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

김시종 시인(사진 왼쪽)과 김석범 작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김시종 시인(사진 왼쪽)과 김석범 작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재일제주인 디아스포라의 상징과도 같은 김석범과 김시종, 두 작가의 문학세계를 통해 제주4.3을 이해하고 4.3문학의 이해와 가능성을 조망하기 위한 국제문학 포럼이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4.3 대하소설 ‘화산도’를 펴내고 제1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제주4.3의 진실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해온 재일제주인 김석범, 재일제주인의 정체성으로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일본 문단의 거장 김시종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다.

이날 직접 포럼을 찾은 김시종 시인은 “불온한 사상의 실제를 살펴본다는 유식자들의 모임이라는데 어째서인지 제 마음은 언제 없이 포근하고 안온하다”며 “미더운 고향 벗들이 같이한다는 신뢰가 있는 까닭인지 모르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나를 따라, 해를 따라 깊어져 가는 고향 제주의 그리움, 그 품 안에 안겨있다는 안도감, 어떤 꾸지람을 하든 날카로운 추궁을 하든 해변가에서 소리 짓는 물결을 넘는 소리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또 “부모님 생애를 잘라낸 4.3이라는 생지옥 재앙, 자기 연명을 위해 그 와중에 혼자 도피한 비겁한 사나이 김시종. 그자에게 이리도 너그럽고 따사로운 고향이다”라며 울먹인 뒤 “다시 생각을 해보면 안온히 지낼 수 없는 처지이자 인생이었다”라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세계문학으로서의 ‘재일’조선인 문학과 제주4.3

이번 포럼 기조발표에 나선 김재용 원광대학교 교수는 “분단된 남북 어느 한 곳을 온전한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귀속의식을 가졌다면 더 이상 재일은 아니”라며 “재일은 남북 어디에도 귀속감을 갖기 어려울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재일 의식을 갖는 것은 문학상의 난민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 어느 곳도 자신의 온전한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라며 “김시종과 김석범은 난민으로 자신을 규정하면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졌고, 이는 새로운 난민 문학의 가능성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또 “김석범은 일제 말 저항작가 김사량을 불러내 긍정적으로 재해석, 자신의 일본어 글쓰기의 정당성과 고민을 드러냈다”며 “김시종은 일제 말 친일협력 작가 김소운을 불러내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신의 일본어 글쓰기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 두 작가의 시도는 재일만이 할 수 있는 경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재일의 상상력은 남북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도 일본에서 대포 소리 없이 삼팔선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한다”며 “남북 조국이 더 이상 온전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재일의 삶이 시작되었던 터라 남북의 고국을 완전한 조국으로 만들 가능성에 대해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두 작가가 다룬 4.3에 대해서는 “김석범과 김시종은 평화적 통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난 4.3항쟁의 직간접적 연루자이기 때문에 4.3항쟁을 다루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재일조선인 1세대 작가 중에서도 제주도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두 작가의 작업은 이후 재일조선인 문학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특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김시종 시인은 이날 포럼이 열리는 제주문학관을 찾아 인사를 건넸다. ⓒ제주의소리

# 김석범의 삶과 문학 

이날 포럼 1부로 진행된 ‘김석범의 삶과 문학’에서는 조수일 한림대학교 교수가 ‘꿈이 가라앉으 밑바닥에 응축된 혁명의 힘’을 주제로 발표했다. 

조 교수는 “김석범은 화산도 한국어판에서 ‘화산도를 포함한 김석범 문학은 망명 문학의 성격을 띠는 것이며, 내가 조국의 남북 어느 한쪽 땅에서 살았으면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작품들’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산도는 진정한 탈식민화를 이뤄내지 못한 조국에서는 결코 싹 틔울 수 없었던 자기를 둘러싼 내외적 위기를 내포한 불온한 글쓰기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또 “김석범은 2020년 7월 발표한 단편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로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실존 문제와 작가 자신이 반세기 넘게 천착해온 4.3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문제를 되짚는다”고 밝혔다. 

이어 조동현 도쿄·제주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의 ‘김석범 선생과 나의 4.3운동’, 김계자 한신대학교 교수의 ‘김석범의 제주와 재일의 사상’을 주제로 한 발표가 진행됐다. 

