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 명분 일주일 당겨 추경 의회 열었지만 소통부족, 도지사 공약 송악산 반목

19일 밤 늦게 열린 제주도의회 제416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제주의소리
19일 밤 늦게 열린 제주도의회 제416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제주의소리

민생경제 활력 추경안으로 명명된 제1회 추경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제주에서 실종됐다.

제1회 추경예산안을 놓고 이틀 동안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제주도가 증액 예산안에 대해 건건이 동의-부동의 의견을 내겠다고 밝히자, 결국 제주도의회가 '심사보류' 카드로 맞섰다.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양경호 의원)는 19일 밤 9시40분 제4차 회의를 속개하고 제주도가 제출한 2023년도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과 기금에 대해 '심사보류' 결정을 내렸다.

양경호 위원장은 "이번 추경에 대해 제주도는 가용재원을 총동원한 민생경제 활력 추경안이라고 하지만 민생경제와 밀접한 읍면동 예산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집행부의 소통부족 등을 이유로 심사보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결위원들이 동의하면서 1분만에 만장일치로 제주도 추경예산안은 심사 보류됐다. 

이어서 열린 제2차 본회의에서 김경학 의장은 제416회 임시회 폐회사를 통해 "세번의 본회의 일정 변경이 있었지만 끝내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해 원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안타깝다"며 "추경안이 심사 보류된 것에 대해 도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김 의장은 "앞으로 더 소통하며 지혜를 모아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제416회 임시회는 당초 5월16일부터 26일까지 11일간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주도가 어려운 민생경제를 위해 추경예산을 서둘러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회기가 일주일 앞당겨졌다.

제주도는 1회 추경예산안을 4128억원 규모로 편성, 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재난이나 경기침체로 심각한 재정난에 대비해 적금처럼 모아 둔 재정안정화 기금의 50%인 1688억원을 추경안에 편성했다.

이번 추경안 편성과 관련해 제주도는 민생경제 활력,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서민경제 어려움을 위한 '민생 추경'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추경예산안을 받아든 의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 지난해 연말 확정된 새해 본예산안 중 오영훈 지사가 부동의 또는 조건부 동의 의견을 낸 사업들 대부분 이번 추경안에는 '삭감' 편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도지사가 동의한 것은 보조금심의위원회에 상정하지 않았지만 부동의한 것과 조건부 동의한 건에 대해서는 보조금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19일 오후 도의회 본관 지하 1층에서 전체 의원 간담회를 갖고 있다.
19일 오후 도의회 본관 지하 1층에서 전체 의원 간담회를 갖고 있다.

반면 도의회는 의회의 예산심의 의결권을 침해했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게다가 도의원들이 각 지역구 민원을 고려해 요청한 읍면동과 행정시 사업예산도 일부 반영되지 않아 의회 내부에서는 ‘제주도 본청 추경’, '오영훈 지사 공약 추경'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 같은 상황은 상임위원회별로 진행된 예비심사 계수조정 결과로 나타났다. 교육위원회를 제외한 5개 상임위원회는 민생예산과 관련이 없는 예산 430억원을 삭감했다. 

행정자치위원회는 송악산 유원지 사유지 매입(중국자본 신해원) 공유재산관리계획안 2건을 심사보류했고, 추경예산안 151억원도 삭감시켰다.

보건복지안전위원회는 전국 최초로 만8~9세 아동들에게 월 5만원씩 지급하는 아동건강체험활동비 53억원, 환경도시위원회는 제주대 버스회차지 매입 예산 88억원, 문화관광체육위원회는 중화권 홍보마케팅 7억원과 무오법정사 항일운동 다큐제작 3억원 등 59억원을 삭감했다. 

다만, 관행처럼 진행됐던 '삭감후 증액-신규 편성' 대신 삭감된 예산 대부분을 내부 유보금으로 돌렸다.

제주도와 의회가 결정적으로 반목하게 된 계기는 송악산 사유지 매입 문제였다.

행정자치위원회가 관련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심사 보류하자, 오영훈 지사는 15일 도정공유현안 회의에서 "의회에서 설명이 이뤄진 동의안이 보류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곧바로 변덕승 관광교류국장은 브리핑을 통해 "심사보류 결정에 따라 향후 파장이 커질 것"이라는 의회를 겨냥한 발언이 예산전쟁의 기폭제가 됐다. 

16일 양경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대의기관인 의회를 존중하고 소통해 나가겠다는 제주도정의 약속은 말뿐이었다. 5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될 송악산 유원지 부지 매입 관련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의 심사보류 결정에 대해 이례적인 브리핑까지 하며 심의의결 과정을 압박해 도의회 고유권한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의회의 기능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현지홍 부위원장은 "변덕승 국장의 브리핑 내용을 들으며, 제주도가 중국자본 대변인인지 모르겠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예결위 심사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김희현 정무부지사와 허문정 기조실장이 뒤늦게 상임위원장과 의원들을 만나며 예산 살리기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제주도는 도정 운영을 위해 송악유원지 부지 내 사유지(중국투자자 소유) 매입비와 '아동건강체험활동비', 제주대 버스회차지 매입, 제주국제조각페스타, 서귀포시종합사회복지관 위탁사업비 등을 원안대로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추경예산안 파국을 막기 위해 제주도의회는 예결위가 차수 변경까지 하며 계수조정을 미뤘고, 2차 본회의도 당초 2시에서 4시, 6시, 10시로 3차례 늦추며 막판 합의에 나섰다.

제주도가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부대조건을 달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아 도의회에 제출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던 예산 갈등이 봉합 수순으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제주도 역시 행정시나 읍면동 예산 증액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추경예산안의 극적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제주도의회는 19일 오후 5시30분 전체 의원간담회를 열고, 추경예산안 처리와 관련한 의원들의 최종 의견을 수렴했다.

하지만 제주도가 의회에 의원 예산증액 사업목록을 제출해 달라고 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다. 의원들도 '부결' 또는 '심사보류'해야 하다는 의견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예산증액 사업목록 제출은 사실상 집행부가 사업 건건별로 동의나 부동의 의견을 내겠다는 것으로, 막판 대타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했던 의회의 자존심을 긁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양경호 예결위원장은 밤 8시50분께 김경학 의장과 통화를 통해 '심사보류'로 가닥을 잡았고, 9시40분 예결위 4차 회의를 속개해 1분만에 '심사보류' 결정을 내렸다. 

일부 의원들은 "애초에 상임위 안대로 민생예산을 제외한 430억원 삭감하는 것으로 수정 의결하거나, 아예 부결시켰어야 했다"며 "예결위가 집행부에 끌려다니면서 명분을 잃어버렸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제주도 역시 추경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 소통없이 일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협치 실종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민생경제 추경을 일주일 앞당기려고 했지만 결국 추경안은 6월13일부터 시작되는 제417회 제1차 정례회에서 재 논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간 예산갈등으로 민생추경만 한 달 더 늦춰버린 셈이 됐다. 민생도, 도민도, 정치도, 승자도 없는 패자만 남은 예산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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