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주만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제주 무속’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무속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를 지칭한다. 종이 무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제주굿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소리]는 국립민속박물관 권태효 민속연구과장, 민속학자 강소전이 집필한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전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종이 예술작품 기메의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제주굿의 가치도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④ 기메의 종류
⑤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세계
⑥ 주요 기메의 제작 방법 및 과정
⑧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⑨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⑩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표지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표지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조사목적 및 필요성

우리 굿에서 종이 예술은 굿을 잘 진행하도록 하고, 굿판을 굿판답게 꾸며주는 데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굿의 경우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종이 장식은 그저 단순한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신이 머무는 거처임과 동시에 신체의 상징이기도 하고, 신에게 바치는 예물이 되기도 한다. 또 굿판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전국의 굿판에서 종이 장식이 쓰이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 또 그것의 기능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지역이 없다. 그중에서도 제주의 종이 장식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다. 그 종류가 풍부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본풀이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아울러 많은 굿거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제주굿에서는 이렇듯 굿에 쓰이는 종이 장식 또는 신체의 형상을 만든 것을 ‘기메’라고 지칭한다. 기메는 대개 백지나 창호지, 오색전지 등을 오려서 신을 상징하는 몸체나 깃발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의례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라든가 제장祭場을 장식하는 용도로도 만들어져 제장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기메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기’는 깃발의 뜻, ‘메’는 모양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인다고 하나 명확하지는 않다. (기메의 명칭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도록 한다.)

제주도의 기메 대부분은 그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중춘 심방의 제보에 따르면 현재 제주굿에서 활용되는 기메의 종류와 형태는 본래부터 제주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김헌선 선생이 2000년대 초반 이중춘 심방 조사시 직접 들은 바를 제보해준 것이다.) 1950년 무렵 충남 서산 등지의 설위설경의 것이 유입되면서 점차 체계적으로 기메가 만들어졌고, 그전에는 굿당에 한지를 걸어놓는 형식으로 그저 단순한 형태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강정식 선생은 제주 기메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메는 그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살장을 새롭게 만든 심방의 실명이 전해질 정도이다. 시왕멩감기, 영기 몸기 등도 사용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하다. 제주시 지역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 불과 60년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 강정식, 「기메」 항목, 『한국무속신앙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09.

물론 그 역사가 길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지니는 의미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섭 양상 속에서 변화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메가 제주굿에서 무구로서 차지하는 비중을 본다거나 기메를 특히 잘 만드는 소미를 특별히 지칭해 ‘기메선생’이라는 별칭을 줄 정도이기에, 그것의 가치는 특별하다.

이런 제주굿 기메에 대해 기존에 논의나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메를 정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이 보고서는 기메가 특히 제주굿의 실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무구의 하나라는 판단 하에 그것의 성격과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제주 기메 연구의 필요성은 다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게 제기된다고 하겠다.

첫째, 제주도 큰굿의 제의 과정을 물질자료 위주로 정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곧 기메는 여타 무구보다 제주굿의 물질문화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육지에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무속용품을 활용하는 데 있어 관련 기성품을 사다가 활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현 시점에 제주 굿판의 기메는 현장에서 굿에 직접 참여하는 심방에 의해 직접 제작되어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성을 잘 간직한 대상이라는 의미가 있다.

셋째, 제주굿에서 기메는 단순히 일회용으로 활용되고 마는 소모품이 아닌 신체神體 및 신화(본풀이)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크다. 큰굿 제차에서 제작되고 활용되는 다양한 기메는 ‘시왕맞이’나 ‘불도맞이’와 같은 주요 굿거리의 진행을 보완하는 한편, 제주 본풀이와의 관계성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화와 의례의 연관성 또한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넷째, 기메의 모양이나 생김새 등을 통해 신 또는 신체에 대한 인식 또한 잘 찾아볼 수 있다. 기메는 곧 신체 자체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아울러 그것이 어떤 성격과 기능을 보여주는지도 잘 함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기메에 대한 연구는 제주 무속의 신앙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틀을 제공할 수 있다.

