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주만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제주 무속’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무속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를 지칭한다. 종이 무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제주굿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소리]는 권태효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민속학자 강소전이 집필한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전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종이 예술작품 기메의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제주굿의 가치도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④ 기메의 종류
⑤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세계
⑥ 주요 기메의 제작 방법 및 과정
⑧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⑨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⑩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기메의 형태

제주의 심방 공동체에서 기메의 형태를 어떻게 설정하였으며, 기메제작과 관련한 전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 그래도 기메의 형태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선행 논의가 있었다. 기메의 형태 외에 제작 전승까지 함께 살펴 이후 기메의 구체적인 종류와 굿판에서 실제적으로 기메를 활용하는 양상까지 알아보는 데 발판으로 삼는다.

기메는 종이를 다양하게 접은 뒤 주로 가위로 오려서 만든다. 종류에 따라서는 칼로 파서 만들기도 한다. 종이를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제장 밖에 설치하는 기메는 날씨를 감안하여 보통 천으로 만든다. 기메에 따라 대나무(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 가늘게 쪼갠 대나무), 지전, 지폐 등의 재료를 함께 이용하기도 한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도 있다. 기旗 모양을 한 것이 여럿이지만 그 형태는 사실 다양한 편이다.

기메의 형태는 여러 재료를 조합하여 전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살펴보는 방향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도 기메 형태에 대해 재료의 조합에 따라 구분해 본 시도가 있었다.(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 무속 신체형성의 일면」, 187쪽. 국립문화재연구소,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巫具 : 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민속원, 2008, 369∼371쪽.) 재료의 특성이 형태를 만드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재료는 종이와 대나무이다.

여기에 지전, 소지, 천류, 지폐가 보조적 역할을 한다. 결국 기메 형태는 종이와 대나무를 조합하는 방식이 중심이다. 지전과 소지라는 다른 종이류 무구와도 때때로 결합한다. 천류와 지폐는 부분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기메 제작에 사용하는 종이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창호지’라고 하는 종이와 ‘백지’라고 하는 종이다. 창호지는 두꺼운 편이다. 백지는 매우 얇은 종이다. 창호지는 기류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고, 백지는 여러 기메 종류에 쓰인다. 종이는 백색을 주로 사용한다. 다만 요즘은 물
자가 풍부하여 다양한 색지色紙를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전지 크기의 색지도 많이 쓴다. 색지는 창호지보다는 두께가 얇다. 종이는 단순히 접기만 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가위로 오려서 만든다. 형상화 수준에 따라 오리는 난이도도 결정된다.

기메에 사용하는 대나무는 흔히 제주방언으로 ‘수리대’라고 하는 종류이다. 수리대는 이대를 말한다. 가늘고 탄력성이 좋다.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를 통째로 쓰는 경우가 있고, 대나무를 약 40~50㎝ 정도 길이로 가늘게 쪼개어 쓰는 경우가 있다. 대나무 재료는 종이류와 함께 기메의 일부분을 이룬다. 대나무는 전정가위로 손질한다. 과거에는 보통 제주도 초가마다 뒤쪽을 중심으로 이러한 수리대가 조금씩 있었다. 집안 살림과 관련하여 여러 민구를 만들거나 기제사 때 적꼬치로도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천류는 제주도 민간에서 흔히 ‘시렁목’ 혹은 ‘시라목’이라고 부르는 흰 무명천을 사용한다. 이 흰 무명천은 굿에서 기메의 부재료 외에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천류는 날씨를 감안하여 외부에 설치하는 기메에 종이를 대신하는 재료로 사용한다. 여기에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삼색三色 물색도 쓰는데, 대개 영등굿 같은 어업 관련 굿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천류는 적절한 크기로 잘라서 쓴다. 한편 지폐는 단골 주민이 내어놓는 현금 지폐를 붙여 완성한다.

종이를 기반으로 여러 재료를 조합하여 기메의 전체적인 모습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아래와 같이 모두 9개 유형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각 유형마다 개별 기메들을 함께 제시한다.

① 종이 : 살장, 첵지, 당반지, 발지전, 오방각기, 시왕기, 멩감기, 돌레지, 칠성, 허멩이, 영감 탈, 전상 탈, 고리동반 너울지, 소통기(큰대), 기리여기(큰대), 줄전기(큰대)

② 종이+대나무 : 솔전지, 통기, 칠원성군송낙, 대명왕처서기, 영게처서기, 영게기, 성주기, 성주꼿, 육고비, 청너울, 조왕기, 칠성기, 마뒷기, 삼멩감송낙, 감상기, 영기, 몸기, 영집

