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애월읍 고성리목장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목장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공동체의 자산이자, 제주도 특유의 목축경관을 간직한 보고(寶庫) ‘마을공동목장’을 지켜온 한 조합장이 자신의 삶을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목장조합장을 맡은 김세호 씨 이야기다. 

지난해 4월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목장을 탐방한 바 있다. 

고성리목장은 약 122만 3140㎡(37만여 평)의 부지가 산세미오름 산록도로를 중심으로 나눠져 있다. 임야로 된 필지가 20여 곳, 초지가 21필지며 실질 조합원은 약 120명이다. 

예전에는 수백 마리의 소가 방목돼 80년대 초반까지 목감이 활동하기도 했으며, 조합원들이 순서를 정해 소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집집마다 소를 목장에 올려 풀을 뜯어 먹게 했으며, 목감은 20일 간격으로 소를 이동시키며 고루 뜯어먹을 수 있게 관리했다. 

그러나 목장부지가 넓은 데다 떨어져 있어 관리에 어려움이 따르며, 사용하지 않는 땅의 경우 여러 이유로 활용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규약을 통해 땅을 함부로 팔 수 없게 해둬 개발 위기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목장보다 자유롭다.

김세호 전 조합장은 책을 통해 고성리목장조합장으로 역임한 당시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부가 2대 조합장을 역임한 뒤 수십 년이 지나 대를 이어 제18대 조합장을 맡은 그다.

그는 조합장일 당시 우마가 마실 물을 마련하기 위해 진수못(김수못)을 정비했다고 밝힌다. 비가 내릴 때마다 흙이 함께 쓸려오면서 뻘로 변한 진수못을 깨끗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후 진수못은 우마 식수용뿐만 아니라 습지가 형성되면서 다양한 생명들의 휴식처가 됐다.

진수못은 고성리목장이 생긴 1930년대 이후 2021년까지 산세미오름에 방목한 우마들의 식수로 이용됐다. 사유지인 탓에 현재는 경계 철책이 설치됐고 우마들은 산세미오름 북쪽 수도 급수장을 이용 중이다. 

어승생 수원지 조성사업에 따라 이시돌목장으로 이어지는 수도관이 설치, 중간에서 수도관을 연결한 덕분에 큰뱅디에 방목한 우마들의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내용도 책에 담겼다.

또 목장조합이 소송에 휘말린 당시 이야기도 기록됐다. 김 전 조합장은 마을공동목장 관련 소송이 잇따른 것과 관련해 그 배경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김 전 조합장 설명에 따르면 일제가 자원 수탈을 위해 ‘공동목장’을 설치하기 전까지 제주에서는 자생적 목축조직인 ‘목장계’나 ‘모시접’ 등이 운영됐다. 그러나 일제가 본격 수탈을 위해 목장조합을 설립하도록 하면서 목장은 리단위로 설치됐다. 

이때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목장용지를 조성하는 데 참여해야 했으며, 방법은 돈을 지급하거나 토지를 일부 기부하는 것이었다. 이때 매도증서나 양도증서를 발급했지만, 대부분 등기 이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주4.3의 광풍이 불어닥쳤고, 마을이 불에 탈 때 마을공동목장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들도 불에 타면서 혼란이 발생했다.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할 자료가 사라져버려 결국 법정 싸움으로 빚어진 것이다.

고성리목장도 공동목장 명의가 개인 명의로 돼 있는 바람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후손들의 소송 제기로 법정 다툼에 휩싸여야만 했다. 

1980년대 들어서 방목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축산 환경이 변하고 목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면서 목장을 부동산 소유권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 

4.3 당시 증빙자료가 불타 목장이 조합 소유임을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10년여 간의 긴 소송 끝에 승소해 목장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시 김 전 조합장은 “이웃간 싸움으로 감정도 안 좋아지는 이런 고통을 왜 짊어져야 하나”라는 후회도 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모든 재판을 마무리 지은 김 전 조합장은 1995년 조합 정기총회에서 마지막 인사말을 조합원들에게 건넨 뒤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는 인사말에서 “법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조들은 소유권 보존등기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믿으며 오랫동안 탈없이 목장조합을 관리했다”며 “마을 리민들이 증인으로 경찰, 검찰, 법원에 갈 때면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제 위치를 찾아 그간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목장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가 상승에 따라 어김없이 부과되는 세금 등 어려움이 많겠지만, 선조들이 지켜 온 목장의 가치를 잘 이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363쪽, 제산인쇄출판사,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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