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제주4.3평화포럼 23~24일 개최
박태균 교수, 미국 대한정책과 8.15 발표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열린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열린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미군정의 정책 실패가 4.3사건을 비롯해 해방 직후 한반도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주4.3평화재단은 23~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역사학의 시선으로 본 해방 3년, 그리고 4.3’을 주제로 한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을 개최했다.

1일 차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의 해방 3년사와 제주4.3 기조 강연에 이어 2일 차에는 △해방, 냉정의 소용돌이 △해방과 자주적 국가수립운동 △좌절된 ‘해방’, 분단 등을 논했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해방 직후 미군의 대한정책과 8.15에 대해 발표했다.

역사비평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주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장, 한국역사연구회장을 지낸 박 교수는 미 군정 정치고문단 소속 레너드 버치 중위의 버치 보고서를 최초 발굴한 역사학자다.

버치 보고서는 버치 중위가 1945년 12월 한국에 배치된 이후부터 1948년 5월 총선거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한국 정치인들과 소통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다. 버치는 한국에서 만난 여러 정치인 가운데 여운형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교수는 “버치 보고서 중 감명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미군정이 초기에 여운형을 어떻게 띄울까하는 내용이었다. 미군정은 좌익으로부터 여운형을 포섭하거나 포섭이 안 될 경우 여운형을 쳐내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군정은 여운형의 친일 경력을 파헤치기 위해 일본에 특별조사단을 파견해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을 지냈던 이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여운형 만한 정치인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열린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열린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재단은 23~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역사학의 시선으로 본 해방 3년, 그리고 4.3’을 주제로 한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재단은 23~24일 제주썬호텔에서 ‘역사학의 시선으로 본 해방 3년, 그리고 4.3’을 주제로 한 ‘2023 제13회 제주4.3평화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하지만 여운형과 장덕수가 암살되면서 미군정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미군정의 남은 희망은 김규식 박사밖에 없었다.

이승만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버치는 김규식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그를 중심으로 정치 세력을 묶으려 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박 교수는 “버치는 김규식에게 미군정과 협력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자 했지만 김규식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김규식의 대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그를 보며 일제강점기부터 임시정부 시기까지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왔기에 독립운동을 쭉 해올 수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군정 대한정책의 불명확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의 전략적 목표가 모호했으며 미군정 내부에서도 좌우 합작을 어디까지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분열, 보수 우익의 프레임으로 장악된 한국 정치의 문제로 대한정책이 불투명해졌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여운형의 암살과 2차 미소 공위의 결렬은 4.3의 결과를 예견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미군의 불투명했던 정책으로 결국 1948년 분단 국가가 수립되고, 4.3이라는 비극도 발생했다. 미군의 불정하고 불확실했던 정책들이 결국은 한반도를 분단 국가와 전쟁의 소용도시로 만든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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