘못된 판결은 적지않았다)

# 일찌감치 본질 꿰뚫은 곽상도 

이쯤되면 뭘 말하려는지 짐작할 것이다. 

‘곽상도 뇌물 무죄’에 대한 들끓는 민심은 국민 정서, 일반의 상식과는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비불외곡(臂不外曲)의 문제가 아니다. 인지상정 차원으로 접근하면 본질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수 국민은 이번 판결을 기득권 혹은 엘리트 동맹(카르텔)의 결과로 보고 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홍준표 대구시장 조차도 봐주기 수사, 봐주기 판결 의혹을 제기했다. 

“50억원을 30대 초반 아들이 5년인가 일하고 퇴직금으로 받았다는데 그 아들 보고 그 엄청난 돈을 주었을까”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50억원이 뇌물은 아니라면서도 정작 그 돈의 성격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했다. 

“검사의 아들은 죄를 저질러도 무죄” “법은 만인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무겁게 다가온다. “뇌물은 아들에게 주면 된다”는 조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이러니다. 이미 3년여 전에, 곽상도 전 의원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장학금 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다. 2019년 10월15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렸다.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교육위 위원이었던 곽 전 의원은 장학금 지급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해당 대학 총장에게 다음과 같이 몰아부쳤다. 

“이건 부모를 보고 부모 때문에 돈이 나간 거다, 저희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총장님 동의하십니까?”

당시 곽 전 의원도 ‘상식’(?)을 들이대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부르댔던 조 전 장관의 딸 장학금 600만원을, 법원은 사실상 뇌물(청탁금지법 위반)로 판단했다.  50억 무죄 판결이 나오기 5일 전이다. 

# 4.3해결, 제주에선 法-檢도 ‘한뜻’

“재심은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절차가 아니다. 법에 따라서 법대로 판단하는 절차다”

현직 판사로서 표현을 달리했을 뿐, 이 발언의 당사자도 상식의 문제를 짚었다고 본다. 재심을 통해 제주4.3 피해자 1191명의 명예 회복에 기여한 장찬수 부장판사 얘기다. 

며칠 후 근무지를 옮기는 장 부장판사는 “(과거 재판이)정당한 재판이었다면 재심이 필요했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곧 과거엔 상식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통탄할 일이었으나, 수십년간 입도 벙긋 못했다. ‘법대로’는 요원했다. 4.3재심 첫 선고가 2019년 1월에 났으니, 그 상식이 통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주4.3에 관한 한 검찰도 지금은 상식대로 움직이고 있다. 바야흐로 4.3해결에 너도나도 지혜를 모으는게 제주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2021년 11월부터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을 이끈 이제관 부장검사는 직권 재심 업무에 진정성을 보여 4.3단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후임인 강종헌 부장검사도 “최대한 많은 4.3피해자가 구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10년전 쯤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세종의 명판결’을 기대하는게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판결이 명판결로 조명되는 세상도 좋은 세상은 아니다. 

4.3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마당에 “4.3사건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따위의 망언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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