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불편 감수하는 환경 정책, 정부의 세밀한 계획-지원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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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명확한 정책적 방향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업주나 소비자 뒤에 숨어 정책을 후퇴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환경부는 명확한 정책적 방향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업주나 소비자 뒤에 숨어 정책을 후퇴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 들어 거꾸로 가는 정책이 하나 둘은 아니다. 정부마다 이념적 성향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정책이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정당과 이념을 넘어 인류 생존에 관한 일이다.

지난 7일 환경부는 일회용품 줄이기를 규제 대신 자발적 참여로 전환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비닐봉투 단속 대신 장바구니, 종량제 봉투 등 대체품 사용으로 전환하고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기간 유예, 종이컵 사용은 규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1년 동안 계도 기간을 보내고 난 후 내놓은 해결책은 결국,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일회용품 규제를 유보하거나 철회하는 것이다. 규제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일회용품 규제 철회에 다름없다. 시대를 한 참 거꾸로 거슬렀다는 비판이 크다.

환경부는 일회용품 줄이기를 규제 대신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일회용품 줄이기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포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책이 가져올 영향은 매우 위험스럽다. 그나마 점주와 소비자들의 참여와 노력으로 줄어들던 일회용품 사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다시 신뢰를 얻고 그 효과를 얻는 데는 몇 배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한다.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종이컵 규제 완화를 공약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4개월 만에 시행규칙을 개정해 종이컵을 일회용품에서 제외했다. 당시 환경부도 ‘종이컵은 분리·수거 재활용이 되므로 업체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는  5년 사이 일회용 컵 사용이 4배 넘게 늘었다.

결국 환경부는 2019년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발표하고 2021년 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해 식당과 카페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사용을 금지했다.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일회용품 줄이기 정책만이 아니다. 뒤로 가는 환경부 정책에 한참 공들여온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에 앞서 지난 10월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지자체 자율에 맡기려는 정책 방안을 밝혔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살 때 보증금 300원을 낸 뒤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다. 2020년 도입 결정 이후 두 차례 시행 연기 끝에 지난해 제주와 세종에서 선도 사업으로 시행 중이다.

시작부터 전국 운영이 아닌 지자체 두 곳만 선도적으로 운영하면서 제도 도입에 의지가 있는지 물음표가 붙었다. 올해로 선도사업이 끝난 뒤 전국 확대 시행해야 함에도 환경부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며 사실상 정책 포기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선도사업에 참여했던 제주도로서는 애써 쌓아놓은 성과가 물거품 될 상황이다.

지난달 한국환경회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위한 간담회에서 제주에서는 보증금 대상 업체 참여율이 96.8%에 달하며 컵 반환율도 72%가 넘어섰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용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당장 경영에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참여한 업주와 소비자가 함께 이뤄낸 성과라는 평가다. 보완해야 할 일은 많다.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가맹점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사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과 반환 불편을 줄이기 위한 반환체계 개선, 부정반환 문제 해결 등 대안 마련을 통한 안착화도 과제다. 일부 업체만 대상으로 실시돼 형평성 논란도 있다. 정책을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을 통해 일회용컵 줄이기, 플라스틱 줄이기 의지를 보여야할 때다. 

하지만 자율 시행소식이 알려지면서 점차 높아가던 일회용컵 반환율이 다시 뒷걸음하고 있다. 제주도내 일회용컵 반환률도 10월 들어서만 22.8%나 감소했다는 조사도 나온다. 업주나 소비자들 사이에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한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지자체 마다 혼란을 겪고 있다. 보증금제 자율 시행에 선뜻 나서려는 지자체도 없다. 2050년 탄소중립과 2040년 플라스틱 제로를 목표로 내세운 제주도로서는 큰 암초를 만났다. 

제주도도 더 이상 혼란속에 애써 쌓은 성과가 무너지지 전에 분명한 의지와 계획을 밝혀야 한다. 환경부는 규제 대신 자율을 선택한 이유로 소비자와 업체의 불편에 비해 재활용 비율이 높지 않음을 들었다. 업주나 소비자 불편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환경정책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어느 누구도 불편과 비용을 감내하지 않고 해결할 방안이 있다면 무슨 문제이고 고민이 있겠는가?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책임이 거기에 있다. 설명과 설득으로 공감을 얻고 참여를 이루고 또 불편함을 최소화하기위한 세밀한 계획과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명확한 정책적 방향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업주나 소비자 뒤에 숨어 정책을 후퇴시켰다.

달라진 국민 의식과도 동떨어진 결정이다. 일회용품 줄이기라는 환경정책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많지 않다.

국민권익위가 실시한 ‘탈(脫) 플라스틱 방안’ 국민의견 조사(2021년 8월) 결과를 보면 응답자 81.3%가 기업의 폐기물발생 감축의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의견이 훨씬 많다.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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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이 이러한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발표한 동아시아 지역 다회용컵 및 일회용컵 시스템의 환경 성과 전과정평가(LCA) 보고서를 보면 국내에서 쓰고 버려지는 종이컵은 연간 약 37억 개다. 이로인해 매년 종이컵 사용으로 1억6724만kg CO2-Eq의 탄소가 배출된다. 자동차 6만2201대가 배출하는 탄소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다. 종이컵이 일부 재활용된다 해도 여전히 플라스틱을 비롯한 탄소배출원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생활에서 겪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일회용품으로 인한 환경위기는 이미 심각하다. 환경문제 해결이 이러저런 현실 욕구를 다 만족할 만큼 쉽고 간단하고 여유롭지가 않다. 남겨진 시간도 많지 않다. / 김효철 논설위원(곶자왈사람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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