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눈·눈·눈](8) “본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우리 몸의 눈과 뇌는 가장 밀접한 신체 기관입니다. 눈의 건강이 바로 뇌 건강으로 직결됩니다. 눈은 뇌의 중요한 정보원이자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의학칼럼 눈·눈·눈]은 그동안 잘 몰랐던 눈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좋은 눈, 밝은 눈, 맑은 눈을 갖게 할 것입니다. / 편집자 글 

사진출처=픽셀즈<br>
사진출처=픽셀즈

‘본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질문일 것 같지만 막상 답을 하려고 하면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국어사전에 ‘보다’를 찾아보면,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알다’라고 나오는데 다시 한번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추상적인 말이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눈이 전자기파의 한 형태인 빛을 감지한다는 것인데, 특정 파장의 전자기파에 의해 망막의 시세포들이 흥분하게 되고, 그 흥분이 각막-동공-망막을 통해 뇌의 시각중추인 후두부에 들어가게 된다. 

시각중추는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재구성해서 우리가 보는 세상의 이미지를 뇌에서 재생성하는 것으로, 우리가 ‘보는 것’들은 뇌의 이차적인 정보처리로 재구성된 이미지인 것이다. 여담으로 착시 테스트, 착시 그림 등을 보다 보면 혼란이 오는 것도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이미지들은 실존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뇌의 재구성에서 착오를 만드는 이미지들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전자기파가 400~700nm의 파장을 하고 있는데, 전자기파의 파장이 700nm보다 길어지면 빨간색의 바깥쪽 영역으로 ‘적외선’, 400nm보다 짧은 보라색의 바깥쪽 영역을 ‘자외선’이라고 부르고, 그사이 영역을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이란 뜻의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 한다.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두 다른 종류의 빛으로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하나의 스펙트럼 선상에 놓인 전자기파인 것이다.
 

파장에 따른 빛의 종류. ⓒ제주의소리
파장에 따른 빛의 종류. ⓒ제주의소리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우리 몸의 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자외선이 우리 몸에 해롭다고 하며 자외선 차단제를 피부에 바르고, 눈을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는 것이다. 자외선보다 높은 에너지의 전자기파로는 엑스선(X-ray), 감마선 ( γ-ray)이 있다. 엑스레이는 자외선보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우리 몸의 근육과 살을 뚫고 갈 수 있어, 우리 몸의 뼈를 비롯한 내부를 볼 수 있는 의학진단 장비로 쓰일 수 있는 것이고, 그보다 높은 에너지의 감마선은 금속마저도 뚫을 수 있어 콘크리트나 금속재료의 내부를 보는데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기파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망막의 시세포를 ‘흔드는’ 흥분 자극을 줘야 우리는 그것을 빛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자외선은 에너지가 너무 커서 파괴하거나, 투과하면서 망막의 시세포를 ‘흔드는’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이고, 적외선은 에너지가 너무 적어서 시세포에 열에너지만 전달할 뿐 시세포를 흔드는 자극이 될 수 없어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빛이 아닌 빛’이 되는 것이다. 

즉, 본다는 것은 사물에 전자기파가 반사되어 우리 눈으로 들어오면서 그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사물이 전자기파를 반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물을 볼 수 없게 된다. 대표적으로 유리가 그 예인데, 유리는 분명히 존재하는 사물이지만 전자기파를 반사하지 않고 통과시켜버리니 그것을 볼 수 없게 되어 티 없이 깨끗한 유리에 사람들이 부딪히는 재밌는 영상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보이는 것도 있다. 홀로그램이다.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제주의소리<br>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제주의소리

많은 SF 영화에서 보면 홀로그램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분명 보이지만 손을 뻗어보면 존재하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리는 안 보이지만 왜 “있다”라고 하는 것이고, 홀로그램은 왜 보이는데 “없다”라고 하는 것일까? 홀로그램에 비친 사람이 ‘없다’라고 하는 판단의 근간에는 ‘만져지는 것’이냐의 여부가 개입된 판단이다. 우리가 유리에 손을 가져가면 유리가 가지고 있는 전자기력의 반발에 의해 우리 피부가 눌리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만진다’ 혹은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가시광선은 분명 존재하지만 전자기력의 반발력을 가지지 않으면서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지만 존재하지 않다고 볼 수 있고, 존재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많은 것을 보면서 살고, 일상생활에서 ‘본다’라는 말을 항상 쓰고 있지만, 그 말뜻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물리학, 생물학을 거쳐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에 다다르는 점이 흥미롭다. /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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