다섯째, 기메는 단순한 신체나 굿 장식이 아니라 큰굿의 진행 전반에 깊이 간여하고 있고, 굿놀이 가면을 비롯해 다양한 기능과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어 제주굿과 관련된 폭넓은 장르를 이해하는 데에도 바탕이 되고 있다.

여섯째, 제주 기메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함으로써, 육지의 굿에서 쓰이는 지화 등과 비교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곧 기메가 지닌 지역성을 토대로 비교민속학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일곱째, 제주 큰굿에서 활용되는 주요 기메의 일습을 제작 과정과 함께 기록 정리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메가 소중한 민속자료라는 측면에서 기록화 작업 및 연구와 병행하여 남기고, 특히 굿에서 실제 활용되는 기메를 박물관에 기증, 보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무속 관련 유물 보존 및 아카이브 자료가 동시에 확보가 이루어질 때 전반적인 이해 속에 가치 있는 문화유산의 전승에 기여할 수 있다.

2009년 고순안 심방댁 큰굿에 걸린 지게살장.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주 기메 관련 선행연구 검토 및 연구 방향

기메에 대한 연구는 일찍이 현용준 선생이 선편을 잡은 이래 몇몇연구자들에 의해 제주굿의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검토된 바 있다. 그렇다고 제주 기메에 대한 연구가 그리 풍부하거나 다양하게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로 기메 형태를 단순히 소개하거나 그 성격에 대해 대강을 언급하는 측면이 강했다.

기메에 대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선편을 잡은 연구자는 역시 현용준 선생이다. 그는 무속신의 신체 상징적 측면에서 기메를 고찰하였다. 1969년에 발표한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 무속 신체 형성의 일면」이라는 논문인데, 기메의 형태와 기능에 따른 나름의 분류를 시도하고 그것이 ‘잎이 푸른 대’에 기메가 고정되는 양상에 주목하면서 그것의 강신 기능이 육지의 당신목堂神木이나 신간神竿과 동일한 근원을 지녔을 것을 추정하고 있다. 그는 제주도에서 굿을 하는 제청祭廳을 창호지나 백지, 색지로 오려 걸거나 푸른 잎이 달린 대에 묶어 세워놓은 것을 기메지전이라고 하였고, 신에게 헌납하는 지전, 제청의 장식품류, 신의 장신구류, 순수 기메류 등으로 분류하면서 기메의 기능을 살피고 있다. 특히 신체로서의 성격에 주목하면서 사람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부분을 주목한 동시에 잎이 푸른 대와 큰대가 강신降神의 통로 성격을 지녀 육지의 서낭목과 연결시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잎이 푸른 대+백지’가 점점 발전되면서 인형지제물人形紙製物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해나갔다고 본다거나 강신降神 용도에서 고정형固定型 신체神體로 변화해나갔다는 식의 다소 진화론적 관점의 시각은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무속 신체 형성의 일면」, 『한국문화인류학』 2집, 한국문화인류학회, 1969. 이 글은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집문당, 2002)에 다시 수록해놓고 있다.)

실상 일부 기메만이 이런 양상을 보일 뿐이고, 더구나 제주도 기메를 육지의 신 관념을 지나치게 의식해 의도적으로 결부시키면서 오히려 논점을 흐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기메의 형태와 기능을 통한 최초의 기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이기는 하나 기메 전반에 대한 성격과 본질을 밝히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현용준은 『민속사진집 靈』에서는 여러 기메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기메의 유형을 지전류, 제청장식물류, 신의 장신구류, 순수한 기메류 등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한편 기메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육지의 넋전과 연관 지으면서 비교민속학적 입장에서 기메에 접근한 연구도 있다. 심우성 선생은 「육지의 ‘넋전’, 제주의 ‘기메’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죽음의례적 측면에서 접근해 육지의 넋전과 비교 대상으로 제주의 기메지전을 설정하면서 제주굿 ‘기메전지’ 15종을 형태와 기능으로 정리해놓고 있다. 기메가 육지의 것에 비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것의 형태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그 모양새 등을 정리하는 성격의 글이다.(심우성, 「육지의 넋전, 제주의 ‘기메’에 대하여」, 『공연과 리뷰』 81호, 현대미학사, 2013.)

