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안내판 설치 청원 시민사회 측에 “추가진상조사보고서 결과가 우선”

제주4.3 당시 선량한 양민까지 무차별적으로 진압한 작전 지휘관 박진경(1918~1948) 대령 추도비에 대한 올바른 안내판 설치가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지난 4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올바른 4.3 안내판 설치에 대한 청원서’를 제출한 제주 시민사회 측에  회신한 처리계획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역사적 평가에 대한 정확한 사실 규명 자료를 활용할 필요가 있어 올해 말 마무리될 예정인 제2차 4.3추가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고서를 토대로 박진경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해 안내판 설치 여부 등을 검토·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이는 곧 추가진상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박진경 추모비에 대한 ‘올바른 안내판’ 설치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박진경은 일본군 소위 출신이다. 4.3 당시 제주 초토화 작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김익렬 중령(당시 9연대장)이 해임되자 그의 후임으로 제주에 왔다. 

제주 주둔군 지휘관이 된 박진경은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 등 무차별적인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평가된다. 당시 제주도의 전체 인구가 30만명으로 추산돼 초토화 작전으로도 불린다. 

1948년 5월22일부터 암살 직전까지 수천명의 도민을 체포하는 등 진압 작전을 펼친 박진경은 제주 부임 한달도 안돼 대령으로 진급했다. 

박진경은 1948년 6월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 있다가 부하들에 의해 암살됐다. 무고한 도민 탄압을 가까이서 지켜본 부하들의 결정이었으며, 1948년 6월30일까지 이어진 작전으로 무려 5000여명이 체포됐다.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는 박진경에 대해 “박진경 연대장의 작전은 주민들을 더욱 산으로 도망치게 했고, 자신은 암살당함으로써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박진경 추도비는 1952년 11월 ‘제주도민 및 군경원호회 일동’ 명의로 제주시 관덕정 경찰국 청사에 세워졌다가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로 옮겨졌다. 이후 2021년 국립제주호국원 조성사업에 따라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이설됐다.

제주4.3기념사업회 등 시민사회는 박진경 추도비에 일명 ‘역사의 감옥’을 설치해 반발하기도 했으며, 제주도 보훈청은 행정대집행을 통해 역사의 감옥을 철거했다. 

시민사회는 제주도의회에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올바른 4.3 안내판 설치에 대한 청원’을 제출했고, 도의회는 올해 4월20일 “안내판의 형식, 내용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자문단 구성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 평가 등이 객관적으로 기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부대의견을 달아 제주도지사에게 넘겼다. 

이 같은 청원에 대해 제주도가 4.3추가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 절차를 밟겠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박진경에 대한 ‘올바른 안내판’ 설치 여부는 해를 넘겨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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