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 人터뷰 ] 3년간 4.3재심 담당 장찬수 부장판사 이임
“법으로 억울함 풀어준 것 같아 기뻐…진실 규명 큰 진전”

제주4.3 피해자 1000여명에 ‘무죄’ 선물 안긴 장찬수 판사 “폭삭 속앗수다”

75년 전 일어난 4.3은 제주를 참혹한 현장으로 만들었다. 3년간의 제주 생활을 마치고 제주를 떠나는 법관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참 좋다. 공부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제주가 학살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제주4.3과 맺은 인연을 소개했다. 

제주의 풍광이 좋다는 법관은 2020년 2월 제주지방법원 근무를 시작해 오는 20일자로 광주지방법원으로 떠난다. 3년동안 그가 맡은 재판부에서 ‘무죄’ 선고로 명예가 회복된 제주4.3 피해자만 1191명(여러차례 재심을 받은 피해자는 1명으로 집계)에 이른다. 

곧 제주를 떠나는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재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곧 제주를 떠나는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재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4.3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줘 유족과 관련 단체 등이 “4.3만큼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하는 장찬수(54) 부장판사의 얘기다. 장 부장판사는 7일 오전 10시 제주지방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제주의소리]와 인터뷰에서 “4.3 재심은 법 절차에 따라 법대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2020년 2월 제주지법에 전보된 장 부장판사는 제2형사부 재판장으로 2년간 일했다. 살인 등 강력 범죄를 담당하는 재판부지만, 이따금씩 고령의 노인들이 제2형사부 법정에서 눈물을 훔쳤다. 4.3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접수한 재심 사건이다. 

4.3 관련 재심 사건 첫 선고는 2019년 1월 시작됐다. 당시 제2형사부 제갈창 부장판사는 재심 청구인 18명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소기각은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해 무효일 경우 재판을 끝내는 절차다. 기소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미로, 사실상 무죄 선고와 다름 없었다.

후임인 장 부장판사는 2020년 12월 첫 4.3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고령인 4.3 피해자와 유족들이 법률 용어인 ‘공소기각’에 익숙하지 않아 ‘무죄’라는 단어 자체가 유족들에게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점이 반영됐다. 

2021년 3월 16일에는 총 20개에 달하는 재심 사건 피고인 33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넘게 진행된 재판에서 장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명예가 회복됐다는 점을 알렸다. 

그렇게 4.3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이 이뤄졌다. 4.3 관련 재심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제주지법은 4.3 재심 사건을 전담하는 제4형사부(제4-1형사부, 제4-2형사부)를 신설했다. 

신설된 제4형사부 초대 재판장 자리도 장 부장판사가 맡았다. 

제2형사부 2년과 제4형사부 1년까지 총 3년간 장 부장판사는 2023년 2월7일 기준 첫 공소기각 18명을 제외한 모든 4.3 재심 사건을 담당했다. 장 부장판사를 통해 명예가 회복된 4.3 피해자만 총 1191명에 달한다.  

장 부장판사는 “4.3은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발생했다. 이념적으로 4.3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재심은 법 절차에 따라 법대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4.3 진상규명을 위한 수십년의 노력 끝내 결실을 맺은 것이 4.3 재심이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연대했던 그 정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 유족이었다면 소외·핍박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내가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해 제주 근무를 희망해 제주로 오게 됐다. 제주의 바다와 중산간, 산간 모두 풍광이 좋다. 올레길도 자주 걸었는데, 제주를 공부 할수록 대부분 70여년전 학살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상할 수도 없는 피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관광이나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 제주를 떠나는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재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곧 제주를 떠나는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재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다음은 장찬수 부장판사 인터뷰 전문. 

문) 제주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대부분의 4.3 재심 사건을 담당했다. 소회는?

처음 제주에 올때는 4.3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했다. 4.3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제주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제주에 오기 직전에 300명이 넘는 재심 사건이 접수돼 처음에는 막막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법정에서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4.3을 알기 위해 4.3진상조사보고서를 읽었다. 또 4.3은 말한다 등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유족들이 가슴 아픈 사연을 말할 때마다 내가 4.3 유족이었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70년이 넘는 세월이다. 소외와 핍박의 세월을 살 수 있었을까. 

앞으로도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이 필요한 4.3 피해자가 3000명이 넘는다. 재심 업무를 더 담당할 수 없어 아쉽다. 후임 재판장이 잘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문) 4.3 재심 사건을 다루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유족들의 발언들이 모두 기억난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한 할머니. 4.3이 발발해 서울에 유학갔던 오빠들이 제주에 왔는데, 4.3으로 희생됐다고 했다. 또 군경에 끌려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새벽마다 기도했다는 유족도 있다. 

특히 300명이 넘는 재심 사건이 기억난다. 20개에 달하는 재심 사건을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서 진행했다. 법적으로 그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줘 기억에 남는다. 

문) 4.3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당시 재판에 대한 기록이 온전히 보존돼 있지 않아 세세한 쟁점에 대한 판단이 어려웠다. 재심은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절차가 아니다. 법에 따라서 법대로 판단하는 절차다.

제주4.3이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이념 대립이 겹쳐 아직도 이념으로 4.3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시각을 극복해 치우치지 않고 법대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법에 따른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재심을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후임 재판부도 고민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곧 제주를 떠나는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재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곧 제주를 떠나는 장찬수 부장판사가 4.3 재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문) 법조인으로서 제주4.3특별법에 명시된 재심 관련 조항 중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4.3특별법 전면 개정으로 희생자 명예회복에 큰 진전을 이뤘다. 다만, 희생자가 아닌 4.3 피해자에 대한 재심 관할 재판부에 대한 모호한 규정으로 불필요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 당시 재판 인력이 부족해 일부가 다른 지역에서 재판을 받았다. 4.3은 제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4.3특별법 취지에 따라 제주지법이 4.3 재심을 모두 담당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일반재판 피해자에 대한 직권재심을 명시하는 입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4.3 피해자에 대한 재심이 문제다. 4.3 때 학살당해 유족 자체가 남아있지 않은 피해자도 있다. 유족이 없어 희생자 신청을 못하는 사례인데,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필요하지 않겠나.

문) 4.3 재심 법정에서 연대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민주화 이후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수십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4.3 재심으로 이어졌다. 앞으로도 연대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취지다. 

문) 제주에서 애착가는 것은. 

아내가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해 제주지법 근무를 지원했다. 제주의 풍광이 제일 좋다. 바다와 중산간 모두 좋다. 올레길도 자주 걷는데 특별한 업무를 맡다보니 70여년 전에 모두 학살터였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에 와 풍광에 반하는데, 상상할 수도 없는 피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관광이나 교육이 이뤄졌으면 한다. 

문)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유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피하지는 않겠다. 4.3에 대해 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4.3 때 무장대의 활동도 분명히 있었다. 무장대 습격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상당하다.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재심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법에서 정한 절차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 재심이 이뤄지고 있다. 정당한 재판이었다면 재심이 필요했겠나. 이념이나 무장대를 덧씌우는 (검찰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문) 제주4.3 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주에는 동네마다 같은 날 제사하는 집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은 일 하면서 제각각인가'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모두를 위해 함께 가야 한다. 폭삭 속앗수다.(강조된 수고했다는 의미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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