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예산 문제를 두고 강대강으로 충돌하며 그 피해가 도민사회에 전가될 지 우려된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제주도의회와 20년만에 민주당 계열 도정이 들어서면서 기대했던 협치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제주도의회는 16일 각 상임위원회별로 제주도가 제출한 '2023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의 계수조정을 마무리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양경호)에 돌입했다.

행정자치위원회는 옛 송악산유원지 부지 내 사유지 매입 예산 151억원 등 총 156억8000만원을 삭감하고 전액 내부유보금으로 돌렸다. 복지안전위원회는 오영훈 도정이 전국 최초로 도입하려 했던 아동건강체험활동비 39억6800만원 등 총 71억2100만원을 삭감했다.

문화관광체육위원회는 문화예술재단 기관운영 출연금 5억원 등 59억5000만원을 삭감해 내부유보금으로 전환했다. 환경도시위원회는 제주대학교 입구 버스회차지 매입 예산 75억1400만원 등 109억4000만원을 삭감했다. 

전반적으로 각 상임위는 삭감은 하되 증액은 하지 않는 기조를 이어갔다. 농수축경제위원회만이 34억원을 감액하면서 1차산업 분야에 필요하다고 판단된 예산 7억원을 증액했다.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삭감 조정된 예산은 430억9100만원에 달했다. 올해 본예산 대비 4128억원이 늘어난 이번 추경안의 10% 이상이 퇴짜를 맞은 결과다. 

이는 예산편성권을 둘러싼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충돌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이번 추경안 편성 과정에서 지난해 말 의회가 증액 요구한 본예산 사업비 다수를 삭감 처리했다. 보조금 심의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단순 인건비 등은 지원이 불가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의회는 각 지역구 민원을 고려한 사업도 반영되지 않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역 민의를 반영한 예산까지 제주도가 일일이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이다.

특히 제주도의회가 옛 송악산유원지 부지 매입건을 심사 보류한 것과 관련, 제주도가 이례적인 언론 브리핑으로 맞선 것이 화를 키웠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15일 주재한 도정현안 회의에서 "의회에서 설명이 이뤄진 동의안이 보류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제주도 역시 "심사보류 결정에 따라 향후 파장이 커질 것"이라는 에둘러 경고했다.

이를 두고 의회 안팎에서는 물밑에서 조정돼야할 사안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오히려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양경호 예결위원장은 16일 오전 심사에 앞서 "이번 추경안 편성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와의 소통이 부재했다"며 "도의회 심의·의결 과정을 압박해 도의회 고유 권한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의회의 기능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양 위원장은 "대의기관인 의회를 존중하고 소통해 나가겠다는 제주도정의 약속은 말 뿐이다. 양 기관의 갈등은 결국 도민들에게 그 고통이 남겨지게 될 뿐"이라며 "도의회를 경시하고, 도의회의 역할과 권한을 존중하지 않는 제주도정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성토했다.

일련의 흐름은 2015년 새해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민선6기 원희룡 제주도정과 제10대 제주도의회 간 불거진 예산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원희룡 전 지사는 의회의 증액 요구를 '잘못된 관행'이라고 규정하며 새해 예산안을 '부동의'했고, 의회는 증액 없는 '무더기 삭감'으로 응수하며 강대강으로 맞섰다.

의회의 '밀실 증액'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제주도와, 제주도의 '부실 편성'을 보완하겠다는 의회의 논리는 팽팽하게 부딪혔고, 결국 예산안의 1682억원이 삭감되는 초유의 사태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관련 제주도의회 A의원은 "원희룡 전 지사가 재임 시절 여러 성과를 냈음에도 현재 제주사회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는 것은 협치가 실종됐기 때문이었다"며 "이번 예산안에 대한 제주도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대화와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풀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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