비교민속학적 기반 축적을 염두에 두고 제주 기메를 살핀 것이기는 하지만 기메에 대한 폭넓은 연구이기보다는 기메에 대한 자료 소개 성격이 강하고, 실제 비교가 이뤄졌다거나 어떤 방향에서의 비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막연하게 마무리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그 외로 제주굿 기메는 주로 제주 지역의 연구자에 의해 연구 대상으로 관심을 얻게 된다.

문무병은 굿판을 신들이 도래하는 작은 우주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기메를 각 기능별 신격과 연계하여 이해하는 한편, 기메를 기旗의 형태, 지전紙錢의 형태, 종이탈, 인형 등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하면서 그 용도와 성격을 살피고 있다. 비록 이 글 또한 기메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기메를 대상으로 삼았고, 기메의 성격이나 분류가 어느 정도 체계적이어서 의미가 있는 글이다. 그럼에도 기메의 유래나 제작 과정, 실제 굿에서의 활용 등 물질문화적 측면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한 면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문무병, 「제주굿의 깃발과 종이무구」, 『영주어문』 15집, 영주어문학회, 2008. 2.)

한편 제주 무속의 물질문화적 측면에서도 본격적으로 기메를 검토 대상으로 삼은 것은 강소전에 의해서이다. 강소전은 2006년 「제주도 굿의 무구 ‘기메’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20여 종의 주요 기메에 대한 종류와 성격, 사용 방법과 제차 간의 상관성, 관련 본풀이까지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방대한 분량의 논문을 집필하면서 제주 기메를 물질문화적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두고 있다.(강소전, 「제주도 굿의 무구 ‘기메’에 대한 고찰」, 『한국무속학』 13집, 한국무속학회, 2006.)

또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2014년에는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김영철 심방이 제작한 기메를 위주로 하여 <제주의 무구> 특별전을 개최하였고, 전시된 30여 종의 기메 자료에 대해 관련 사진과 함께 제청 설립과 불도맞이, 시왕맞이 등 기능별, 의례별 주요 기메들을 제시하면서 그 성격을 살피고 있어 기메의 전체적인 양상을 잘 파악해놓고 있다.(강소전, 『제주의 무구』, 제주대박물관, 2014.)

구체적인 기메의 자료 양상 및 제주굿과 연관해 기메의 전반적 부분을 폭넓게 다뤘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연구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의례 현장에서 구술되는 본풀이가 기메의 제작 연원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거나 동일한 기메일 지라도 목안, 정의, 대정 등 지역에 따라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 등 주목할 만한 언급들도 적지 않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그 과정을 제시한다거나 실제 의례인 큰굿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그것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그 가치를 찾는 작업, 굿 이외의 활용도 등을 찾아보는 작업 등 좀 더 넓은 시야에서 기메에 접근하지 못한 측면은 다소 아쉽다.

이외로는 최진아의 연구도 참고할 만하다. 제주도 무속을 중심으로 현용준 선생의 물질문화 연구의 경향과 성과를 살피는 가운데, 현용준의 기메에 대한 인식 및 접근방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주로 현용준의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논문을 분석하면서 그 성과를 살피는 한편, 제주굿을 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무구 중 하나인 기메가 현용준이 파악한 것처럼 단순히 대나무 가지에 인간의 모습을 오려 장식한 상징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여러 구성물들이 결합된 다양한 상징성을 함축한 제주도 무속의 대표적인 물질문화 중 하나임을 지적하였다.