조 회장은 “김석범의 작품과 에세이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제주4.3을 역사 속 하나의 사건으로밖에 못 보던 내가 선생을 만남으로써 4.3의 정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됐다”며 “당시 김석범 선생과 자주 만나며 4.3운동의 방향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석범 선생은 4.3의 대중화를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넘어설 수 있을 만큼의 문화예술성을 말했다”며 “정치가 문화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문화를 가지고 정치를 다스려야 한다는 그의 말은 도쿄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4.3운동의 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지금 일본에서는 4.3을 많이 알지 못하더라도 4.3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4.3 추모행사에 참여하려고 한다”며 “4.3에 무관심하면 부끄러운 것,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는 채라도 해야 할만큼의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계자 교수는 “4.3의 서사를 제주와 일본을 포괄하는 시각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필연성에 대해 김석범은 4.3을 쓰기 시작한 초기부터 강조해왔다”고 운을 뗐다. 

또 “일제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찢기고 빼앗긴 고향 제주 탈환을 옛 식민종주국 일본에서 공략하는 점에서 김석범 작품은 의미와 역설적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의 4.3 서사의 가치는 남북 어느 한쪽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점에 머무르지 않고 식민과 분단의 시대를 아우르는 재일 디아스포라의 저항적 위치에서 나왔기 때문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 김시종의 삶과 문학 

포럼 2부에서는 △오세종 일본 류큐대학교 교수 ‘불온의 이카이노, 이카이노의 불온’ △정해옥 시인 ‘시인 김시종의 일본어’ △곽형덕 명지대학교 교수 ‘김시종 시 번역자로서, 몇 가지 감상’ 등 발표가 진행됐다. 

오 교수는 “이카이노는 일본 최대 오사카시 조선인 밀집 지역이자 재일조선인의 대명사 같은 마을이었지만, 1973년 없어졌다”며 “김시종의 이카이노 시집은 외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재일조선인에게 회귀되는 불온이 주된 주제”라고 말했다. 

이어 “즉 이카이노라는 불온한 장소는 일본 그 자체로 불안정하고 위기적 상황을 초래한다. 한편으로 이카이노는 일본 사회 안에 있고 조국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동요하고, 거기에 사는 자들의 정체성도 이카이노를 살기 때문에 위기에 노출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시종은 조선인 차별의 상징인 이카이노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빠져나왔더라도 다시 돌아와 생애를 그곳에서 끝나는 조선인들을 이카이노시집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재일한국인 2세인 정 시인은 김시종 문학의 일본어에 대해 말했다. 그는 김시종이 유아기에 처음 익인 언어인 ‘모어’는 조선어에 일본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민지 통치라는 국가 권력이 개입한 결과로의 언어였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시인은 “조선어와 일본어의 씨앗이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얽히면서도 뻗어 나갔다.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의 관계성, 식민지, 해방, 그리고 4.3의 아픈 역사 속에서 김시종 문학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김시종은 매일 제주를 생각하고, 특히 4.3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김시종에 있어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이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제주, 그리고 조국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곽 교수는 김시종 시를 번역한 과정을 설명한 뒤 “시인은 해방 이후 비극적인 역사와 소용돌이 속에서 짓밟혀 죽은 이들의 원한까지 아우르는 것이야말로 통일이자 광복이라고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시종과 김석범, 구 작가의 해방은 불온한 혁명 이후 미완의 꿈을 꾸며 살아간 세월인 동시에 미완의 혁명 뒤에 불온한 꿈을 계속 꾸었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 마지막 순서로는 고명철 광운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환기 동국대학교 교수 △문경수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이정화 일본 세이케이대학교 교수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이 참여한 종합토론이 이뤄졌다. 

한편, 제주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오는 30일까지 김석범과 김시종의 작품에 드러나는 4.3의 의미를 다룬 전시가 열리고 있다. 김석범 작가의 ‘화산도’ 일본 초판본과 김시장 작가의 ‘이카이노 시집’ 서명본 실물이 전시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학관은 24일 오후 1시, 문학관 4층 대강당에서 김석범과 김시종 특별기획 국제문학 포럼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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