③ 종이+대나무+지전+지폐 : 요왕 질대

④ 종이+대나무+소지+지폐 : 삼불도송낙

⑤ 종이+대나무+지폐 : 할마님 철쭉대

⑥ 종이+대나무+천류 : 요왕선왕기

⑦ 종이+지폐 : 적베지

⑧ 천류 : 어신기(큰대)

⑨ 천류+대나무 : 올레기, 번기(큰대)

위의 9개 유형 가운데 단연 ①종이와 ②종이+대나무 유형이 30여개 정도로 압도적이다. 따라서 ①과 ②가 가장 보편적인 형태임이 드러난다. ③~⑥ 유형도 사실 ②종이+대나무 유형을 근간으로 한 것이다. 지전이나 지폐가 인정으로 거는 것이라면, 소지는 기원을 담아 덧붙인 것이라 하겠다. 요왕선왕기를 제외한 천류의 사용은 외부 설치에 따른 날씨의 영향 때문이므로 종이와 견주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큰대와 소통기, 기리여기, 줄전기(김영철 심방 기메 전시회, 제주대 박물관, 2014)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큰대와 소통기, 기리여기, 줄전기(김영철 심방 기메 전시회, 제주대 박물관, 2014)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사실 과거에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는 종이류와 천류의 장만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기메뿐만 아니라 지전이나 소지까지 생각한다면, 큰굿이라도 진행할 경우에는 종이류가 만만치 않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현재처럼 이렇게 기메가 다양하고 풍부한 수량이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통용되는 현금 지폐를 붙이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원로 심방들은 기메가 지금 형태로 발달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필자가 제주도 무속 현장을 20년 가까이 조사 관찰하면서 원로 심방들에게서 들은 내용이다. 전환의 시점에서 서귀포시 도순동 출신 조병문 심방이 기메선생으로 일정한 활약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메인심방이며 큰심방이었던 고(故) 고순안 심방도 증언한 내용이다. 한편 진성기의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민속원, 1991)의 심방 명단에서 도순동의 조병문 심방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비교적 현대화가 진행되어 비로소 물자가 다소 풍부하게 되었을 무렵부터 현재와 같은 기메 제작 풍속으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기메의 조형성이나 제작 난이도 등은 기메 제작 풍속이 변화하는 가운데 더불어 다듬어졌을 것으로 본다. 기메는 주로 가위로 오리기 때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예술적 난이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조형미도 단순한 편에 가깝다. 신체상징물 기메 가운데 일정한 형상을 나타내는 모양들이 있는데 대개 사람 비슷한 모양으로 오리는 정도이다. 초보 심방들도 어느 정도 제작 방법을 익히면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메에는 제주도 심방공동체의 무속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 기메 자체의 예술성이나 조형미 수준이 핵심은 아니다. 제장장식용 기메는 일만팔천 신이 좌정할 만한 제장을 설립하고자 하는 신성한 염원이 스며들어 있다. 신체상징물 같이 본풀이와 연관된 기메는 신의 형상이 어떠한지 나름대로 사유한 바가 드러난다. 이러한 기메들을 제차를 진행하면서 다양하게 도구로 활용하면서 단골들을 굿판에 몰입하게 하고 감응을 불러 일으켜 굿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기메의 전승

기메는 무구이기 때문에 심방공동체에서 그 제작 방법을 전승한다. 종이류 무구 가운데 지전은 신앙민들도 직접 만드는 경우가 있는 데 견주어 기메는 오직 심방만 만들 뿐이다. 제주도 심방은 무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것 외에도 여러 무구를 제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종합 예능적인 면모를 갖추어야 비로소 심방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메 제작 방법을 잘 익히면 나름의 장기를 갖추게 되는 셈이어서 무업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심방은 무업에 들어서서 소미小巫 시절부터 굿판에서 자연스럽게 기메 제작 방법에 대해서 배운다. 심방이 기메 제작을 배울 때는 스승으로 섬기는 심방이 만들고 지도하는 방식을 따른다. 처음에는 선배 심방들이 하는 작업을 지켜본다. 기메는 한두 번 보아서 모두 직접 만들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생각 외로 빨리 배우기는 어렵다. 굿판에서 약 2~3년 정도 배운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기메를 만드는 편이다.

심방은 무업을 전개하면서 점차 자신의 기메 제작 방법의 틀을 세운다. 처음에 기량이 일정하게 오를 때까지 스승 심방의 제작 방법을 공유한다. 그러다가 여러 심방들과 함께 굿판에 다니면서 다른 심방들이 만드는 방식도 필요할 경우 눈여겨본다. 무업 경력이 쌓이다 보면 각 기메의 형태나 쓰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개별 기메가 가지는 의미도 더욱 깨닫게 된다. 나중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무업의 이치에 따라 자신의 방식을 가다듬으며 기메를 만드는 데 이른다.