제주도 기메만을 특정하여 다룬 것은 아니지만 물질문화적 측면에서 그 가치를 찾고자 하는 관점을 살필 수 있다.(최진아, 「현용준의 물질문화 연구 : 제주도 무속을 중심으로」, 『한국무속학』 37집, 한국무속학회, 2018.)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제주도 기메에 대해 접근하고 있지만, 제주굿 기메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실상 강소전의 논의를 제외하고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기메 쓰임새의 본질인 큰굿과의 연계성 속에서 구체적인 검토는 이루어진 바는 없다. 아울러 자료의 사진을 단순 제시하고 그 기능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는 경향이 주를 이룰 뿐, 구체적인 제작 과정이 단계별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형상과 의미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 다양한 검토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또 기메와 관련된 본풀이도 언급된 바 있으나 전체적인 시각에서 논의되기보다는 개개의 현상만을 제시하는 정도였다. 곧 기메에 대한 단편적인 접근 및 시각만 있었을 뿐 전체적인 안목에서 기메의 전반적인 성격과 면모는 아직까지 온전히 밝히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전시 작품 '시왕기, 멩감기' / 사진=국립민속박물관<br>
2014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전시 작품 '시왕기, 멩감기'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이런 시각에서 이 보고서는 제주굿 기메 전반에 대해 유·무형적 면모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것의 가치와 활용 방향까지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다. 때문에 여기서는 제주굿에서 중요하게 활용되는 기메 30여 종을 선정하고 그것이 제작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제시하면서, 특히 큰굿을 기반으로 기메가 어떤 모양으로 어떤 쓰임을 갖는지를 전체 속에서 개개 기메의 쓰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기메가 굿거리에서는 어떤 의미와 성격을 지니는지와 제차의 본풀이와는 어떤 관련 양상을 보이는지 등 전반적인 측면을 고려하고자 한다. 또 기메의 현대적 활용과 가치에 대해서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런 기본적인 입장에서 다음 몇 가지 방향성에 따라 제주 기메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첫째, 제주도 큰굿(최대 15일 정도 소요)에 쓰이는 기메 일체를 염두에 두고 그중 필수 기메를 현지에서 이 보고서의 주제보자인 김영철 심방에게 제작하도록 하고, 그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화시켜 정리하여 자료를 남긴다.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작업부터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에 입각한 것이다.

둘째, 큰굿의 제차祭次를 염두에 두고 그에 따라 소요되는 기메를 정리하고, 그 기능과 성격을 정리한다. 물론 큰굿 제차에 쓰이는 기메 전체를 직접 제작하고 그 과정을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기메는 굿을 위해 제작되는 것인 바, 굿의 연행 속에서 파악해야 그 본질
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셋째, 큰굿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중요하게 활용되는 대표 기메 20여 점을 선정하여 각각의 제작 방법 및 접는 과정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한 세부 장면에 대한 사진 촬영을 첨가하여 이해를 돕도록 한다. 이것은 향후 전승과정에 대한 이해 및 보존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넷째, 큰굿의 현장에서 연행하는 장면에서 기메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실제 이루어진 큰굿 현장의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각각의 기메들이 큰굿에서 활용되는 양상 및 쓰임새를 정리, 제시한다.

다섯째, 보고서 작성을 위해 활용된 기메 자료들을 위주로 큰굿 현장에서 김영철 심방이 제작하여 활용했던 기메 일습을 박물관에 그대로 기증하도록 할 예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련 유물, 아카이브자료, 연구보고서가 동반 수집될 수 있도록 하여 일체화된 민속자료를 통해 기메와 제주굿의 이해를 돕도록 방향을 잡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유물과 아카이브자료,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고서가 함께 있을 때 활용 및 보존의 가치는 높아지는 것이다.

