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눈·눈·눈](16) 정상 안압 녹내장

우리 몸의 눈과 뇌는 가장 밀접한 신체 기관입니다. 눈의 건강이 바로 뇌 건강으로 직결됩니다. 눈은 뇌의 중요한 정보원이자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의학칼럼 눈·눈·눈]은 그동안 잘 몰랐던 눈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좋은 눈, 밝은 눈, 맑은 눈을 갖게 할 것입니다. / 편집자 글

사진출처=픽셀즈<br>
사진출처=픽셀즈

"제 안압은 지금 정상이에요?"

진료하다 보면 녹내장 환자들에게서 흔히 듣는 질문이다.  매일 듣는 질문이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지만 사실 저 질문에 대한 답이 상당히 곤란할 때가 많다.

의과대학 시절 녹내장에 관해 공부할 때 정상 안압을 21mmHg 미만이라고 배운다. 그럼 안압이 20이면 정상, 21이면 고안압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고 그에 맞춰 환자에게 답해줄 수 있지만 그렇게 대답하다 보면 많은 고민을 같이 떠안게 된다. 안압이 정상이라는 말은 환자로 하여금 마치 고혈압 치료처럼 혈압이 정상이니 이대로만 유지되면 좋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녹내장 환자를 진료해 보면 과거 전공의나 녹내장 임상강사 시절 보았던 녹내장 환자들과 지금의 환자들은 꽤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녹내장 환자의 주류는 정상 범위의 안압 측정치를 가지면서도 시신경이나 시야 검사 결과는 고안압 녹내장 환자들의 양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많다. 과거에는 이런 환자들의 비율이 확실히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다. 정상 안압 녹내장이 코로나 같은 감염성 질환도 아닌데 병이 전염되어서 우리가 그 환자를 자주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연구에 의해 이 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여러 검사가 동원되면서 진단율이 높아졌기 때문에 예전보다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흔하게 보지 않았던 때에, 즉 고안압 녹내장 환자들의 비율이 훨씬 높던 시절에는 정상 안압이면서도 시신경과 시야가 녹내장성 소견을 보일 때가 특이하게 보였기 때문에 '정상안압 녹내장'이라는 용어가 통용되었지만,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후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녹내장 환자의 80%가 소위 정상안압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상안압 녹내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게 되었다. 물론 이웃 나라 일본도 녹내장 환자의 90%가 정상안압이다.

이쯤 되면 '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철학적인 접근이 될 수 있고, 상황과 문맥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지만 '정상'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우선 '다수'가 연상이 된다. 다수의 생각, 다수의 행동, 다수가 나타내는 검사 값 등을 보일 때 우리는 '그건 정상적이야'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정상 안압은 통계적으로 평균과 표준 편차에 의거 도출되었으므로 안압 21mmHg 미만은 '정상'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우리가 '정상'이라고 표현할 때 받는 느낌은 '문제가 없는'이다. 정상안압 녹내장이라고 표현할 때도 안압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준다. 다수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정상 안압 녹내장으로 정의되는 환자 중 안압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직 녹내장이란 질환의 원인에 대한 학문적 이론은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안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명백하고 치료의 대상도 안압을 주로 치료하게 된다.

정상안압 녹내장에서도 안압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안압을 더 낮추는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녹내장 치료로 여러 연구에서 밝혀져 있는데 굳이 안압이 정상이란 표현을 사용 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안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 두렵다. 이러한 선입견은 환자로 하여금 '내 안압은 정상인데 왜 치료하나'라는 의문을 품게 하고, 그에 대해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안약을 처방해도 환자가 안압 약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안압이 위험 요인이라는 것은 시신경에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므로 시신경이 받는 스트레스를 직접 측정 가능하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안압이 높아도 시신경이 견딜 수도 있고, 낮아도 못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측정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우리는 안압을 매우 간접적인 방법으로 측정하기에 우리가 측정하는 안압이 실제 안구 안쪽에 있는 시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이라고 확실하게 신뢰하기도 어렵다.  또 우리가 측정하는 안압은 하루 중에도 오전과 오후 안압이 다르고, 더 들어가서는 지금 안압과 1시간 후 안압이 다르다는  것은 많은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 그렇게 실시간으로 바뀌는 안압의 진료를 볼 때 한번 측정하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몇 달에 한번) 측정하게 된다. 이렇게  확실히 신뢰하기 어려운 안압을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환자뿐 아니라 진료를 보는 의사 역시 자칫 실수를 범할 가능성을 만든다.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제주의소리<br>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제주의소리

안압에 있어 정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마치 성인 남성의 키를 173cm는 정상이고 190cm는 비정상이라고 단정 짓지 않듯이 안압도 12~15 정도는 평균 안압, 20 정도는 높은 안압 정도로 부르고 싶다. 정상안압 녹내장이라는 말도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녹내장 혹은 개방각 녹내장 정도로 환자한테 설명하는 것이 환자의 불필요한 오해도 줄이고, 안약을 사용하는 치료 순응도도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 안압은 지금 정상이에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의 답을 많이 한다.  "네 지금 안압 유지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혹은 "아니요. 안압을 더 낮춰야 할 것 같아요."/ 정다운 이지봄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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