기메는 굿판에서 소미들이 만드는 것이다. 굿의 책임자인 수심방도 기메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수심방과 소미들은 각각 서로 맡는 역할이 따로 있다. 수심방은 전체 굿을 이끌어가면서 핵심 제차를 맡고 단골 신앙민과 소통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다.

3~4명 정도 되는 소미들은 수심방을 다방면에서 돕는다. 서로 번갈아나서면서 일부 제차들을 하고 무악기를 연주한다. 또한 때마다 필요한 무구를 준비하고 제물을 진설하는 등의 일도 맡는다.

소미 가운데는 대개 남자들이 기메 제작을 주로 맡는 편이다. 기메 제작자로 남녀를 특별히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굿판을 준비하는데 오래된 기존의 관행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자들이 주로 기메를 만들고, 여자들이 주로 지전과 소지를 만든다. 보통 남자들은 주로 제장을 설치하는 일을 하고, 여자들은 제물을 진설하는 일을 주로 하는 양상도 그러하다. 기메 제작에는 대나무를 미리 마련하는 일도 요구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남자들이 기메를 맡게 된다.

기메 제작에 능한 심방은 ‘기메선생’이라 하여 호의적으로 우대한다. 기메는 종류도 많고 소미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니 공동 작품일 수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보통 소미 가운데 한 명 정도가 기메를 전담하여 만드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기메를 두루 잘 만드는 심방을 일러 ‘기메선생’이라고 부른다. 기메는 굿의 필수 무구로 그 제작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굿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만약 큰굿이라도 한다면 자연히 심방 일행 가운데 기메를 잘 만드는 이를 포함하고자 한다. 과거에 견주어 기메선생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메의 제작 방법은 대체적으로 제주도 전체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큰 틀에서 어느 정도 보편적인 형태들이 형성되어 있다. 제주도 전역에서 기메의 성격과 기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방 개인과 지역적 관습에 따라서 세부적인 형태가 조금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심방 개인의 학습 과정이나 무업 세계관 인식에 따라 차이가 드러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초기부터 시행된 ‘삼읍’三邑의 행정구역인 제주목濟州牧, 정의현旌義縣, 대정현大靜縣 등 지역에 따라 무속 관습이 세부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관행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제주굿은 종합적으로 따지면 도내에서 특별히 큰 지역적 차이가 없다. 다만 이 세 지역에 따라 서로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기는 한다. 이른바 ‘목안굿’, ‘정의굿’, ‘대정굿’이라고 구분하여 굿을 진행하는 방식에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심방은 굿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필요한 기메를 정하고 준비한다. 시일이 짧은 ‘족은굿’은 해당 굿의 성격에 따라 기메 종류가 한정되기 때문에 미리 다 준비해 놓는다. 하지만 약 1주일 정도로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큰굿’은 거의 대부분 기메가 필요하다. 대개 굿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될 때에는 심방 일행이 미리 하루 전에 제장에 도착하여 이런저런 준비를 하여 둔다. 이때 기메도 미리 만들어 놓는데 제차 진행에 따라 일부 기메는 나중에 만들 수도 있다.

심방이 실제 굿판에서 기메를 만들 때에는 창호지, 백지,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 가늘게 쪼갠 대나무, 실이나 노끈, 가위와 칼, 풀, 필기구, 지전과 현금 지폐 등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종이는 무구를 취급하는 불교사 같은 가게에서 구입한다. 대나무는 직접 들판으로 가서 적당한 것을 골라 베어 와서 마련한다.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굿을 하기 직전에 준비한다. 가늘게 쪼갠 대나무는 심방이 자신이 한 해에 쓰는 분량을 가늠하여 미리 대량으로 손질하여 준비해 두는 경우도 있다. 실이나 가위 같은 제작 기구들은 늘 지참하여 다닌다. 지전과 소지는 굿판에서 만든 것을 쓴다. 지폐는 굿을 의뢰한 본주本主가 내놓는 현금을 사용한다.

기메는 굿판 현장에서 만들고, 굿이 끝나면 불태우는 것이 원칙이다. 아직까지 기메는 무속 관련 물품을 파는 가게에서 구입하여 쓰는 무구가 아니다. 심방은 굿을 할 때마다 늘 기메를 새로 만든다. 여러 기메를 만드는 데 꼭 고정된 순서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가장 기본적이고 제장을 꾸미는 데 필요한 기메들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감상기, 살장, 발지전, 전지 같은 사례들이다. 여기에 굿의 제차 진행을 감안하여 필요한 다른 기메들을 만든다. 산육産育 관련 불도맞이와 천도薦度 관련 시왕맞이가 많이 벌어지다 보니 이러한 굿에서 쓰이는 기메들이 비교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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