제주 기메에 대한 이번 보고서는 단순히 기메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만을 하고자 마련된 것은 아니다. 특히 물질문화적 측면에서의 접근도 아울러 시도되어야 하는 것이어서 제주 기메에 대한 제작과정의 기록화 작업과 같은 부분이 동반되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연구이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적절한 제보자를 선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관점에서 제주 기메 제작과정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 집필을 위한 대상으로 찾은 제보자는 제주도 지정 민속문화재(제9-3호)인 와흘본향당을 매고 있는 김영철 심방이다. 김영철 심방은 제주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송당리 마을제(본향당굿)의 진행에 한때 참여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제주 기메 제작과정을 기록화시킬 수 있는 대상 제보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김영철 심방의 적합성은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 4대째 무업을 이어온 뿌리가 깊은 무가계 집안이라는 점이다. 그 집안 내력을 보면 4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심방일을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유지해왔으며, 그 가계 또한 명망을 얻은 심방들과 촘촘히 연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머니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본향당 당멘심방인 김순아 심방이고, 제주도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크게 활약했던 김만보 심방이 작은할아버지로, 기메를 제작하는 것을 비롯해 김영철 심방이 제주굿을 익히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보유자였고 현용준 선생의 『제주도무속자료사전』의 주요 제보자였던 안사인 심방이 어머니에게 시매부이기도 하여 어머니가 굿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고, 이것이 김영철 심방에게 전수되기도 했다. 또 안사인 사후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보유자로 지정된 김윤수 심방이 그의 고모부이기도 해서 그에게서도 기메 제작법을 일부 전수받았기 때문에 집안 내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메 제작법 전수가 잘 이루어진 사례임을 알 수 있다.

김영철 심방의 어머니 김순아 심방.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김영철 심방의 어머니 김순아 심방.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둘째, 이중춘, 김윤수 등 제주를 대표하는 큰심방들이 차례로 작고한 시점에 그나마 기메 제작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메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김영철 심방이 아직 큰심방으로 자리매김을 하지는 못했지만 기메 제작 자체가 큰심방의 몫이 아닌 소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바, 특히 김영철 심방은 많은 굿에서 기메 만드는 일을 도맡아 해왔다. 때문에 기메 제작과 관련해서는 그가 오히려 훨씬 적합한 제보 대상일 수 있다. 더구나 김영철 심방은 일찍부터 굿판에서 기메 제작을 주로 맡아왔기에,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도 그를 제보자로 선정하는 데 주요 고려사항이 되기도 했다.

김영철 심방 당주에 모셔진 기메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김영철 심방 당주에 모셔진 기메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셋째, 현용준 선생의 주요 제보자였던 안사인 심방을 비롯해 양정순 심방, 정태진 심방 등 도내 중요한 심방들에게 기메 제작법과 관련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울러 제주 목안牧內의 기메 제작법뿐만이 아니라 정의旌義와 대정大靜 지역의 기메 제작 사례도 두루 꿰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철 심방의 어머니인 김순아 심방은 안사인 심방에게 굿을 배우면서 자연히 김영철 심방에게 굿은 물론 기메 제작을 익히는 데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고,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의 양정순 심방 또한 지역은 다르지만 그를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정의 지역의 기메 제작 방식을 가르쳐 주는 등 제주 지역의 기메 제작 방식 전반을 접했던 경험이 있다. 또 얼마 전 작고한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당멘심방인 정태진 심방과도 어릴 적부터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그에게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정태진 심방은 김영철 심방이 어릴 때부터 무병이 심해진다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멘토 역할을 하면서 여러 굿법을 알려준 심방이기도 하다.

이처럼 김영철 심방은 몇 가지 점에서 제주굿 기메 제작과 관련해 적절한 대상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김영철 심방을 제보자로 삼아 제주굿의 주요 기메 제작과정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함으로써 제주굿의 가장 중요한 무구 중 하나인 기메의 전승 양상과 제작법, 그 쓰임새 등을 파악한다면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존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물질문화적 측면의 접근까지 추가할 수 있어서 제주굿 기메에 대해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 있겠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영철 심방의 굿 진행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김영철 심방의 굿 진행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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