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화살 맞은 채 구조
1년3개월 만에 해외 입양 떠나
“많은 이들의 선의 모인 결과”

화살 맞은 강아지 '천지'의 놀라운 변화

건강을 되찾은 천지(사진 왼쪽)와 지난해 8월 구조 당시 천지. 사진 제공=제주서부경찰서  ⓒ제주의소리
건강을 되찾은 천지(사진 왼쪽)와 지난해 8월 구조 당시 천지. ⓒ제주의소리

‘화살 맞은 개’로 알려진 천지가 1년여 만에 지구 반대편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았다.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의 미누미요가원.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말라뮤트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 흔들며 대문을 넘었다. 냄새를 킁킁 맡으며 요리조리 마당을 돌아다니더니 낯선 이곳이 마음에 드는 듯 이내 신나게 뛰어다녔다. 처음 본 친구가 체취를 맡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늠름함도 보였다.

그늘이라곤 없을 것 같은 해맑은 모습의 개는 바로 천지였다. 천지는 지난해 화살이 몸통을 관통한 상태로 구조돼 동물애호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샀던 아이다.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미누미요가원에서 만난 천지. ⓒ제주의소리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미누미요가원에서 만난 천지. ⓒ제주의소리

천지의 가슴 아픈 사연은 1년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지는 지난해 8월26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마을회관 인근 도로에서 화살이 몸통을 관통한 채로 발견됐다.

구조 당시 천지는 삐쩍 마른 채로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저항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큰 움직임 없는 모습이었다.

제주서부경찰서 형사들은 천지를 향해 활을 당긴 범인을 찾기 위해 인력 480여 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탐문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약 7개월 만에 범인이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자신이 사육하는 닭들이 들개 공격으로 피해를 보자 화가 나 마침 인근을 지나가던 천지에게 분풀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천지는 그가 키우던 닭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지난해 8월 화살이 몸통에 관통한 채로 발견된 천지가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는 모습. ⓒ제주의소리
지난해 8월 화살이 몸통에 관통한 채로 발견된 천지가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는 모습. ⓒ제주의소리

그렇게 천지는 몸통에 화살이 꽂힌 채로 길거리를 떠돌다 하루 만에 인근 주민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천지는 긴박하게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화살 제거 수술을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후에는 경기도에 있는 한 동물훈련소에서 훈련받으며 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1년 3개월의 긴 기다림 끝에 천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내어줄 새 가족이 나타났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조이(가명)씨다. 천지는 오늘(29일) 저녁 하늘길에 오른다.

지난 24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의 미누미요가원에서 만난 김은숙 혼디도랑 대표가 천지의 입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24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의 미누미요가원에서 만난 김은숙 혼디도랑 대표가 천지의 입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천지의 새 가족을 찾은 과정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추정 나이 8살, 사람 나이로 치면 55세의 노령인 데다 치아는 모두 썩어 빠져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태였다. 무엇보다 ‘학대’라는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였기에 아낌없는 사랑을 나눠줄 가족이 필요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 가운데 김은숙 제주 동물사랑실천 혼디도랑 대표의 공이 컸다. 김은숙 대표는 구조 직후부터 지금까지 천지를 돌보며 입양자를 찾는데 발 벗고 나선 이다.

김 대표는 1년여 간의 과정을 회상하며 “운이 정말 좋았다. 이름을 ‘천지’가 아닌 ‘천운’이라고 지었어야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천지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만큼 모두 ‘입양은 힘들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족을 꼭 찾아주겠노라고 천지와 약속했다.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의 미누미요가원에서 만난 천지. 구조 직후 14kg이었던 몸무게가 18kg까지 늘었다. ⓒ제주의소리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의 미누미요가원에서 만난 천지. 구조 직후 14kg이었던 몸무게가 18kg까지 늘었다. ⓒ제주의소리

먼저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를 없애야겠다는 판단에 훈련소의 도움을 받았다. 천지가 사람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그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천지의 사연을 알렸다. 훈련받는 모습, 잠자는 모습, 밥 먹는 모습 등 천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기록하고 공유했다.

입양을 희망하는 자가 여럿 있었지만, 이미 한 번의 아픔을 품은 아이였기에 더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보듬어 줄 입양자를 꼼꼼히 따지고 살폈다.

그리고 지난 10월, 천지는 영상통화를 통해 1만여㎞ 떨어진 조이씨와 처음 만났다.

김 대표는 “미국인 조이씨는 평생을 천지와 같은 아픈 아이들을 키워온 사람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고 어리고 이쁜 동물보단 가엾고 도움의 손길을 꼭 필요로 하는 동물을 돌봐왔다. 조이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천지의 영상과 안타까운 사연을 보고 연락해 왔는데,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기에 좋은 가정을 찾아주고 싶다’는 그의 말이 참 와닿았다”고 전했다.

한 달 동안 김 대표와 조이씨, 유기견보호센터 관계자들은 14시간의 시차에도 밤낮 할 것 없이 매일 연락하며 천지의 상황을 공유하며 입양을 조율했다. 그리고 지난 22일 천지의 입양을 확정했다.

지난 22일 천지 입양을 확정한 직후 조이(맨 위),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나눈 메시지. ⓒ제주의소리
지난 22일 천지 입양을 확정한 직후 조이(맨 위),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나눈 메시지. ⓒ제주의소리

수십 년간 동물을 돌봐온 김 대표는 이번 천지 입양을 통해 크게 감동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동물 학대 이슈가 떠오르면 경찰 조사를 하더라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천지의 경우 상황이 달랐다. 쉽게 말하면 천지는 흔히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다. 누군가는 하찮은 생명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지를 처음 발견한 주민은 모른 체 하지 않고 신고했고, 경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대범을 붙잡았다. 또 동물보호센터는 천지를 적극적으로 치료해줬다. 천지의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함께 마음 아파하고 관심을 가진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천지의 입양은 많은 이들의 선의가 모인 결과였다. 이들이 천지에게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흉터가 희미해지는 것처럼 과거의 아픔은 모두 잊고 부디 건강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것.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동물학대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천지를 비롯해 고통받는 동물들이 노출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제주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동물 학대를 보고도 눈 감아주는 경우가 많다. 이번 천지 사례를 계기로 자신과 내 가족이 학대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동물학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지가 입양 떠나기 하루 전인 28일 미누미요가원을 찾은 제주서부경찰서 문승종 형사4팀장과 팀원 허승혁 형사. 자칫 미궁의 빠질 뻔 했던 범인을 잡은 주역들이다. 몰라보게 건강을 되찾은 천지 모습에 뭉클해 했다는 후문이다.  ⓒ제주의소리
천지가 입양 떠나기 하루 전인 28일 미누미요가원을 찾은 제주서부경찰서 문승종 형사4팀장과 팀원 허승혁 형사. 자칫 미궁의 빠질 뻔 했던 범인을 잡은 주역들이다. 몰라보게 건강을 되찾은 천지 모습에 뭉클해 했다는 후문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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